[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 조각가 함진

홍대 앞 카페에서 조물조물 만든 작품 들고 세계로 나가다

함진
1978년생. 경원대학 미술대를 졸업했다. 22살이던 1999년 사루비아 프로젝트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PKM갤러리 등에서 지금까지 5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상하이 민생미술관, 런던 유니온 갤러리, 파리 에스파스 루이 비통, 베이징 한국문화원, 네덜란드 틸뷔르흐의 DeOude Warande 공원, 서울 로댕갤러리, 스위스 로잔의 MUDAC, 후쿠오카 아시안 아트트리엔날레, 파리의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 도쿄 모리미술관, 서울 아트선재센터,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서울토탈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에서 굵직한 단체전에 참여해왔다. 2005년 51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참여작가로 선정되었다. 현재 홍대 앞 카페를 작업장 삼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번 작업은 저에게는 아주 큰 작업이었어요. 남들은 작다고 하지만.”

조각가 함진이 주장하는 아주 큰 작업들은 대략 30cm 내외다. 거리에 설치된 대형 설치 조각들을 보면, 아니 우리가 아는 조각품의 일반적인 크기를 생각해봐도 턱없이 작은 크기의 조각이지만 지금까지 그의 작품에 비하면 확실히 큰 작품이다. 함진은 손톱만큼 작은 초미니 조각으로 유명한 작가다. 손가락 끝에 매달려 있는 작은 인물, 배꼽에 쏙 들어갈 만큼의 작은 인물 등 실제 크기가 1cm가 채 되지 않는다. 1cm 안의 세상이다.

디테일이 거의 완벽하기 때문에 작품을 찍은 사진으로 보면, 이 작품들이 1cm도 채 안 된다는 것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전 작품이나 최근 작품이나 디테일로 가득 찬 작품은 들여다볼수록 볼 것이 많다. 한참을 보게 되고 볼수록 감탄만 나온다. 거미줄보다 가늘고 먼지보다 작은 디테일로 가득 찬 것이 함진이 펼치는 초미니 세상의 풍부함이다. 작가는 이 작은 작품들을 벽과 바닥의 좁은 틈새, 계단, 전선, 천장 주변 등에 설치하기도 했다. 후쿠오카 아시안 아트 트리엔날레 전시기록 사진 중에는 관람객들이 바닥에 엎드려서 작은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볼 수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열심히 보게 된다. 정성을 가지고 보게 만드는 것은 만든 사람의 정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작은 것을 기꺼이 찬양한다.

“편해지기 위해서 작아졌어요. 조그마한 것은 만만해요. 크게 만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일종의 테크닉의 도입인 것 같아요. 작은 것을 파다 보니까 이 안에도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 안에도 무한한 세계가 있지요,”

Untitled 27, Polymer clay, glue, wire and fishing line, 13.5×12×8.5cm, 2011
화동 PKM갤러리에서 7월 15일까지 개인전을 하고 있는 함진을 만나러 단숨에 달려갔다. 2007년 일본 아오모리 현대미술회관 전시 이후 4년 만의 개인전이고, 국내에서는 7년 만의 개인전이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전의 구상 작품과는 달리 검은색의 추상적인 작품을 선보인 이번 전시는 ‘작가적 성숙’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멋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일찍 주목받으면 매너리즘에 빠지는 등 방황하는 시기가 올 수도 있는데, 스물한 살 어린 나이에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함진 작가가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서 기쁘다”라고 한 인터뷰에서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가 한 말이 충분히 공감이 간다.

Venice Biennale Korea Pavillion (Installation view), 2005
1978년생으로 이제 서른세살인 함진은 대학교 4학년이던 1999년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주최한 공모전에서 수상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다음해인 2000년에는 부산비엔날레, 2001년에는 광주비엔날레 등 국내외 중요한 전시에 발탁되었다. 그리고 2005년 제51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한국관 참여작가로 선정되었다. 이후에도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 도쿄모리미술관, 에스파스 루이비통파리, 삼성 로댕갤러리 등에서 전시를 하며 승승장구했다. 이전의 작업들은 함진만의 독특한 스토리를 가진 완벽한 형태의 구상조각들이었다. 예컨대 ‘애완(愛玩)’시리즈 중 꽃 위에서 파리와 포옹하고 있는 소년의 조각품은 연애시절의 체험을 담고 있다.

“파리는 저를, 소년은 안사람을 떠올리며 만들었어요. 연애할 때 보니까,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단순히 성별의 차이를 넘어 거의 종의 차이처럼 느껴지더군요. 항상 서로 바라보고 연구하면서 가야 하는 것 같아요.”

Untitled 5, Acrylic on canvas, 53×45.5cm, 2011


Untitled 6, Acrylic on canvas, 60.5×50cm, 2011


Untitled 7, Acrylic on canvas, 60.5×50cm, 2011
기발하고 적나라한 상상력이며 또한 사물이건 관계에 관해서건 깊은 통찰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야기다. <폭탄 위의 도시>는 매향리 미 공군사격장에서 주워온 불발탄 위에 설치한 작품으로 위기의 도시 속에 살아가는 인간군상을 풍자적이면서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갔었다. 조밀하고 촘촘히 엮인 세상의 이야기가 보는 재미를 더했었다. 모두가 박수를 치며 환호할 때 정작 함진 자신은 흥미를 잃어갔다. 어떤 작가나 언젠가 한번은 부딪히게 되는 창작의 위기가 찾아왔다. 그 순간 함진은 과감하게 방향을 틀었고 그 전환은 성공적인 것처럼 보인다.

City on a Bombshell – Second story Mixed media on bombshell, 220×40×30cm, 2008
터닝 포인트는 회화였다. 조소과를 나온 그가 이번에는 그림을 그렸다.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는 대신 자유로운 붓질의 다양한 흔적을 찾아나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그는 새로운 작품의 영감을 받았다.

“전에는 정교하게 조각해서 스토리가 있는 피겨 같은 작품이었다면 이제는 스토리가 없는 순수하게 조형적인 형상을 추구해요. 그 변화의 핵심에는 목표가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꼭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 없이 자유롭게 만드는 과정 자체를 즐겼습니다. 인생도 그런 것 같아요. 목표가 없어 보일 때도 있지만 무언가를 꾸준히 하다 보면, 하루하루 성실히 살다 보면 망쳤다고 생각하는 그 부분이 오히려 빛나는 순간이 있지요.”

Aewan (Love #3), 2004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는 손에 잡히는 스트로 종이 껍질을 돌돌 말아서 무언가를 만든다. 즉흥적이고 유희적인 손장난이다. 만드는 작가의 자유와 즐거움은 보는 이의 즐거움으로 연결된다. 고무 성분이 섞인 검은 점토로 만들어진 이번 작품들은 추상화되긴 했지만 볼거리는 더 많아졌다. 우담바라같이 가냘프고 어린 꽃들이 피고 거미줄보다 얇고 먼지보다 미세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기이하고도 환상적인 풍경을 펼쳐낸다. 식물계와 동물계가 섞이고, 대기와 대지가 서로 섞이며 무제한 자기 증식하는 세상이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돼지의 몸통에 갈라진 배, 0.5mm도 안 되는 가느다란 음부의 털, 부러질 것 같은 여린 발가락, 나무 모양의 머리를 한 괴생명체다.

Aewan (Love #1), 2004
“저는 전체적으로 보는 것을 잘못해요. 석고 소묘를 해도 늘 눈 하나를 그리는 데만 정신을 쏟죠. 사람을 볼 때도 전체를 보지 않고 모공・털・머리카락 이런 걸 봐요. 이런 세부와 천의 질감 같은 재미있는 것만 뽑아서 작품을 만들어봤어요. 앞으로도 재미있는 작품이 많이 나올 것 같아요.”

Aewan (Love #1015), 2004
그는 카페 작가로 유명하다. 작업의 성격상 별도의 작업실이 꼭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홍대 앞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작업을 한다. 신기해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만 견딜 수 있다면,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니 그만한 공간이 없다. 작품 구상이 점점 커가면서 작업실의필요성을 느끼지만 당분간 카페에서 계속 작업할 것 같다고 한다. 홍대 앞 어느 카페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점토를 가지고 조물락조물락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사내를 본다면, 그가 함진이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8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