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 화가 이소연

재편된 세상 속에 그려진 소녀의 모습

“나뭇가지 사이로 빛이 땅으로 꽂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맑고 투명한 숲에 늘 가보고 싶었어요. 만화영화 〈월령공주〉에 나오는 사슴이 뛰어노는 숲 같은 곳이요. 실제 일본 나라(奈良)에 가면 그런 사슴 숲이 있답니다. 그곳과 태국의 치앙마이 근처의 숲을 트레킹하면서 이런 맑은 숲을 체험했어요.”

이소연
1971년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여 수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2007년 독일 뮌스터 쿤스터 아카데미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 독일 콜롬부스 아트파운데이션에서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젊은 작가 지원 프로그램 전시인 아트 스펙트럼에 선정되었다. 바덴 미술관, 랍슈타트 시립미술관, 뮌스터 시립미술관, 에센 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조현갤러리, 가나갤러리, 롯데갤러리 등 주요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2007년 뒤셀도르프의 콘라드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카이스 갤러리(서울/홍콩), 테라도쿄갤러리(도쿄), 조현갤러리(서울) 등에서 7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2006년부터 독일 쾰른 아트 콜로니, 프랑스 파리의 쇼 오프, 스페인 마드리드의 아르코, 뉴욕의 스코프와 펄스 아트페어 등 세계적인 아트페어에 참여해 세계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CB 콜렉션, 독일의 아헨바흐 아트 컨설팅, 콜롬부스 아트파운데이션, 스페인 마드리드의 t.VIS.t 커뮤니케이션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서울 청담동 조현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여섯 번째 개인전의 타이틀이자 메인 작품의 제목인 〈사슴숲〉 앞에서 화가 이소연의 설명이다. 낙원을 연상시키듯 평화롭고 고요한 숲이다. 홍학과 흑고니의 등장은 물가와 숲에 사는 모든 짐승이 어울리고 있는 것 같은 가상의 평화를 부여하지만 흑고니의 외면하는 시선은 화면에 묘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가장 낯설면서도 그림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은발의 피리를 들고 있는 소녀다. 잠시 연주를 멈춘 소녀는 숲의 평화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다. 찢어진 눈과 툭 튀어나온 광대뼈의 소녀는 이소연의 그림에 중요한 캐릭터이자 메인 테마의 담당자다. 동양적인 너무나 동양적으로 생긴 이 소녀에 관한 이야기가 그녀의 그림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겠다.

그녀는 인터뷰 약속 시간에 정확하게 등장했다. 그림 속 소녀와 닮아 보인다는 말에 그녀는 웃으며 답한다.

“그러나 너무 닮지는 않았어요. 평소에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겁니다. 나를 과묵하고 쌀쌀맞고 세 보인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 반대여요.”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과연 그녀는 밝고 유쾌하고 상냥했다. 그림 속 소녀는 그림인지라 몇몇 특징이 더 과장되어 있다. 중국의 위에민준, 팡리준 같은 작가들도 작가 자신과 유사한 인물을 설정하여 그림을 그린다. 이 인물들을 통해서 위에민준과 팡리준은 풍자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변화하는 중국사회를 묘사하는 데 성공하고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하였다. 이들의 인물들처럼 이소연의 그림 속 소녀는 그녀의 페르소나일 수는 있지만 자화상은 아니다.

사슴숲 Deer Forest_oil on canvas, 225×350cm, 2011
찢어진 눈과 툭 튀어나온 광대뼈, 꾹 다문 침묵의 입술은 사실 서양인의 눈에 비친 동양인의 얼굴에 더 가깝다. 소위 ‘타자화된 시선’으로 재해석된 얼굴인 것이다. 이 그림은 10여 년간의 긴 독일 유학 중에 시작되었다.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 느껴야만 하는 소외감은 언어뿐 아니라 외모에서도 나타나게 마련이다. 아무리 능숙하게 그들의 문화에 접근한다 해도 다른 외모는 끊임없이 그들과 우리가 다름을 느끼게 해준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받아야만 하는 묘한 시선에 이소연은 주눅들지 않았다.

“불쾌해하면 힘드니까 그러려니 하고 즐겼어요.”

웨딩드레스 Wedd ing Dress_oil on canvas, 230×130cm, 2006
이런 긍정성이 그녀의 그림을 유쾌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외국인이 바라본 타자의 시선을 담은 얼굴은 ‘차이’를 개성으로 인식하는 당당함이 담겨 있다. 그림 속 소녀들은 “그래, 난 달라”라고 말하는 듯하다. 초기 작품에서 보였던 두려움과 모색의 표정을 거쳐 이제 소녀는 동양인의 정체성을 즐기며, 자기 삶을 탐닉하면서 세상을 대면하고 있다. 그림 속 소녀가 당당하게 관람객을 또렷이 응시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유다.

소녀가 등장하는 사슴 숲, 연꽃이 무수히 핀 연못 등의 배경은 사진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충분히 사실적이며, 디테일을 처리하는 방식에는 세련된 현대 독일 회화다운 맛이 배어 있다. 마치 역광을 비춘 듯이 묘사된 얼굴은 이소연이 추구하는 현실도 비현실도 아닌 중간 상태를 보여준다. 만화 같은 비현실감도 지나친 현실감으로부터도 그녀는 탈출해서 세상을 자신을 중심으로 재편하고 구성의 중심에 당당하게 위치한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그녀에게 펼쳐진 공간적 무대도 넓다. 또 일반적인 초상화의 구도를 취하기도 하기 때문에 초상화 전통에서 오는 다양한 힌트는 그녀의 작품 무대를 시간적으로도 무한히 확장시킬 수 있다. 시공간의 무한대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그림 속 소녀는 만끽하고 있다.

“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입니다. 여행하면서 여러 가지 사물을 발견하게 되죠. 이전에 경험했거나 상상했던 것들을 현실에서 만나는 순간이 있어요. 이것을 메모해두었다가 작업으로 풀어내는 것입니다.”

털코트 Furcoat_oil on canvas, 170×270cm, 2006
예민하고 관찰력이 뛰어난 그녀가 여행 중에 만나는 분위기, 자연환경, 사물에 대한 그녀만의 느낌을 그린 그림은 평범한 사물도 새로운 볼거리로 만들어준다. 유럽 여행 중에 흔히 보게 되는 젖소들이 풀을 뜯는 평화로운 전원 풍경은 작품 〈털코트〉의 배경이 되었다. 무심히 풀을 뜯고 있는 젖소들 가운데 비슷한 무늬를 입은 소녀가 프라다 가방을 들고 등장한다. 소에게는 타고난 것이고 소녀에게는 고가의 명품 치장이다. 엉뚱한 발상이다. 그림 속 소녀들이 입고 등장하는 옷이나 장신구, 소품은 모두 그녀의 작업실에 있는 것들이다. 코스튬 플레이용 같은 다소간 현실과 동떨어진 옷들도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그림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그 물건들을 가지게 되었을 때의 생각, 감정 상태, 그 순간의 개인의 역사를 이야기해 준다. 〈웨딩〉 〈빨간장〉에 등장하는 화려한 바로크 무늬 벽지와 빨간색 찬장은 독일 유학시절에 살던 집의 모습을 전한다. 사물은 그림 속 풍경의 일부가 되며 인물의 심리를 매개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연꽃 Lotus_oil on canvas, 180×270cm, 2006
그녀의 그림은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독일의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유학하던 시절, 독일 교수들은 개성이 강한 그녀의 그림을 좋아했다. 테크닉도 인정받았고 회화적인 측면에서도 재미있어 했다. 2008년 귀국하기 이전에 그녀의 작품은 독일의 중요한 전시에 여러 차례 소개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인 2005년 라벤스브룩의 콜롬부스 아트파운데이션에서 주는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였다. 매년 스위스·오스트리아·독일 등지에서 1~3명의 학생을 선발해 전시, 도록을 협찬해주는 귀한 기회다. 콜롬부스 아트파운데이션의 재단 이사장과의 인연은 지금도 이어져 그녀가 작가로서 성장해가는 과정을 지켜봐주고 격려해준다. 2006년 뮌스터 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 〈페이스 투 페이스〉전은 독일의 유명 작가인 조나단 메세 같은 작가들이 포함된 전시였다. 자화상을 주제로 한 이 전시에 이소연은 유일한 학생으로 참여했다. 이때 뒤셀도르프 콘라드 갤러리의 관장이 그녀의 작품에 매료되어 그녀를 전격 발탁하고 그해 곧바로 뉴욕 스코프 아트페어에 참여하여 좋은 성과를 얻었다. 한국 화랑과의 인연도 외국에서 시작되었다. 콘라드 갤러리가 스페인에서 열리는 아르코 아트페어에 그녀의 작품을 출품했는데, 여기에 참여한 한국의 조현갤러리가 국내에 처음 그녀의 작품을 소개하였다. 이외에 유럽과 일본 등 국제 미술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그녀의 올해 일정은 꽉 차 있다. 9월에 있을 런던의 퍼디 힉스 갤러리에서 새로운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금붕어 Goldf ish_oil on canvas, 160×190cm, 2006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여행하면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는 것이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이 많아요. 몽골·멕시코·사막·티벳·애리조나에도 갈 생각이에요. 티벳에 가면 라마라는 동물이 있는데,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이 동물의 귀에 장신구를 달아준대요. 가서 보고 싶어요.”

이런 것들을 상상하고, 여행하며 실제로 체감하고, 마침내 작품으로 재구성하는 과정 모두가 그녀에게는 즐거운 일이다. 하루 종일 작업 생각만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림 속 소녀는 늘 새로운 세계를 탐색하고, 자아를 확장한다. 그녀가 가는 공간과 시간은 무한대이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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