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박물관·미술관을 찾아서] 양재룡 호야지리박물관 관장

현장교육 위해 박물관 세운 지리 선생님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독도가 있나요?”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무릉3리 ‘호야지리박물관’에 들어서자 양재룡 관장이 다짜고짜 묻는다. 답은 “없다”다. 질문은 이어진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지도(古地圖)에 왜 독도가 없지요? 대동여지도가 훌륭하고 과학적인 지도라서 그래요.”

양재룡 관장의 독도 이야기는 이렇게 역설적으로 시작된다. 16만분의 1 축적지도인 대동여지도에 그려진 우리나라의 섬은 80여개. 3000여 개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섬 중 큰 것만 그려 넣었기에 독도는 들어가지 않았다 한다. 대동여지도가 실제 측량하여 정확하게 만든 지도이기 때문이다.

“독도는 동해에 있는 섬인가요?”

그는 다시 일반인의 상식을 무너뜨리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동쪽바다(東海)는 어느 나라에나 있어요. 동해는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이름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조선해, 대한제국시대에는 대한해로 통용되었으니, 이제 한국해라 불러야 합니다.”

호야지리박물관 지오토피아관에서는 <독도! 왜 한국의 영토인가?>를 주제로 고지도 특별전시를 하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유럽과 미국, 일본의 지도와 우리나라 고지도들이 비교 전시되어 있다. 이 지도들을 해석하는 데는 양 관장의 도움이 필요하다. 16~17세기 유럽에서 만든 세계지도에서 우리나라는 일본 왼쪽 옆에 있는 긴 섬으로 표시되어 있다. 유럽 지도에서 우리나라가 반도로 등장한 것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선박 선원으로 일본에 가다 거센 풍랑을 맞아 제주도에 표착, 13년간 조선에서 생활하다 귀국한 하멜이 1668년 표류기를 내면서부터. 18세기 세계지도를 보면 우리나라가 반도로 등장하고, 오른편 바다에 ‘고려해’(Mer de Core'e)란 이름이 붙어 있다. 19세기에는 우리나라나 일본 지도 모두에 이 바다가 ‘조선해’(朝鮮海)로 표기되어 있는데, 1897년 대한제국이 건립된 후 만들어진 지도에는 ‘대한해’(大韓海)라고 쓰여 있다. 우리나라 고지도에서 독도는 우산도(于山島), 자산도(子山島), 천산도(千山島), 우내도(于內島) 등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울릉도 동남쪽에 있어야 할 독도가 울릉도 안쪽으로 그려진 지도도 있어 미스터리였다.


“내내 지도를 바라보며 얼마나 고민했는지 몰라요. 그러다 답을 알게 되었죠. 지도책 중 한반도 지도에서 제주도 들어갈 자리가 없으면 네모 쳐놓고 제주도를 별도로 그리잖아요? 18세기 지도인 천하총도 강원도폭이나 팔도도 강원도폭은 거리상 지도 밖에 있어야 할 독도를 접어서 안쪽으로 집어넣었던 거예요. 한반도 전체를 그린 우리나라 지도는 독도가 제 위치에 있는데, 강원도편만 위치가 달라진 이유죠. 그런데 서양지도와 일본지도는 우리나라 강원도 지도를 참고해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를 바꾸어놓았습니다.”

대동여지전도 영인본 | 1861~1865년 | 한국 | 숭실대학교 소장
산계와 수계가 잘 표현된 대동여지도(1861년)를 소축적으로 만든 1:920,000의 대동여지전도. 대동여지도는 고산자 김정호에 의해 제작된 약 1:160,000의 대축적지도로 총 22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는 일본의 근대 지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19세기 일본은 제국주의를 위해 수많은 지도를 제작했는데, 이 지도들에 독도가 한국 영토로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1895년 일본이 제작한 실측일청한군용정도(實測日淸韓軍用精圖)를 보면 우리나라와 일본 바다 사이 국경선을 표시하면서 울릉도와 독도를 한국 영토 속에 넣은 게 분명하게 보인다.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로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됐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1941년 시마네현 지도에는 독도가 없다.

DE L’EMPIRE DU JAPON | 1750년 | Robert geog |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18세기 후반에 그동안 한국해로 표기해오던 한국 동해가 ‘한국해(MER DE COREE)’와 ‘일본해(MER DU JAPON)’로 함께 표기되기 시작하면서 일본해가 한국 동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독도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그는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더니 열심히 설명을 듣던 초등학생 관람객에게 내민다. 그리고 “이거, 내 것 맞지?”라고 묻는다.

“‘옛날부터 내 것이었으니 내 것’이라고 주장하면 듣는 사람이 뭐라고 해요? ‘미친놈’이라고 하지 않겠어요? ‘독도는 우리 것’이라고 외치는 것이 이런 행동이지요. 이 문제가 자꾸 시끄럽게 거론되다 보니 어떻게 돼요? 점차 국제사회에서 독도가 분쟁지역화하고 있어요. 세계지도에 독도와 다케시마(竹島)란 이름이 함께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 외치기만 하지 정작 독도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요.”

그는 관람객이 올 때마다 지도들을 비교 분석해가며 ‘독도 교육’에 열을 올린다. 그가 영월에 지리박물관을 개관한 것은 2007년 5월. 36년간 교단을 지키며 지리를 가르쳐온 그는 “교과서 속에 갇혀 있는 지리를 현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박물관을 세웠다고 말한다.

“내 수업시간에는 5분마다 웃음이 터져 나왔어요. 내 수업의 슬로건은 ‘즐겁고 재미있고 알차게’였습니다. 아이들이 대부분 지리를 암기 과목으로 생각하는데, 지리는 암기가 아니라 이해 과목이라는 것을 깨우쳐주는게 주된 목적이었죠. 시험문제를 낼 때는 밤을 새워가며 외우기만 해가지고는 절대 답을 맞히지 못하도록, 추측해 생각하는 힘이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를 냈지요. 고3 아이들을 위해 주말에도 특강을 하고, 새벽까지 함께 공부했습니다. 정말 신명나게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제가 퇴임할 때 제자들이 주축이 돼 퇴임식을 해줬습니다.”


학문적 가치가 높은 지질과 지형, 다양한 광물 자원을 지닌 영월은 ‘살아 있는 지리 교과서’

환영지 | 위백규 | 1882년 | 한국 |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지도에 표시된 울릉도의 동남쪽에 독도(우산도)가 위치하고 있다.
“지리는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현장을 다루는 과목인데, 아이들이 책 따로 현실 따로 생각하는 게 가장 안타까웠다”고 그는 말한다. 자신들이 다니는 학교가 단구지형에 세워졌고 부모님이 일하는 밭이 카르스트 지형인데도, 책에서 보면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는 살아 있는 지식을 전하기 위해 갖가지 시도를 했다. 그의 아내는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 그가 수원 천천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나게 되었을 때, 아내는 “이제까지 열정적으로 잘 가르쳐왔는데, 아깝지 않느냐?”면서 박물관을 열 것을 권했다 한다. 퇴직하면 낚시나 다닐까 생각했던 그도 다시 열정을 불태우게 됐다. 달라진 것이라곤 학교가 아니라 박물관에서 지리를 가르친다는 것. 교육 대상도 어린이에서 중장년층까지 넓어졌다. 지리교사 시절 양 관장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26개국을 다니며 지리답사를 했고, 여행 틈틈이 지리 관련 유물이나 자료를 모아왔다. 제자들을 위해 수원의 지형도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박물관을 열기 위해 그는 그동안 모아놓은 돈에 퇴직금까지 털었는데, 개관 후에도 매년 2000만원 정도 운영비가 들어간다고 한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숙식을 해결하며 생활하는 것도 어려움. 주말에는 아내가 찾아와 관람객 안내 등을 돕는다. 쉽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그는 관람객을 보면 펄펄 힘이 난다.

부모님과 함께 박물관을 찾은 아이들을 보면 “너, 한 시간 동안 내 설명을 듣고 가면 시험 볼 때 일곱 문제는 건질 것”이라며 솔깃하게 한다.

“영월은 이웃한 제천·단양·삼척과 함께 시멘트 공업이 발달한 곳이야. 시멘트 원료인 석회석이 풍부하거든. 시멘트는 도시에서 많이 필요한데, 시멘트 공장은 이곳에 세우는 게 나을까? 도시에 세우는 게 나을까? 맞아. 시멘트가 석회석보다 가벼우니까 석회석을 시멘트로 만들어 운반하는 게 낫겠지? 이런 걸 원료지향성 공업이라고 하지.”

실측일청한군용정도 | 1895년 | 일본 |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한일간의 국경선이 그려져 있는 1895년 일본에서 그린 실측 일청한군사용 정밀지도로 동해상에 송도(松島 : 마츠시마, 한국의 울릉도)와 죽도(竹島 : 타케시마, 한국의 독도)가 한국 영토 속에 정확히 그려져 표기되어 있다.
이때까지도 일본은 독도와 울릉도의 위치를 바꾸어 잘못 표시하고 있다.
세계의 고지도 컬렉션, 탐험가들이 쓰던 도구, 지형도, 광물 등 박물관의 전시품을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그의 ‘지리교육’은 물 흐르듯 흘러간다. 수원에서 교사생활을 했던 그가 영월에 박물관을 세운 것은 영월이 우리나라에서 지리답사 1번지이기 때문이다.

ATLAS OF THE WORLD | 1970년 | National Geographic society |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1950년대 현대지도에 독도를 일본 영토 다케시마로 잘못 표시했던 세계 유명 지도 제작자들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섬 독도로 수정하여 표시하기 시작함으로써 독도의 한국 영토를 증거해주었다.
“신동국여지승람(新東國輿地勝覽)은 영월에 대해 ‘칼 같은 산이 첩첩이요 계곡은 맑고 고요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살아 있는 지리 교과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학문적 가치가 높은 지질과 지형을 지니고 있는 곳이지요. 광물자원의 표본실이라 할 만큼 다양한 광물이 나기도 하고요. 영월은 선돌, 한반도 지형, 청룡포 등 빼어나고 이색적인 풍경의 관광지가 많은데, 그게 모두 이 지역의 독특한 지리적 환경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영월 곳곳을 다니며 현장에서 지리공부를 하는 트레킹 코스가 박물관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그의 꿈은 이곳을 세계 최고의 지리박물관으로 만드는 것. 그는 단지 그 첫 삽을 떴을 뿐이라고 말한다.

“지형, 기후-식생, 토양-암석, 문화, 자원, 각 대륙관 등 17개 관을 갖춘 박물관이 되었으면 해요. 세계의 지리학도들이 찾아올 수 있는. 영월지역 답사와 연계하면 세계적으로도 명소가 될 수 있거든요. 제 뒤를 이을 사람들이 나온다면 100년쯤 후에는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사진 : 김선아
  • 201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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