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문태국

따뜻한 음악인을 꿈꾸는 첼리스트

지난 1월 6일, 김대진 마에스트로가 이끄는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새해 첫 콘서트가 열렸다. 신년 음악회답게 레퍼토리는 흥분과 설렘, 웅장함 모두를 갖춘 드보르작의 ‘첼로협주곡 나단조’와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가 선정됐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관객은 연주 시작 후 채 몇 분이 지나기도 전, 섬세함과 웅장함을 물 흐르듯 오가는 오케스트라와 첼리스트의 협연에 깊이 몰입했다. 특히 어린 나이의 첼리스트가 보여준 노련한 열정은 막이 내린 후에도 오랜 환호와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음악회 후 지휘자 김대진 씨와.
재기발랄한 앙코르 곡까지 선사한 후 무대 뒤로 돌아온 첼리스트 문태국(17) 군. 그는 그제야 두 시간여의 공연이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일단 연주가 시작되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요. 무대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나올 때까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거든요. 이번에도 정신이 들었던 순간이 없던 걸로 보아 큰 실수는 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에요.”

이번 무대는 문군에게 여러 가지로 의미가 컸다. 평소 흠모하던 김대진 마에스트로에게 러브콜을 받은데다 고향인 수원에 금의환향한 것이다. 게다가 이번 무대는 그가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첫 무대였다. 많이 긴장됐지만 “오케스트라에 맞추지 말고 하던 대로 하라”는 김대진 지휘자의 배려에 편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큰 무대는 처음 들어서면 끝이 없어 보여요. 무대는 밝고 객석은 어두우니까요. 그런데 이번 연주회는 이상하게도 그 어떤 무대보다 마음이 편했어요.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고향에 왔다는 느낌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연주자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 중 하나는 악장 사이의 박수 소리다. 다음 악장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 소중한 시간을 방해받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연주회에서는 악장 사이 박수를 치는 관객이 단 한 명도 없었다며 고향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담뿍 묻어나는 표정으로 “너무 좋았다”는 말을 연발했다.

만 4세에 첼로를 잡은 문군. 첼로는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와 플루트 전공자인 아버지가 정해준 악기였다. 피아노와 관악기는 당신들이 하고 있으니, 현악기를 배우게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꼬마 문태국은 비올라보다 약간 큰 8분의 1 크기의 첼로를 갖고 다니며 당시 목원대에 출강하던 양영림 선생님에게서 사사하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게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엄마가 하라니까 그냥 했어요. 워낙 어려서 그런지 싫다고도, 좋다고도 느낀 적이 없었어요. 선생님께 칭찬받은 날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엄마가 맛있는 걸 사주셔서 좋았던 기억은 어렴풋이 있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점차 연습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두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한두 달 쉬면 어떨까 하는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콩쿠르에서 한 번씩 입상하고 나면 그 기쁨과 보람에 첼로에 대한 애정이 다시금 솟아나곤 했다. 그렇게 첼로와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아가던 그는 4학년 때 금호 영재 독주회를 가지면서 평생 첼리스트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2006년 성정 전국콩쿠르에서 대학생 누나와 형들을 제치고 대상을 수상한 일은 그의 결심에 날개를 달았다. 이후 그는 독일 올덴부르크 청소년 국제 콩쿠르 1등(2007), 차이코프스키 청소년 국제 콩쿠르 3등(2009), 퀸즈 심포니 오케스트라 및 줄리어드스쿨 프리컬리지 심포니와의 첼로 협연 콩쿠르 1등을 비롯, 국내외 수많은 콩쿠르에서 수상하며 세계적인 첼리스트의 탄생을 알렸다.


많은 도움 받은 만큼 베풀고파

문군은 현재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2007년 줄리어드음악원 예비학교에 입학 허가를 통보받은 후 부모님과 함께 건너갔다.

“고민은 별로 안 했어요. 학교 통과됐다는 얘기 듣고 결심은 섰는데 경제적으로 그다지 넉넉하지 못해 걱정은 많았죠. 그런데 많은 곳에서 도움을 주셔서 올 수 있었어요.”

2006년 그에게 대상을 안겼던 성정 전국콩쿠르를 연 재단, 성정문화재단에서도 꾸준히 그를 지원하고 있는데다 지난해 말에는 미국에 거주하는 예체능 영재들을 지원하는 잭 켄트 쿡 영아티스트 장학생으로 선정돼 한시름 걱정을 덜었다. 그 자신이 많은 곳에서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일까, 문군은 어린 나이임에도 베푸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실례로 그는 2006년, 만 11세 때 열었던 첫 연주회의 기금을 전액 결식아동 돕기에 썼다.

“미국에 가기 전 독주회를 한 번 갖기로 했는데, 아버지께서 우연히 결식아동에 관한 기사를 보시고는 결식아동 돕기 독주회를 갖자고 하셨어요. 그렇게 해서 첫 독주회로 남을 돕는 뜻 깊은 기억을 갖게 됐죠.”

그때 이후로 베푸는 삶에 대해 눈을 뜨게 됐다는 그는 현재 미국에서도 정기적으로 인근 병원을 찾아 연주하는 등 음악으로 실천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선율이 좋아 쇼스타코비치를 제일 좋아했다는 문태국 군.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라고 말하면서 그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음악 성향이 조금씩 바뀌고 있단다.

“원래는 바로크 음악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너무 틀에 박힌 것 같아서요. 하지만 철이 들어가는지 낭만에서 고전까지 모두 다 좋아지고 있어요. 차이코프스키든 바흐든 베토벤이든 어떤 작곡가의 작품이나 모두 이야기를 갖고 있잖아요. 그 마음을 이해해보자는 생각으로 듣다 보니 점차 각 시대의 음악이 와 닿기 시작했어요. 특히 지난 한 해 음악적으로 많이 성숙해졌다고 생각해요.”


문군은 연주자로서 첼로에 대한 순정을 드러내는 한편, 다른 악기,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욕심도 보였다.

“소리 나는 건 다 해보고 싶어요. 학교에서는 지휘 과정도 배우고 있어요. 지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악보 공부라서 연주에도 도움이 돼요. 일단 서른 살 전까지는 첼로에만 몰입할 거예요. 그 후 첼로 연주자로서 만족감을 느끼면 그때 지휘를 정식으로 공부해보고 싶어요. 또 클래식 이외에 재즈, 영화음악도 하는 첼리스트 요요마처럼 다른 장르의 음악도 하고 싶어요. 요요마는 모든 음악을 전하는 음악인 같아요. 그런 점이 좋아요. 여러 가지 많이 하면 좋잖아요(웃음). 저도 클래식 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음악을 알고 연주 또한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문군은 어떤 음악인으로 살아갈지에 대한 철학도 벌써 확고했다.

“음악만 잘하는 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선음악회를 열어 사람들도 돕고 싶고, 평소에도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남을 배려하는 음악인이 되고 싶어요.”

자신이 도움을 받은 만큼 많은 이들에게 보답하겠다는 문군, 그 따뜻한 마음만큼이나 아름다운 첼로 선율로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올 날을 기대해본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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