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 원곡동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유승덕 이사

이주민들의 삶과 예술을 아우르는 공간

해외 이주노동자 중 80%가 넘게 산다는 지역적 특성을 가진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은 한국 최대의 이주민 밀집지역이다. 9.91㎢ 넓이의 원곡동에는 50여 개국에서 온 이주민과 불법체류자, 미등록자까지 포함하면 5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고, 150여 개의 식당을 포함한 530개 업소가 이 이주민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리틀 아시아’ ‘국경 없는 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아시아·중동·러시아·아프리카 등지의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이색적인 풍광을 만들어낸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이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 프로젝트가 활발히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 뒤에는 안산시 원곡동에 자리 잡고 다문화 관련 문화예술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가 있다. 이곳은 새로운 삶과 예술을 실험하고자 하는 예술가, 이주민, 전시기획자, 시민운동가 등이 함께 모여 운영하는 공동체 공간이다.

“이 지역의 다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해 문화생산과 교류를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다양한 국가와 민족의 사람들이 문화를 매개체로 만나는 만남의 장입니다.”

이 공간은 시각예술을 하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 안산이주민센터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원곡동이란 지역을 알면서 시작됐다. 유승덕(50) 이사와 창립 멤버는 삶과 예술이 분리되는 현실을 허물기 위해 특정 장르에 한정되지 않는 예술을 추구한다. 새로운 삶과 예술을 실험하고 싶었던 이들은 지역과 예술의 결합을 도모하기 위해 2007년 9월, 원곡동의 한 지하다방을 개조해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를 꾸렸다.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곳에서 이들은 삶과 예술을 아우르는 시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산성 용액이 닿으면 붉은색, 염기성 용액이 닿으면 파란색으로 변하는 리트머스 종이처럼 다양한 문화와 접촉하면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겠다는 의미에서 이 공간에 ‘리트머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들은 이주민의 삶을 담은 작품으로 발표회를 갖는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열정을 쏟아 활동하면 이주민과 가족 같은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한국에 잠시 머물렀다 가는 이들이어서 장기적인 안목에서 작업하기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주민과 한국인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 만들어

‘리트머스’는 이주민을 이곳으로 끌어들이기보다 자신들이 이주민의 삶의 현장으로 나가기로 했다. 2009년 <욜라뿅따이>라는 페스티벌을 연 것도 그런 취지에서였다. 이 축제는 예술가와 이주민, 원곡동 주민과 일반인이 함께 참여하는 일요 벼룩시장, 예술가와 이주민이 짝을 지어 함께 하는 전시, 이주민과 한국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 이주노동자 영화제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특히 ‘국경 없는 마을 클럽데이’는 인기가 많았다.

클럽데이 하면 흔히 홍대를 연상하는데, 원곡동의 클럽데이는 조금 특별하다. 원곡동 열 군데 식당에 클럽 공간을 만들어 이주민 밴드와 한국인 밴드가 공연을 펼치면서 부대행사로는 퍼레이드, 그래피티쇼, 칵테일쇼, 마술쇼 등을 진행했다. 원곡동은 주말이면 전국에서 이주민이 모여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곡동의 식당은 단순히 음식만 먹는 곳이 아닌 이주민들의 커뮤니티 기능을 하는 곳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와 고단함을 푸는 곳이기 때문이다.


‘인터 커리커처’ 또한 이주민과의 소통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인터, 즉 상호적이라는 뜻처럼 이주민과 예술가가 서로의 얼굴을 그려준다. 서로의 얼굴을 보고 그림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는 것이다.

“이주민은 한국인에게 거부감이 많아요.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쪽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촬영하거나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요. 그래서 소통하기 위한 매개체로 얼굴을 그려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중국교포들과 장기를 두는 ‘이상한 장기대회’,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인 ‘원곡동 레시피’ 등 이주민의 삶으로 들어가보려는 이들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원곡동과 원곡동을 둘러싼 사회문화현상은 누구나 지켜볼 수 있지만, 그냥 바라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기록하고, 그곳에 색깔을 입히고 다양한 과점을 돌아볼 수 있게끔 하는 게 주안점이다. 전시, 축제, 국제 레지던스 외에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문화예술 교육프로그램도 많다. 이주민을 위한 미디어 교육은 이주민들이 야근수당도 포기하고 달려와 배우고 갈 정도로 인기다.

“한국에 와서 살면서 느끼는 삶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어나가는 거예요. 스스로 감독, 예술가가 되는 것이죠. 이주민과 한 명씩 파트너가 되어 멘토로서 교육하고 있어요.”

지난해 12월부터 진행 중인 ‘다문화 교육 요리수업’도 빼놓을 수 없다. 이주민 요리사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양재혁(40) 팀장은 안산 인근의 아동센터에서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과 이주민이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어요. 이주민 셰프를 초대해 요리를 만들면서 다문화 요리를 배우는 수업이지요.”

양재혁 팀장이 직접 찾아다니며 섭외한 방글라데시・베트남・인도네시아・네팔 등지에서 온 4명의 셰프들의 반응 또한 좋다.

“무척 재미있어하세요. 누군가를 가르쳐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주민 요리사와 함께하는 ‘다문화 교육 요리수업’.
그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하면서 보고 느낀 경험을 토대로 《원곡동 사람들》이란 책도 발간했다.

“다문화 관련 책은 많이 나와 있어요. 주로 정책, 인권운동 차원의 소수자 관점에서 다룬 것이 많은데, 저희는 그러한 것들을 다 배제하고 10여 명의 리트머스 멤버들이 직접 이주민이 사는 공간으로 들어가 생활하면서 보고 느낀 에피소드 등을 담아냈어요.”

리트머스는 인종과 문화의 차이를 넘어 함께 어우러지는 활동을 비롯해 전시 활동과 학술 및 출판, 축제와 파티 등을 이주민과 함께 계속해가고 있다.

“40여 개국에서 온 이주민들이 뿜어내는 각기 다른 문화의 향기가 경계 없이 넘나들고, 양고기 꼬치 냄새가 길거리에 떠다니는 ‘이상한 나라’ 원곡동, 이 동네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풍성한 이야기에 조용히 귀 기울이는 일. 이 일은 삶과 예술, 인종과 인종, 문화와 문화 간에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며 알아가는 방식이고, 세상을 몸으로 혹은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을 계속해야 할 것 같아요.”

삶과 분리된 예술이 아니라 ‘삶과 함께하는 예술’을 하겠다는 리트머스. 우리나라의 또 다른 구성원이 된 이주민이 그들이 가진 특기를 살려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겠다고 말한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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