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어제저녁》 펴낸 베스트셀러 그림책 작가 백희나

만들면서 위로가 되고, 읽으면서 위로가 되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요

구름이 낮게 드리운 어느 날, 개구쟁이 꼬마가 동생 손을 이끌고 살그머니 집을 나간다. 형제는 나뭇가지에 걸린 작은 구름을 따다가 엄마에게 드리고, 엄마는 그 구름으로 구름빵을 만든다. 구름빵을 먹은 형제와 엄마는 구름처럼 두둥실 떠다닌다. 시간이 없어서 구름빵을 못 먹고 출근한 아빠. 형제는 훨훨 날아 출근길 교통정체 때문에 버스에 갇혀있는 아빠에게 구름빵을 건네고, 구름빵을 먹은 아빠도 하늘을 날아 교통정체를 뚫고 회사에 늦지 않게 도착한다.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구름빵》의 내용이다. 이 기분 좋은 상상력이 돋보이는 책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2004년 출간된 이 책은 출간된 지 6년이 지난 지금도 40만 부 이상 팔리며 여전히 유아・아동 부문 베스트셀러 2위를 지키고 있고(교보문고 2011년 2월 첫째 주 기준), 독일・프랑스・노르웨이・일본・중국 등지로 수출됐다. 그런가 하면 TV 애니메이션과 어린이용 뮤지컬로도 제작됐고, 한 유명 프랜차이즈 제과업체에서는 ‘구름빵’이라는 이름의 빵을 출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나온 《달 샤베트》, 올해 초 나온 《어제저녁》 역시 무서운 속도로 인기몰이 중이다. 《달 샤베트》는 무더운 여름날 전력 소모량이 많아서 정전이 되고 달이 녹아내리자, 달 물을 받아서 셔벗을 만들어 나눠 먹는 이야기이고, 《어제저녁》은 한 아파트 건물에 사는 이웃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이야기가 골자다. 《달 샤베트》는 출간 세달 만에 4만 부가 팔리면서 베스트셀러 3위에 올라있고, 《어제저녁》은 출간 한 달도 안 돼 5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 두 책은 1인 출판사에서 출간해 홍보나 마케팅이 전혀 없었음에도 무섭게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백희나 작가의 이름값 덕택이다.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은 반입체 방식이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동물 봉제인형을 만들고, 인형들이 사는 집 안은 소파, 찻잔, 음료수병, 비스킷, 벽시계, 서재, 스탠드 등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사실감을 살렸다. 이야기에 맞는 장면을 연출한 후, 사진을 찍어 페이지를 완성하는 방식이다. 이야기 글에 맞는 그림을 넣는 방식이 아니라, 그림 자체에 숨어 있는 이야기가 많아 그림이 이야기를 보완해준다. 그는 국내에서 주류로 통하던 서정적 동화를 판타지, 몽환적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입체 방식으로 애니메이션의 느낌을 살려 “그림책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서울 동빙고동에 있는 백희나 작가의 작업실은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을 방불케 했다. 《달 샤베트》의 배경이 된 6층짜리 종이 아파트는 실제 아파트 내부를 축소한 듯 디테일했다. 거실에는 손가락만 한 선풍기며 오디오, TV가, 침실에는 새끼손가락만 한 베개와 손바닥만 한 침구세트가 적당히 흐트러져 있다.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다리를 뒤로 꼬고 숙제하는 꼬마 홍비의 포즈에 피식 웃음이 난다. 비 오는 날 독특한 실내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는 LED 조명에 트레팔지를 씌웠다.

“비가 올 때는 낮에도 실내에 불을 켜잖아요. 불을 켰을 때의 실내와 실외의 미묘한 차이를 살리고 싶었어요. 부엌문 그림자 같은 걸 표현하기 위해 택한 방식이죠.”

인형처럼 오목조목한 외모를 가진 백희나 작가. 해맑은 표정으로 작업실 캐릭터들을 설명하는 그는 나이를 잊은 소녀 같다. 바비인형을 좋아해 80여 개가 넘는 바비인형을 가지고 있는데, 힘들거나 우울할 때 바비인형을 쓰다듬으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위로가 된다고 한다. “다 큰 어른이 인형 좋아한다고 주위에서 은근히 눈치를 줬는데, 인형으로 작업하는 작가가 되고 나서는 떳떳하게 인형을 가지고 논다”며 웃는다. 작가는 자신을 닮은 분신을 그린다. 장난기 많은 홍비의 눈빛과 눈이 커서 겁이 많아 보이는 백 작가의 표정이 자연스레 겹친다. 홍비는 백 작가의 초등학생 딸아이 이름이다. 홍비와 범준이 남매는 엄마 책의 첫 번째 독자다. 범준이는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신기하게도 엄마 그림책만은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고 본다고 한다.


백희나 작가는 어려서 정적인 아이였다. 그의 어머니가 달력 한 장을 북 뜯어주면 하루 종일 달력에 빽빽이 그림을 그려 넣으면서 놀았다. 아주 어렸을 땐 화가가 되고 싶었고, 중학교 때부터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었던 그는 이화여대 교육공학과를 나왔다. 시청각 교육 등 매체에 대한 폭넓은 공부를 하고 싶어서였다. 아이와 인형을 좋아했던 그는 아동용 시청각 교육 분야로 관심이 쏠렸고, 졸업 후 유아용 멀티미디어를 만드는 소프트웨어 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그는 조직생활에 맞지 않았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하고 직장을 그만뒀죠. 그때 제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봤어요. 융통성없고 예민하고, 대인관계에 약한 건 단점이지만, 끈기를 가지고 하나에 집중해서 매달리는 작업에 강하다는 걸 알았죠.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뭘까? 애니메이션이라는 답을 내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1997년 백 작가는 미국 칼아츠대학에서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 이곳에서 어린이들에게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는 방법과 페이지마다 완결성이 살아 있는 장면을 구현하는 법을 배웠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그의 재능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만화가를 꿈꾸었으나 은행장이었던 할아버지의 만류로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는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그에게는 언니가 둘 있는데, 큰언니는 이대 영문과를 졸업한 멋쟁이 엄마의 감각을 물려받아 의상디자이너를 거쳐 태국에서 무역업을 하고 있고, 둘째 언니는 클래식 기타 연주와 요리가 수준급이라고 한다. 《어제저녁》에 등장하는 초콜릿 3단 머드케이크는 그의 작은언니 솜씨다. 모형으로 하려 했으나 실감이 나지 않아 실제로 만들었다.

백 작가는 《구름빵》과 《달 샤베트》로 스타작가가 됐지만, 이 책들 때문에 속앓이가 많았다. 두 권 모두 저작권과 관련됐다. 《구름빵》의 경우 출판사와 인세 계약을 하지 않고 원고료 계약을 했기 때문에 책이 아무리 많이 팔려도, 해외로 수출돼도 추가 인세수입이 없고, 애니메이션이나 뮤지컬 등 2차 콘텐츠에 대한 아무런 권리가 없다. 《달 샤베트》는 신인 걸 그룹 ‘달샤벳’ 이름으로 도용됐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 만든 작품이 걸 그룹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보면서 분통이 터졌고, 법적 대응도 시도했다. 하지만 상표등록이 돼 있지 않아 해당 기획사에 사용을 중지하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현재 백 작가는 ‘달 샤베트’와 ‘어제저녁’을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하고, 작품에 나오는 11가지 인형에 대해서도 디자인 출원신청을 마친 상태다. 1인 출판사를 차린 것은 저작권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구름빵》을 출간하고 성장통을 심하게 앓았어요. ‘《구름빵》 이후 제대로 된 창작책이 뭐가 있습니까’라는 비난을 수없이 들었고, 슬럼프가 심했죠.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선정되어 볼로냐에 다녀온 후 더 혼란스러웠어요. 좋은 작품, 훌륭한 작품에 대한 기준을 모르겠더라고요.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했어요. 누군가 한마디만 더하면 와르르 무너져내릴 것 같았어요. 자신감을 극복하기 위해 혼자 일어서야 했어요.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제 의지대로 작업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1인 출판사를 차렸죠.”

작가의 꿈은 소박하다. 누군가에게 위로와 치유가 되는 창작 그림책을 그리면서 착한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 그에게 창작 그림책은 타인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이자 그 스스로 삶의 의미다. 예민하고 자신감 없던 그에게 새로운 생의 의미를 불어넣어 준 분야이자, 그림책 작업을 하는 매순간 충만한 행복감을 안겨주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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