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 서상익

젊은 세대의 삶과 꿈을 그리다

서상익
1977년 대구 출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 서양화과 수료. 2008년 1회 개인전 〈녹아내리는 오후〉, 2010년 2회 개인전 〈Circus〉, 갤러리 현대, 이천 시립미술관, 학고재 갤러리, IM Art갤러리, Salon de H, 선갤러리,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인, 뉴욕 링컨센터, 롯데아트 갤러리, 서울대학교 우석홀, 아트팩토리, AKA서울 갤러리, 갤러리 라 메르, 갤러리 가이아 등에서 열린 전시에 참여. 현재 서울에서 전업작가로 활동 중.
서상익은 단 한 폭의 그림으로 안목있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시절 그린 〈일요일 오후 4시〉라는 제목의 그림은 뛰어난 테크닉과 발랄한 이미지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백수의 왕은 일요일 오후 느슨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대학가 좁은 자취방의 싱글침대라는 옹색한 환경은 백수의 왕이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의 꿈은 ‘백수(百獸)의 왕’이지만, 현실에서는 ‘백수(白手)’가 아닐까. 88만원 세대의 꿈과 현실을 이보다 더 명료하게 보여주는 그림은 없었다.

이제 개인전을 두 번 한 젊은 작가를 주목하는 것은 그에게서 한국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상익의 작품은 ‘삶’이라는 말을 ‘일상’이라는 말이 대체한 시대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일상은 허망하고 반복되지만, 나는 나름의 상상과 꿈을 가지고 일상을 융해시킨다. 어제의 이 순간이 오늘의 이 순간과 같지 않다. 무료하게 반복되는 것 같은 일상에서도 개인의 이야기는 얼마든지 무궁무진하게 펼쳐나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늘 느낀다. 일상을 살아가는 이 개인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며, 이들의 다양성과 공존을 주장하고 싶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민중미술 이후 한국미술에서 사라졌던 ‘살아가는 이야기’가 새로운 방식으로 등장한 것이 서상익의 그림이다. 서구식 담론에 입각한 뜬구름 잡기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삶과 꿈에 관한 이야기다. 이 꿈과 상상의 바탕은 그가 가장 많이 경험했고 심취했으며, 그를 끓어오르게 했던 영화・음악 같은 대중문화다. 이런 대중문화 속 이야기가 일상의 사소한 일들과 화학작용을 일으켜 작품의 스토리를 구성한다. 그 상상력이 대중매체에 의해 촉발된 것이기 때문에 서상익의 상상은 그만의 것이 아닌,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것’이 된다.

Sunday PM 4:00_ 캔버스에 유채, 130.3×162.2cm, 2007
〈Use your illusion〉은 록그룹 ‘건스앤로지스’의 연주자 슬래시가 서상익의 자취방에서 전자 기타를 멋지게 연주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슬래시 뒤에서는 작가의 기타가 그를 바라보고 있다. 초보자용 기타는 슬래시의 연주에 감명을 받아 배우기 시작했지만 현재의 형편없는 솜씨를 암시한다. 멋진 기타리스트에 대한 환상은 남루한 일상을 구원해서 작품의 대상이 되게 만들어준다. 〈나를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작품은 코엔 형제 감독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힌트를 얻은 작품이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작업실 밖에는 흉악한 범죄자가 당당히 걸어가고 있지만, 경찰들은 엉뚱한 사람들만 수색하고 있는 불합리한 광경이 펼쳐진다. 코엔 형제 식의 잔혹한 블랙유머가 예술창작행위를 둘러싼 블랙유머로 바뀌는 순간이다. 서상익의 이런 스토리텔링의 재능은 한국 구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대단한 의미는 없을지라도 우리의 삶은 여전히 ‘그려질 가치가 있는’ 것임을 그는 보여준다. 얼마 전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어머니를 그린 〈엄마의 정원〉에는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가 밖에서는 못 보시지만 집 안에서나마 실컷 보시도록 벽면에 잔뜩 꽃을 그려 넣었다.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생로병사의 아픔 역시 그의 그림의 대상이 되었다.

나를 위한 나라는 없다_ 캔버스에 유채, 89.4×145.5cm, 2009


Use your illusion_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2007

담론의 횡포에도 시장의 횡포에도 길들지 않겠다는 독립선언

그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대세는 개념을 앞세운 설치 미디어 작품들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는 게 재미있었다. 현대미술에서 회화, 그것도 구상회화의 자리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회의 끝에 그는 대학을 마치고 애니메이션 회사에 입사해 2년간 일을 한다.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니 그사이 상황은 변하여 회화가 용인되는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잘 그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확신에 차서 말한다. “나는 내 감각을 믿는다.” 첫 개인전이 끝나고 미술계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 크고 작은 전시에 초빙되며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로서 다양하게 주목을 받았다. 평창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 역시 어느 뜻있는 후원자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젊은 작가들에게 일반 주택을 개조하여 작업실로 제공한 공간이다. 또 한 번의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작업실은 작품이 모두 빠져나가고 거금을 들여서 왕창 사들인 물감들이 잔뜩 쌓여 있다. 이 작은 성공 뒤의 변화한 상황 역시 그의 그림 속에 담겼는데, 최근작 〈NG〉는 변화한 상황에 대한 고민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엄마의 정원_ 캔버스에 유채, 130.3×162.2cm, 2010


NG_ 캔버스에 유채, 130.3×193.9cm, 2010
“그림은 나만의 진솔한 일상의 이야기다. 그런데 반지하에 사는 30대 초반 남자의 유치찬란한 상상의 진솔함이 어느 순간 시장을 위한 전략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상의 남루함 자체가 진실이 아니라 영화세트처럼 꾸며진 것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삶의 주체이고 싶었는데, 역전되어 배우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No Exit_캔버스에 유채, 22.7×15.8cm, 2009
자신의 작업을 예술적인 NG로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은 미술관과 미술시장 등 미술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사유를 그린 작업으로 표현되었다. 〈Paint it Black〉이라는 작품에서는 루브르의 모나리자가 걸려 있는 위치에 침팬지가 새까만 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자랑하며 장광설을 늘어놓고, 순진한 관람객들은 그에 몰두하고 있다. 기타리스트로 묘사된 진정한 예술가는 침팬지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미술사라는 거대 담론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공간에서 관람객이 그저 구경꾼이 되어버리는 상황은 작품 〈길들여지지 않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연출된다. 이번에 관람객들은 텅 빈 캔버스를 진지하게 바라본다. 미술관에 걸려 있는 좋은 작품이라니까 열심히 바라보지만 현대미술은 관람객에게는 ‘텅 빈’ 무엇일 뿐이다. 관람객 앞에 누더기를 물고가는 코요테는 요셉 보이스의 저 유명한 퍼포먼스 〈미국도 나를 좋아하고, 나도 미국을 좋아한다〉에서 따온 것이다. 코요테가 물고 있는 회색 누더기는 요셉 보이스의 상징물인 펠트천이다. 이 퍼포먼스의 끝에 야생의 코요테는 길들었지만, “나는 길들지 않는다”라고 서상익은 말한다. 담론의 횡포에도, 시장의 횡포에도 길들지 않겠다는 서상익 식의 독립선언이다.

“작가가 가장 부끄러워할 때는 무언가 하고자 하는 의욕과 신념이 있는데 작업하지 않고 게으름을 부리는 것, 아니면 무언가 신념과 열정이 사라졌는데 찍어내듯 반복하며 그리는 것이다.”

창작에서의 중요한 지점을 젊은 작가는 빨리 알아차렸다. 회화에 대한 신념과 열정이 있는 만큼 변화의 속도도 빠르다. 이전에는 포토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 주였지만, 최근에는 포토리얼리즘의 인위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도를 모색 중이다. 매끈한 표면처리 대신 다양한 붓자국을 실험하는 방식으로 바뀌어나가고 있다. 〈No Exit〉처럼 피부와 머리카락의 독특한 질감을 표현하는 데 관심을 더 기울이고 있다.

“전에는 이야기를 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면 이제는 그리는 재미에 더 빠지고 있다.”

Paint it Black_ 캔버스에 유채, 97×193.9cm, 2010


길들여지지 않기_ 캔버스에 유채, 112×145cm, 2009
좋은 그림이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이 그의 작품을 변화시켜나가고 있다. 대부분의 성공한 좋은 작가들처럼 그는 늘 관객보다 앞서서 변화해나가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릴 텐데, 길게 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2011년도 그의 전시 스케줄은 이미 꽉 차 있다. 열정이 있고, 젊음이 있는 작가 서상익의 또 다른 행보가 기대된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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