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욱교수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함께하는 창작 국악으로 국경 초월한 음악 만듭니다

현대적 감성을 담은 창작 국악으로 국내외에서 호평받고 있는 작곡가가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가야금·거문고·대금이 기타·드럼·색소폰·첼로와 함께 연주되고, 판소리와 오페라가 만나고, 국악기와 오케스트라가 협연을 한다. 한국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하되 세대와 국경을 초월해 누구나 공감하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병욱 교수(서원대 음대)가 그 주인공. 작곡가이자 대학교수로, 국악 실내악단 ‘이병욱과 어울림’ 대표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국악에 현대음악의 기법을 도입, 우리 음악의 대중화·세계화를 이끌고 있다.
유명한 대중음악가도 아니건만, 이병욱 교수에게는 회원 수 500명이 넘는 ‘팬클럽(어울사랑)’이 있다.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모임이다. 현대인이 점점 국악을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의 인기는 이변인 동시에 고무적이다.

지난 연말 그가 이끄는 ‘이병욱과 어울림’의 송년 콘서트장에서 맞닥뜨린 관객들의 뜨거운 열기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600석 규모의 객석은 빈 좌석을 찾기 어려웠다. 관객들은 연주가 끝날 때마다 환호하며 “얼쑤” “좋~다”를 외쳤다. 오케스트라처럼 배치된 무대에는 첼로·색소폰·드럼·가야금·거문고·대금·장구 등이 한데 섞여 있었다. 한 무대에서 서양악기와 국악기가 들려주는 선율은 그 조화가 절묘했고, 현대음악임에도 절절한 한과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되는 신명을 고스란히 담았다. 우리 음악의 색다른 매력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그가 이처럼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게 된 데는 음악인으로서 다양한 삶을 경험한, 평범치 않은 이력이 있다.

어린 시절, 노래를 곧잘 해 동네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기타에 빠지면서 음악과 인연을 맺었다. 중학교 때 독학으로 기타를 마스터했고, 오로지 음악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고향인 충남 서산을 떠나 서울로 왔다. 서라벌고 재학 시절에는 밴드 활동을 하며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날렸고 미8군 무대에도 섰다. 중앙대 작곡과 4학년 때는 뛰어난 실력으로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조직한 악극단에 스카우트되기도 했다.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 악극단은 고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남북협상을 위해 비밀리에 평양을 다녀온 후 남북문화교류를 위해 만든 것. 하지만 이씨가 권좌에서 물러나면서 곧바로 해체돼 입대하게 된 그는 육군본부 군악대에서 복무했다.

제대 후에도 공군 군악대의 제안으로 4년간 작·편곡 담당 군무원으로 일했다. 이후 기타교실 강사로, KBS 작·편곡자로 활발히 활동하던 그는 1984년 돌연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현대음악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지도교수는 오히려 ‘남의 것을 모방하지 말고 너만의 음악을 하라’고 조언하더군요.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한국의 전통 음악에서 현대적 기법과 소재를 찾으라는 말이었죠. 결국 서양음악을 연구하러 갔다가 우리 음악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안고 돌아오게 됐어요.”

아내와 아들, 딸, 며느리, 사위까지 참여하는 가족 국악실내악단 ‘둥지’.
4년 만에 귀국한 그는 국악의 현대화를 고민하다 도올 김용옥이 주최하는 ‘악서고해’라는 모임을 알게 되었다. 정약용이 쓴 《악서고존(樂書孤存)》을 강해하는 자리로, 연극인, 가야금 연주자, 유명 국악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전통문화를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모임이었다.

“국악 대중화를 고민하면서 전통 음악에 서양음악 기법인 화성을 입히는 시도를 했어요. 화성이란 두 음 이상이 동시에 연주되는 것으로 우리에게는 없는 기법이죠. 국악은 멜로디 하나에 장단 하나로 아주 간결한 것이 특징이지만, 서양음악에 익숙한 현대인에게는 국악을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그 단점을 보완하고자 한 것이죠. 국악을 대중화하려면 대중이 좋아해야 하잖아요. 마침 모임을 같이 하고 있던 연주자들에게 곡을 보여줬더니 다들 재미있어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들과 같이 ‘이병욱과 어울림’이라는 국악 실내악단을 만들고, 1988년 첫 음반을 냈어요. 당시 대학로에 있던 한 음반 매장에 2000장을 넣었는데 이틀 만에 매진되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제가 가야 할 방향을 확실히 알았지요.”

그동안 그는 1000여 곡을 만들었다. 이 중 10곡은 교과서에도 실렸다. 1년에 한두 차례 세계 각국에서 초청공연을 할 만큼 외국인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수상 경력도 화려해 1990년 대한민국 작곡상, 최우수상, 백상예술대상을 비롯해 1992년 KBS 국악작곡대상, 1994년 대한민국관악작곡상, 2010년 한국작곡가회 한국작곡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홍천에 만든 문화공간 ‘마리소리골’과 악기박물관.

가족 국악실내악단 창단, 강원도 홍천에 음악 문화공간도 마련

그의 가족은 모두 국악을 하는 음악인이다. 아들 영섭 씨는 대금을, 딸 은기 씨는 가야금을, 며느리 김복음 씨는 거문고를, 사위 이석종 씨는 장구를 비롯한 타악기를, 부인 황경애 씨는 전통 춤을 춘다.

오랫동안 피아노학원을 운영했던 부인 황씨는 중요무형문화재 97호인 이매방 선생에게 살풀이춤을 이수한 실력파. 1995년 한 방송에서 온 가족이 함께 연주한 것을 계기로 그는 1999년 ‘둥지’라는 이름의 가족 국악실내악단을 창단했다. 며느리·사위까지 국악인으로 맞으면서 단원은 모두 6명으로 늘었다.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국악을 지향하는 그는 강원도 홍천에 ‘마리소리골’이라는 색다른 문화공간을 마련해 지역문화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지인과 함께 우연히 찾은 산골마을, 차로도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오지였지만 그 고즈넉한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 그는 곧바로 터를 구입해 이곳에 작은 건물을 짓고, 음악작업을 위한 토굴도 만들었다. 2007년에는 강원도와 홍천군, 국비 지원을 받아 악기박물관도 열었다. 박물관을 채운 국내외 전통 악기들은 지인들에게 기증받았다.


“유럽음악제에 참가했을 때, 그 지역 시골 박물관 초청으로 연주를 한 적이 있어요. 우리도 이렇게 전시도 하고, 연주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악기 박물관이 개관하면서 그 꿈을 이룬 셈입니다. 현재 악기박물관에서 전통 민요, 전통 춤, 풍물놀이, 색소폰 등 4개의 강좌를 운영하고 있어요. 앞으로 주말 가족체험 프로그램이나 방학을 이용한 교사 연수, 학생들의 악기체험 강습 등을 하려고 해요. 또 이곳에서 세계민속음악축제를 열어 전 세계 민속음악이 만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경기도 안양의 집과 그가 몸담고 있는 충주의 서원대, 강원도 홍천까지 세 곳을 오가느라 바쁘지만 음악과 함께하는 일상이 더없이 즐겁다는 이병욱 교수. 음악을 “인간과 자연과 소리의 어울림”이라고 정의한 그는 전 세계인이 문화와 예술을 통해 하나가 되는 세상을 꿈꾼다. 그중에서도 ‘음악을 통한 마음의 정화’는 작곡가로서, 연주자로서 그가 소망하는 진짜 지향점이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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