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으로 미술공모전 대상 수상한 최정규

가난하다고 꿈조차 포기할 수는 없었죠

서울디지털대학이 지난 2월 주최한 미술공모전에서 ‘자화상’으로 대상을 받은 최정규 씨. 그는 미술 전공자도 아니고 미술학원에 다닌 적도 없다. 재능은 뛰어났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때부터 공장에서 일하며 집안의 생계를 도왔다. 건설현장 노동자, 배관공, 주방 보조원 등 수십 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그는 독학으로 작품 활동을 한 끝에 마침내 화가의 꿈을 이루었다. 짐작은 했지만, 데뷔하기까지 그가 거쳐온 길은 사연도, 굴곡도 많았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그는 자신이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대여섯 살 무렵, 만화영화 <태권브이>를 보고 돌아와 비슷하게 그려낸 그림은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스케치북도, 물감 살 돈도 없던 그에게 달이 바뀔 때마다 한 장씩 뜯어내는 달력은 더없이 귀한 도화지였다. 하지만 작은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 밑에서, 공장 옥상에 슬레이트로 겨우 비바람만 가린 단칸방에서 생활하던 그에게 미술공부는 엄두도 내지 못할 꿈이었다. 재주가 뛰어난 아들이 행여 ‘미술학원에 보내달라’는 말을 꺼낼까 두려웠던 어머니는 어느 날 그의 그림을 모두 찢었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손재주 좋은 아들이 재단사가 되기를 바랐다. 그의 미래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산업체 부설 야간고등학교에 입학해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이면 학교로 향했다. 일찌감치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일했다. 지금까지 그가 거친 직업은 30가지가 넘는다. 군 제대 후 건설현장에서 익힌 기술로 한동안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리기도 했지만 건설경기가 침체되면서 또다시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졌다.

“공사비를 못 받아 빚까지 지게 됐어요. 그래서 새로 찾은 직업이 일식집 주방 보조였죠. 요리는 빨리 배웠는데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그러면서 그림을 조금씩 그리기 시작했어요. 사물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걸 좋아해 사람의 속눈썹을 표현할 때는 샤프심을 얇게 갈아서 그걸로 그리곤 했지요. 사진과 흡사한, 그런 그림이 극사실주의라는 건 나중에 알았어요.”

2009년 자화상.
얼마 뒤 ‘극사실주의 회화전’이 열리고 있던 갤러리를 찾은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나도 이만큼은 그릴 수 있겠다’ 싶은 작품의 가격이 1000만원을 호가했다. 그 자리에서 ‘그림을 잘 그리면 1년에 1억도 넘게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가지고 있던 돈을 털어 물감을 샀다’고 한다.

“앞으로 1년간 열심히 그림을 공부해서 데뷔하고, 5년 안에 화실을 차리자는 계획을 세웠어요.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주방에서 일하고,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그림을 그렸죠. 매일 서너 시간씩 눈 붙이고 출근하는 생활을 3개월 동안 하다 쓰러진 적도 있어요. 처음에는 화실에서 배우려고 했어요. 그런데 화가가 되고 싶다고 찾아간 저에게 원장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입시부터 준비해서 대학을 가라’고. 대학 갈 형편이 안 된다고 했더니 ‘그럼 괜히 미술계 물 흐릴 생각 말고 취미로나 하라’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정말 독하게 혼자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2010년 자화상.
그날 이후 그는 일식집도 그만두고 그림에만 매달렸다. 미술 관련 책을 탐독하며 이론을 익혔고, 바깥출입도 거의 하지 않은 채 아침부터 새벽까지 그림을 그렸다. 인터넷 카페도 만들어 자신의 작품을 올렸다. 그림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어떻게 그린 건지 방법을 알려달라’는 요청이 쇄도해 카페 회원들에게 무료로 표현기법을 전수해주기도 했다. 그중에는 취미로 미술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미대 학생, 화실 원장, 현직 작가 등도 있었다. 회원 수가 600명을 넘어서자 유료로 전환했다. 지금은 폐쇄했지만 한때 회원 수가 1400명에 달할 만큼 그의 카페는 큰 인기를 끌었다.

“인터넷에 작품을 공개하고, 저의 노하우를 공개하면서 긴장감이 생겨 더 열심히 하게 됐어요. 카페를 운영한 3년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을 정도로요. 그사이 전시회도 한 번 열었어요. 그때도 어느 갤러리 관장이 ‘너는 한국 미술계에서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실력도 좋고 성실하지만 성공하려면 대학부터 가라’고 조언하더라고요. 왜들 그렇게 대학을 가라고 하는지, 참 씁쓸했죠.”

그렇게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아트페어에 출품해 여러 점의 작품을 팔았다. 갤러리를 운영하며 유망한 화가들을 지원하는 것으로 유명한 에트로(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한국지사의 후원도 받게 되었다. 5월에는 전시회도 예정되어 있다. 최근 인터뷰 요청이 밀려들면서 유명세를 실감한다는 그는 “앞으로 더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어서 좋은 데 쓰고 싶다”며 웃었다.



그림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다

그는 그림을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자화상은 그가 즐겨 그리는 소재 중 하나. 그의 작업실에 전시된 것은 2009년 작으로, 이번에 대상을 수상한 ‘자화상’은 지난해 그린 것이다.

“두 해 연속 연말에 자화상을 그렸어요. 객관적인 상태에서 저를 바라보려는 노력이죠. 내면의 나와 소통하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지난 2년간 제게 나타난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어요. 2009년 그림은 멍한 표정과 불안한 시선이 무척 우울해 보이잖아요. 얼굴 한쪽은 아주 밝게 처리하고, 다른 한쪽은 비현실적으로 어둡게 그린 것도 ‘나에게는 아무리 좋은 일이 일어나도 늘 이렇게 어둠이 드리워져 있다’는 걸 표현한 것이죠. 그런데 이번에 그린 자화상은 이런 어둠을 걷어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져요.”

그런 마음가짐 덕분일까, 그는 올 들어 겹경사를 맞았다. 미술공모전 대상 수상 외에도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서울디지털대학 측이 그에게 4년 전액 장학금을 약속하며 입학을 제안한 것. 늦깎이 대학생이 된 그는 요즘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어린 시절엔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 주어지는 부당한 차별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우리 사회의 여러 부조리 속에서 좌절감을 많이 느꼈다는 최정규 씨. 그는 그 상처들을 그림을 통해 치유하고 있다.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이제 그에게 그림은 삶이자 희망이다.

“예전에는 세상에 불만이 많았어요. 학교 다닐 때나 군대에 있을 때 이유 없이 욕을 먹고, 맞으며 ‘나는 뭘해도 안 된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안고 살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출발점만 다를 뿐 사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세상에 도움이 되고, 저 같은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노력하면 길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어요. 또, 재능을 살리는 건 철저히 자신의 몫이라는 것도요.”

사진 : 김선아
  • 201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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