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피아니스트 김가온

프리즘을 통과한 빛처럼 다채로운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재즈 피아니스트 김가온(35) 씨는 서울대 음대 작곡과에서 이론을 전공했다. 이후 미국의 버클리 음대와 뉴욕대 음대에서 재즈 피아노를 공부했다. “흑인음악을 흑인들과 함께 배울 수 있어 행복했다”는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친 후, 그는 ‘실력파’라는 소문답게 바삐 지낸다. 그는 요즘 에반스, 야누스 등 유명 재즈클럽과 함께 예술의전당에서 <김가온의 수요 재즈 콘서트>를 열고 있다. 그는 재즈의 또 다른 매력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가슴이 늘 설렌다고 한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김가온 씨의 모습은 독특하다. 물론 연주자마다 각자 개성을 나타내는 연주 스타일이 있지만, 그는 어딘지 모르게 조금 더 특이하다. 음악의 흐름에 맞춰 등을 구부렸다 펴기도 하고, 팔꿈치를 아래위로 쉴 새 없이 흔든다. 또 의자에서 일어날 것 같은 자세를 취하는가 싶더니, 다시 앉아 머리를 피아노 건반 가까이로 가져간다. 미국인 피아니스트 존 슈미트 작곡의 〈올 오브 미〉를 앙코르 곡으로 <김가온의 수요일 재즈 콘서트>가 끝났다. 콘서트가 열린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1층 푸치니 바는 몇 분간 관객의 박수 소리로 가득했다. 연주를 마친 그는 무대에서 히죽히죽 웃었다.

“쇼맨십이라기보다는… 다른 연주자보다 무대에서 움직임이 더 많은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고, 저도 모르게 음악에 깊이 빠지면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웃음). 더 많이 표현하고 싶거든요.”

무대에서 한 시간 남짓 강렬하게 에너지를 분출했음에도 그는 쌩쌩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마이너리그인 재즈를 예술의전당이라는 상징적인 장소에서 연주한다는 사실이 무척 신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푸치니 바는 네 사람이 함께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스무 개 남짓한 공간인데, 그의 연주가 열리는 날이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인다고 한다. 샌드위치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의 연주를 듣고 돌아가는 관객에게 ‘재즈도 재미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 이것이 그가 이 무대에서 희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음악대학에 가기로 결심했어요. 터무니없이 늦은 선택이었죠. 그저 음악이 좋았고, 음악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이겨내지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는 어린 시절 특별한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니며 체르니 30번까지 배우고,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리코더, 이모부에게 어깨 너머로 기타를 배운 게 전부였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순간순간 떠오르는 선율을 피아노나 기타로 연주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모의고사에서 전국 1등, 수능에서 전국 7등을 했던 그가 음대에 입학한 것은 그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선택이었다.

“음대에 입학했더니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음악을 배운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음악적 바탕이 없던 저는 단기간에 따라잡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지요. 그러다 음악 동아리인 ‘서울대 합창단’에 들어갔어요. 아마추어 합창단이지만 모두 열심히 했고요. 합창단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음악을 새롭게 배웠어요. 어떻게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지, 끌어내야 하는지를 깨달았지요.”


수능 전국 7등, 음대에 진학하다

대학시절 그는 지휘에 흥미를 느껴, 졸업 후 지휘공부를 해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틈틈이 쌓아온 즉흥연주에 대한 호기심이 결국 그를 미국으로 떠나게 했다.

그는 즉흥연주야말로 재즈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요소라고 설명한다. “클래식은 작곡가를 위한 음악이고, 재즈는 연주자를 위한 음악”이라고 한다.

“재즈를 처음 배울 때는 즉흥연주가 가장 어려웠어요.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생기면서 즐길 수 있게 되었지요. 즉흥연주에서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그가 본격적으로 재즈를 배운 것은 미국 보스톤에 있는 버클리 음대에서였다. 당시 방값을 제외하고 한 달에 약 150달러(한화 약 20만원)를 쓸 수 있었는데, 이 돈으로 책도 사고 공연도 보고 했다며 웃는다. 버클리 음대에서 그가 경험한 것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수많은 국적의 사람들을 만났는데, 저마다 소위 한 가닥 한다는 사람들이었죠. 그때도 저는 재즈를 처음 배우는 입장이라 무조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학교 연습실이 문을 열 때부터 닫을 때까지 하루 종일 틀어박혀 지냈지요. 제 별명이 ‘연습벌레’였어요.”

버클리 음대를 거쳐 뉴욕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재즈 연주자들의 메카로 불리는 뉴욕의 유명 재즈 클럽에서 공연도 했다.

“할렘의 한 클럽에서 공연하게 되었는데, 흑인이 사는 할렘에서 흑인 관객을 두고 흑인음악을 연주하려니까 무척 긴장되더라고요. 공연이 무르익을수록 연주를 즐기며 어깨춤을 추던 한 흑인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네요.”

2008년 귀국한 그는 지금까지 쉴 틈이 없었다. 김가온 트리오, 말로 밴드, 박선주 밴드 등 다양한 밴드와 공연하고, 몇몇 외국 아티스트의 한국 투어 팀에도 참가했다. 자신이 작곡·편곡한 곡들로 2009년 1집 앨범 〈언라이크 디 아더 데이〉에 이어 최근에는 2집 〈프리즈메틱〉도 냈다.

“무언가를 창작하고 연주한 것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미가 있죠. 곡을 쓰고 앨범을 내면서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좋아요. 앨범 작업하는 동안은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지만 그 어느 때보다 음악에 깊이 빠지게 되죠.”

2집 앨범에 그가 담고자 한 것은 ‘햇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분산돼 다양한 빛깔을 내듯 다양한 색깔을 가진 음악’이다. 이번 앨범에서는 그가 직접 작곡한 창작곡 세 곡과 재즈풍으로 편곡한 가곡 ‘남촌’, 스페인 가곡 ‘나 여기 혼자 있다’ 등이 담겼다.

“재즈라는 장르가 워낙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로스오버, 퓨전이라는 말도 있지만, 저는 굳이 그런 단어를 쓰고 싶지 않고요. 그저 재즈를 통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한국적인 아이디어부터 재즈 이외의 다른 요소를 재즈에 스며들게 하는 거죠.”

그는 자신이 훌륭한 재즈 음악가로 남기를 바란다고 하더니 그가 가장 존경하는 피아니스트인 오스카 피터슨의 생애 마지막 뉴욕 콘서트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손가락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고령에도 여전히 무대를 지키는 모습을 본받고 싶어요. 죽을 때까지 연주자로 사는 걸 운명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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