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박물관·미술관을 찾아서] 두루뫼박물관 강위수·김애영 부부

비무장지대에 있는 고향 생각하며 만든 박물관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법원리, 두루뫼박물관을 찾았을 때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이 쓴 소설 《순수 박물관》이 떠올랐다. 일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한 남자가 아주 사소한 것까지 그 여자와의 추억이 얽힌 물건들을 하나하나 모아 만든 박물관. 두루뫼박물관은 소설가 강위수 씨의 고향에 대한 기억, 이제까지 삶의 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박물관이다.
겨울 티를 벗지 못해 산야가 아직 황량한 초봄, 박물관을 찾았을 때 강위수 씨의 아내인 박물관장 김애영 씨가 먼저 맞았다. 잠시 후 나타난 강위수 씨는 “난 그저 일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날도 박물관 여기저기를 손보다 급히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고 한다.

부부의 안내로 박물관을 둘러봤다. 도자기생활사, 농업생활사, 근세생활사 등으로 나뉘어 있는 전시실. 함지박, 문서함, 대패와 저울, 말, 되, 홉 등 계량용구, 실을 잣던 물레와 돗자리를 짜는 데 쓰던 고드렛돌, 소 앞발에 신기던 쇠신, 달걀을 넣어두던 알둥우리, 도롱이, 짚신, 화로, 인두, 유기그릇, 호미, 따비, 괭이, 지게, 주판, 등잔, 담뱃대 등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생활에 긴요했던 물건들이 전시품이 되어 놓여 있었다. 방앗간, 대장간, 헛간, 너와집, 원두막, 장독대, 솟대, 옹달샘, 서낭당, 장승도 재현해놓았다. 한 바퀴 둘러보면서 ‘이 분이 이곳에 기억속 고향마을을 옮겨놓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나고 자란 곳은 경기도 장단군 장단면 동장리 주산동(周山洞). 고향 사람들이 모두 ‘두루뫼(周山)’라고 부르던 마을 이름을 박물관 이름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고향땅을 밟지 못한다. 두루뫼 마을이 군사분계선 북쪽 비무장지대 안에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접근도 허락되지 않는 지뢰밭의 금단구역이 된 고향. 두루뫼박물관은 그의 고향에서 남쪽으로 50여 리, 지척의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도라산 전망대에 올라가면 고향이 보이는데, 이제는 집 한 채 안 남아 있는 잡초밭이 되어 있습니다. 판문점(板門店)은 널문리라고 불렀는데, 우리마을에서 가까워 어릴 적 드나들던 곳이었죠.”

고향이 남북 대치의 현장이 되면서 살던 곳을 억지로 떠나야 했던 그의 삶은 편편치 않았다. 어렵게 대학을 마친 그는 신춘문예에 당선해 소설가로 등단하고, 방송작가로도 활동했다. 농협과 관련된 영상물의 대본을 쓰다 1966년 농협중앙회에 특채됐고, 그 후 1990년대까지 100여 편의 농협교육-홍보영화를 만들었다.

“농협에 간 지 2년 후 감독일을 하던 분이 충무로로 떠나는 바람에 제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감독까지 했죠. 홍보영화라 해도 제작 의도를 너무 노출시키면 관객에게 외면당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980년에 만든 영화 〈해오라기 마을〉은 농협의 보험사업 홍보를 위해 제작한 것이지만, 극영화로서 작품성을 갖추기 위해 나름대로 공을 들였습니다. 고두심·김수미·김영애·이영하·임채무·임현식 등 인기 연예인이 대거 출연했던 영화였죠.”

옛 가구, 도자기 등이 전시된 전시실. 바구니에 오자미 넣기 등 옛 놀이도 체험할 수 있다.
박물관 테마 전시관에는 그가 쓴 방송 드라마 대본과 농협시절 만든 영화 대본, 16mm 영화 필름, 카메라, 영사기, 환등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아내와는 농협중앙회에서 만났다.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아내에게 그는 ‘잘생긴데다 글을 쓰는 멋진 남자’였다. “제가 미남을 좋아하거든요. 어느 날 뒷모습을 보니 엉덩이 부분을 기워 입었더라고요. ‘나를 필요로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갔어요”라는 아내 말을 듣고 있던 그는 “이 사람이 경기여고, 이화여대 국문과를 나온 엘리트예요. 게다가 얼굴도 예뻤고요”라고 화답한다. 결혼하고 보니 남편은 ‘언제나 꿈꾸는 소년’이었다. 아내는 서울 북창동에서 30년간 음반가게를 하면서 살림을 보탰다. 그때의 LP판은 박물관 휴게실에 놓여 있다.


소설 쓰기 위해 도굴꾼 취재하다 수집 시작

그가 본격적으로 수집을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 도굴꾼을 소재로 한 작품 《돌의 미소》를 쓰면서였다.

“소설을 쓰기 위해 도굴꾼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은 풍수지리의 대가예요. 유물이 묻혀 있을 자리를 귀신같이 찾아냅니다. 토기는 너무 많이 나와 ‘똥단지가 나왔다’고 할 정도로 쳐주지 않을 때였죠. 그때부터 옛날 물건에 애착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월급쟁이 처지라 값이 헐한 토기부터 모으기 시작했다 한다. 도자기생활사관에는 원삼국시대 적색 토기부터 백제, 가야, 신라, 고려, 조선시대 도자기 등 그가 수집한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소꿉장난처럼 보이는 부장용 토기도 있다. 농협 영화를 촬영하고 상영하느라 전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던 그는 농촌에서조차 새것에 열광하면서 옛 농기구나 생활용품을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손때 묻는 물건들이 우리의 역사요 추억이라 생각한 그는 가까운 시대의 물건들도 수집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만 해도 옹기나 목물 같은 근세 유물은 큰 경제적 부담 없이 수집할 수 있었다. 집이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찼다. 돈만 생기면 옛 물건을 사서 쌓아놓는 남편이 아내는 원망스럽지 않았을까.

강위수 씨는 “싫은 표정 짓지 않고 따라주었다”고 아내에게 감사를 표현한다. 농협에서 농민신문 국장, 농업박물관 관장, 자회사 상무까지 35년을 근무한 후 퇴직한 그는 고향과 가까운 파주로 옮겼다. 원래는 방 한 칸을 곁들인 창고를 지어 서울 집의 물건들을 옮겨놓고 그동안 못 쓰던 작품이나 쓰고 살겠다는 생각이었다. 1998년, 삽질을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건축비가 너무 많이 들었고, ‘이럴 바에는 박물관을 하자’고 생각을 바꿨다. 두루뫼박물관은 그렇게 탄생했다.

“대외적인 일은 아내가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 관장을 맡겼습니다. 박물관을 만들어놓고 보니 일이 너무 많아요. 방앗간, 헛간 등 야외전시물이 많은데다 산간 경사지라는 지형 특징을 살려 산나리, 국화, 붓꽃 등을 심다 보니 내내 매만지고 고치고 잡초 뽑아주는 일이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친구 오면 같이 차나 마시며 전원생활을 즐기고, 글도 쓰겠다는 원래 계획은 저만치 멀어졌습니다. 막노동꾼이 다 됐지요.”

박물관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운영이 쉽지 않다는 것도 고민이다. “시설 좋은 국공립 박물관이 입장료를 받지 않으니, 개인의 힘으로 꾸려가는 사립 박물관에 입장료가 있으면 꺼려한다”고 그는 어려움을 토로한다. 두루뫼박물관은 그저 보기만 하고 가는 박물관이 아니다. 탈곡과 도정 과정을 경험하는 벼훑기, 감자 구워먹기, 주먹밥 만들어 먹기, 제기차기, 널뛰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다듬이질을 해보고, 북·장구·꽹과리를 칠 수도 있다. 간간이 특별 기획전과 시낭송 페스티벌도 열린다.

“방송작가인 친구가 놀러왔을 때 ‘이 일에 매달려 글 한 줄 못 쓴다’고 푸념했더니 ‘글은 너 아니라도 쓸 사람이 많지만, 이건 너만 할 수 있는 작품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맞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는 지금 박물관을 그의 삶 전체가 깃든 작품으로 만들고 있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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