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영화 〈소중한 날의 꿈〉 만든 안재훈 감독

우리 모두의 꿈을 그리고 싶었어요

스스로 ‘너무 평범해 맹물 같다’고 생각하는 여고생 이랑. 학교 육상부였던 그는 달리기 하나만은 자신 있었는데, 계주에서 추월당하자 일부러 넘어져버린다. 지는 게 두려웠던 그는 ‘넘어지면 적어도 지지는 않으니까’라며 경쟁상황을 아예 피해버린다. 육상부까지 탈퇴한 후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등만이 가치 있는 것일까?’라는 회의에 빠진다. 그에게 서울에서 전학 온 얼굴 하얀 아이 수민과 ‘한국 최초의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철수가 나타난다. ‘33세에 자살할 것’이라고 선언하며 염세적인 시를 쓰는 수민, 청각장애 삼촌의 전파사 일을 도우며 비행 연습을 하는 엉뚱한 소년 철수, 그리고 이랑 사이에 아지랑이같이 우정과 사랑이 피어오른다.
수시로 밤샘작업을 하는 작업대 앞에 앉은 안재훈 감독.
큰 꿈을 가지고 도전하기도 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해하기도 하는 사춘기.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으면서 또 그만큼 불안정한 이 시기를 통과하는 소년소녀 이야기가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졌다. 6월 하순 개봉한 〈소중한 날의 꿈〉이다. 이 영화에는 대단한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 사춘기를 통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거나 고민했을 법한 소소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우리의 감성을 건드리면서 ‘내 이야기’로 느끼게 한다. 경쟁이 두려워 피해버리고, 너무나 평범한 자신이 불만스럽고, 예쁘고 조숙한 ‘서울 아이’를 동경하면서, 이성에 관심이 싹트는 때. 누구나 그 시기를 추억처럼 간직하고 있지 않은가. “나, 여자하고 반말하는거 처음이야”라고 수줍게 말하는 철수의 고백은 피식 웃음을 자아낸다.

〈소중한 날의 꿈〉은 아직 극장에서 자리 잡지 못한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의 꿈이자, 10년 넘는 기간 동안 이 작품을 한땀 한땀 준비해 내놓은 안재훈・한혜진 감독의꿈이기도 하다. 〈소중한 날의꿈〉을 함께 만든 안재훈・한혜진 감독을 만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이화동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를 찾았다. 스튜디오 문 앞 벽에는 영화 포스터를 둘러싸고 사람들의 얼굴 사진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안 감독은 “이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붙여놓았다”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훌쩍 애니메이션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소중한 날의 꿈〉은 인간이 달에 발을 내딛는 것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김일의 박치기에 열광하는 세대의 이야기다. 공병우 타자기, 구식 텔레비전 등 옛날 물건들에 군산의 기찻길 마을 등 예스러운 마을 모습들을 감탄할 만큼 꼼꼼하게 재현해 놓았다. 스튜디오 여기저기에도 자잘한 옛날 물건들이 천연덕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것들이 자아내는 풍경이 아늑하고 편안하다.

“옛날 물건을 좋아해요. 일요일이면 황학동 풍물시장을 자주 찾는데, 할아버지에서 손자까지 물려쓰면서 손때 묻은 물건들을 보면 세대 간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파는 분들로부터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애니메이터 안재훈 감독. 그는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나직한 목소리, 소박하면서도 편안한 스튜디오, 그리고 그의 작품은 많이 닮았다. 그는 어린 시절, 천안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두 시간은 들어가야 하는 두메산골에서 살았다. 어릴 적부터 그의 꿈은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글과 그림이 사람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친구들끼리 싸우면 제가 양쪽 모두에게 편지를 써서 화해시켰어요.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면 웃고있는 그림을 그려서 전해줬는데, 위안을 받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결심했죠.”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무조건 서울로 올라왔다. 만화가 문하생이 되어 그림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992년 9월 16일(그는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OEM 제작하는 회사의 문을 두드리며 애니메이션에 입문했다.

“내 책상이 있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처음 서울와서 문하생 생활을 할 때는 낮에 신문배달, 공장 일을 하다 밤이 되어서야 그림을 그릴 수 있었거든요. 잠 안 자고 열심히 그려서 선배들에게 예쁨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자는 걸 본 사람이 없다는 말까지 나왔으니까요.”

선배들의 그림을 한장 한장 따라 그리는 것부터 시작해 애니메이션 제작의 모든 과정을 차근차근 배워가던 그는 1998년부터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창작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7분짜리 단편 〈히치콕의 어떤 하루〉, 2000년에는 27분짜리 중편 〈순수한 기쁨〉을 발표했다. 그리고 10여 년 동안 한땀 한땀 정성을 기울여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을 제작했다. 3D 같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대신 한장 한장 정성과 진심을 기울여 그린 10만 장의 그림으로 만든 영화다.

“거창하게 뭘 하겠다는 욕심이 없었기에 오히려 쉽게 절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해올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한국에서 만든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흥행에 성공한 적이 없던 터라 투자를 받기가 어려웠다. 수백군데를 돌아다녔는데, 대부분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투자를 받지 못하면 직접 제작하겠다는 뚝심이었다. 〈뽀롱뽀롱 뽀로로〉 〈모험왕 장보고〉 〈겨울연가〉 같은 텔레비전용 애니메이션과 웹 애니메이션, 한미합작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수익이 생기면 이 작품을 만드는데 투자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한 이 영화는 맑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착한 영화’다.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그저 편안하기만 한 사람은 하나도 없더라고요.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게 아닐까요?”




안재훈 감독은 1998년 첫 작품부터 아내인 한혜진 감독과 공동 작업을 해오고 있다. 애니메이션 제작회사에서 동료로 만난 두 사람은 일과 삶을 모두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었다. 두 사람은 그러나 음식 취향에서부터 사건을 보는 시각까지 매우 다르다고 한다.

“그게 작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돼요. 나만의 취향, 시각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소중한 날의 꿈〉이 흥행에 성공할지 여부는 두 감독뿐 아니라 한국 애니메이션의 향방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안 감독은 차분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나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는 애니메이션 영화와 비교하면 한국의 애니메이션은 시작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 역량을 쌓아온 그들을 한순간에 뛰어넘을 수는 없지요. 그래도 누군가는 용기 있게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음 작품으로는 〈도라샘 숲 IN Seoul〉을 기획 제작 중이다. 그는 한국 애니메이션이 쑥쑥 성장해 ‘이 작품에 참여해준 스태프들이 각각 세계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가가 되는 날’을 꿈꾼다. 영화 속 이랑의 내레이션처럼 그는 “스스로 다다르기 위해 내딛는 지금, 내 작고 힘없는 발자국이 기특할 때가 있을 거라 믿는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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