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원하는 음악 하면서 대중의 인기도 누리는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애늙은이, 인디계의 서태지, 교주…. 데뷔 이후 장기하를 따라다닌 수식어는 어쩐지 그가 만든 곡들처럼 범상치 않은 면이 있다. 멋지게 보면 송창식, 웃기게 보면 최양락을 연상시키는 그가 1집 수록곡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부르며 무대 위 ‘미미 시스터즈’와 함께 무표정하게 춘 ‘촉수춤’은 화제를 일으켰고, 복고적인 포크록 사운드와 말하듯 툭툭 내뱉는 현실적인 가사들은 가요계에 신선한 파문을 던졌다. 그렇게 2년 반이 지난 지금, 장기하가 돌아왔다.
왼쪽부터 이민기, 정중엽, 이종민, 김현호, 장기하.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하 ‘장얼’)이 새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밴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려는 듯 앨범명도 셀프타이틀인 <장기하와 얼굴들>이다. 다분히 실험적인 싱글앨범 <싸구려 커피>로 많은 이들에게 유쾌한 충격을 주고, 1집 <별일 없이 산다>로 인디계의 총아가 된 장기하는 이제 속이 꽉 찬 2집으로 자못 진지하게 음악적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정중엽(베이스), 이민기(기타), 김현호(드럼), 이종민(건반) 등 든든한 ‘얼굴들’과 함께.

“1집 앨범은 제가 편곡까지 끝낸 상태에서 밴드를 결성했기 때문에 멤버들은 연주만 했는데, 이번에는 합주실에 모여 다 같이 편곡을 진행했어요. 완성되지 않은 데모에 살을 붙여 합주를 하며 곡을 만들어나간 거죠. 공동 작업을 했기 때문에 앨범 타이틀도 밴드 이름으로 했어요. 이제 진정한 밴드로 거듭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웃음).”

로킹한 기타 사운드가 쫄깃하게 귀에 붙는 ‘뭘 그렇게 놀래’를 시작으로 신나는 타이틀곡 ‘그렇고 그런 사이’를 지나 멤버들의 의견을 모아 드라마틱하게 편곡된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로 정점을 찍는 앨범은 더블 타이틀곡인 ‘TV를 봤네’로 갈무리된다. ‘그렇고 그런 사이’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손춤’은 한창 인기몰이 중. 손이 사람의 모습같다는 데서 착안한 장기하의 안무다. ‘TV를 봤네’ 뮤직비디오 연출과 연기 역시 장기하가 했다. 이쯤되면 음악 외에 욕심내는 영역이 과한 건 아닐까.

“그게 그렇게 되네요(웃음). 연출은 처음부터 제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기술적으로 훌륭한 분들 많으시지만 우리 음악과 맞는 분을 찾아내기가 어려웠어요. 제가 작사와 작곡을 했으니 어떤 콘셉트가 맞을지, 어디서 장면이 바뀌어야 할지 더 잘 알 수 있잖아요. 연기도 마찬가지 맥락이고.”

2집 수록곡 ‘깊은 밤 전화번호부’ ‘마냥 걷는다’ ‘그때 그 노래’의 한결 섬세해진 멜로디와 노랫말에는 씁쓸함과 외로움이 담뿍 묻어 있다. 싱글앨범과 1집 때의 장기하가 털털한 옆집 아저씨 같았다면, 이번에는 마치 사춘기 소년처럼 감성적이다.

“제가 만드는 곡들은 모두 개인사를 반영합니다. 결국 다, 제 얘기라고 보시면 돼요. 제가 겪지 않은 일을 상상해서 만들어내는 걸 할 줄 몰라서, 살면서 제게 중요한 ‘뭔가’를 남들도 흥미롭게 생각하겠다 싶을 때 가사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깁니다. 예컨대 콜라를 마셨는데, 누군가 캔에 버린 꽁초를 정말 삼킬 뻔한 적이 있어요. 전 담배도 안 피우는데…. 이런 체험이 ‘싸구려 커피’의 가사가 된 거죠. 모든 노래가 곧 제 자신이라서 애착이 덜 가는 곡이 없어요.”

말인지 노래인지 구분되지 않는 구절들과 전라도나 충청도 지역의 방언쯤 되는 것 같은 가사와 억양 처리는 2집에서도 변함이 없다. ‘말’에 관심이 많아 곡을 쓸 때, 우리말의 뉘앙스를 정확히 살리고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의외로 서울이다. 멤버들은 그를 ‘예민하고 정확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언뜻 매사에 무기력하거나 무심해 보이기도 하지만, 사소한 감정 표현에도 세심한 편이다.

어린 시절 장기하는 ‘TV를 봤네’의 가사처럼 눈이 시뻘게질 때까지 TV를 즐겨본 TV키드였다. ‘재밌는 걸 좇다 보니’ 책하고는 자연스레 멀어졌다는 그는 좋아하는 개그맨으로 최양락을 꼽고, 어린 시절 즐겨보던 프로그램으로 <유머 1번지>를 얘기했다. ‘88만원 세대’의 대표주자 같은 이미지도 왜곡된 것. 그는 서울 잠실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으며 평생 열심히 사신 부모 덕에 누나와 자신은 경제적으로 별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다고 한다. 초창기에 음악활동과 방송국 보도국에서 기사정리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때에도 부모님은 크게 간섭하지 않으셨다.

이번 앨범에서는 1집에서 안무와 코러스를 담당하던 ‘미미 시스터즈’가 탈퇴하고 이종민이 새 식구로 합류하며 건반을 많이 사용했다. 산울림의 멤버인 하세가와 요헤이는 앨범의 공동 프로듀싱을 맡고 객원 기타리스트로도 참여해 ‘장얼’의 음악성을 한층 강화했다.

“2집의 좋은 디테일들은 상당부분 요헤이 형이 만들어낸 거예요. 일본인이지만 산울림과 신중현에 반해 한국에서 음악활동을 하는 분인데, 한국 록의 전통뿐 아니라 국내외 록음악에 관해서라면 모르는게 없어요. 재작년에 산울림, 크라잉넛과 4개 도시 순회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인연이 닿았죠.”

업그레이드된 건 앨범의 내용만이 아니다. 정중엽의 표현을 빌리면 “몇 살을 상상하든 그 이하의 나이”인 장기하는 덥수룩한 수염도 밀고, 안경도 벗어 10년은 젊어 보인다. ‘얼굴들’의 분위기도 사뭇 훈훈하고 세련되어졌다. 그간 장기하에 비해 존재감이 덜했던 것이 서운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멤버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손사래를 친다. 1집은 앨범 제작부터 활동까지 싱어송라이터인 장기하가 잡아놓은 방향대로 갔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그에게 쏠린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란다. 하지만 2집에서는 ‘모두가 할 만큼 했기 때문에’ 멤버들도 각자의 역할에 자부심이 크다.

“다만 아쉬운 점은 많은 분이 곡을 들을 때 가사와 보컬이 하는 이야기에는 관심을 두면서, 악기가 하는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거죠.”(정중엽)

“물론 세간의 오해가 싫은 부분도 있어요. ‘장얼’의 음악이 장기하 개인의 음악인 것처럼 비춰질 때가 있는데, 그건 아니잖아요. 우린 밴드니까.”(이민기)

‘장얼’은 비틀스, 도어스, 밥 말리, 밥 딜런, 산타나, 산울림, 송골매 등 이른바 ‘옛날 음악’을 좋아한다. 서로 취향이 비슷하다 보니 음악적인 조율과 합의를 할 때 큰 불편이 없단다. 또한 연애할 때 이성에게 ‘첫눈에 반하지 않는다’는 신중한 면이 같다. 가장 강력한 공통점은 멤버 모두 애주가라는 것. ‘쓸데없는’ 얘기를 안주 삼아 언제 어디서나 술을 마신단다(인터뷰할 때에도 이들은 커피와 차 대신 맥주를 시켰다). 술 외에는 취미가 없다는 장기하는 꼬박 이틀동안 밤샘음주를 한 경험이 있고, 이종민은 황금비율로 직접 조제하는 ‘소맥’을 즐기며, 다른 멤버들 역시 술자리라면 마다하지 않는다. 멤버들은 음악작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공연으로 해소하고, 장기하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마다 곡을 써서 자존감을 회복한다고. 그동안 싱글앨범을 팔아 1집을 내고, 1집의 판매 수익으로 2집을 내면서, ‘대자본의 투자 없이 자립적으로 음악을 생산하는’ 인디밴드의 생리를 따라온 이들은 온전히 하고 싶은 음악으로 대중의 인기까지 누리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장기하를 포함한 ‘장얼’의 멤버들은 “밴드 외에 다른 직업을 가지지 않을 만큼 음악으로 돈을 버는 게 처음”이란다.

앞으로 ‘장얼’은 2집 활동으로 ‘가장 자신 있고 좋아하는’ 공연을 우선시할 생각이다. 8월에는 서울에서 단독 앙코르 공연을 하고, 9월에는 지방 공연을 하며 무대에 설 것이다. 2집 라이선스 앨범을 통해 일본 팬도 찾는다. 이들에게 음악이란 대체 무엇일까.

“음악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삶의 한 과정은 되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또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멤버들과 함께 즐기듯이 음악을 하고 싶어요.”(장기하)

사진 : 김선아
헤어・메이크업 : 이경민포레 홍대점 02-3141-8564
장소제공 : 벤제임 02-322-5652
  • 201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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