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경주 양동마을

550년 전 시간 속으로…

세상 변하는 속도가 무섭다. 문명의 이기의 발달 속도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다. 따라 잡자니 고단하고 물러나 있자니 뒤처지는 느낌이다. 내면에서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들린다면, 잠시 쉬어 가자는 메시지가 느껴진다면, 경주 양동마을로 떠나보자. 550년 전 마을 형태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고, 그 옛날부터 줄곧 사람이 살고 있는 이 마을은 전통 민속마을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됐다. 양동마을의 꼬불거리는 흙길을 밟으며, 550년 전 이 마을에 살았던 선인들의 느릿한 삶의 속도를 상상해보며 잠시 쉬어보면 어떨까.
경주 시내에서 동북 방향으로 약 20km, 포항과 안강의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1km 들어가면 양동마을이 한눈에 펼쳐진다. 설창산에 아늑하게 둘러싸인 양동마을을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듯, 시간이 정지된 듯한 착각이 든다. 기와집과 초가집만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이집 저집 아궁이에서 뿌연 연기와 함께 매캐한 장작 타는 냄새가 마을 전체로 퍼져나간다.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리고, 가까이에서는 초겨울 바람을 맞은 대숲 이파리들이 바스락거린다. 눈을 껌벅거리며 마당을 지키는 삽살개와 겨울 맞은 앙상한 감나무 가지에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 열매 몇 개가 한 폭의 수묵 담채화 같다.

경주 양동마을은 2010년 8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유명세를 타면서 전국 각지에서, 외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마을에는 주민보다 관광객이 많았다. 평일 오후인데도 1000명 이상이 다녀갔다 한다. 갑작스레 바글거리는 마을 구경꾼들을 맞은 주민들은 기대와 고단함이 섞인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문을 꼭꼭 닫아걸고 “주거공간이니 출입을 삼가주십시오”라는 문구를 대문에 떡하니 붙여놓은 주민이 있는가 하면, 마을 자랑에 열을 올리며 관광객과 한판 수다를 벌이는 주민도 있다.

1 영화 <내 마음의 풍금> 촬영지.
2 마을 곳곳에서는 뿌연 연기가 피어오른다.
3 양동마을에는 초가집이 70여 채 있다.
양동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 종가가 550년 동안 전통을 이어온 유서 깊은 반촌마을이다. 영남 성리학계의 대부 우재 손중동 선생과 동방의 다섯 현자에 꼽히는 회재 이언적 선생이 양 가문의 기둥이다. 이 마을에는 500년 넘은 건물이 네 채 있다. 손중동 선생이 살던 ‘관가정’, 중종이 이언적에게 하사한 마을에서 가장 화려한 기와집으로 이언적이 병환 중인 모친을 돌보던 ‘향단’, 경주 손씨 종택 ‘서백당’, 여강 이씨 종택 ‘무첨당’. 500여 년 시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목조 건물들은 위풍당당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손길로 반들반들해진 건물들은 누대에 걸쳐 살다 간 사람들의 스토리를 묵묵히 안고 있었다.

1 여강 이씨 종택 ‘무첨당’.
2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기 전 무첨당에 와서 남긴 친필 ‘左海琴書(좌해금서)’. ‘영남의 풍류와 학문’이라는 의미로, ‘무릇 선비란 풍류를 알고 글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3 흙길과 돌담길.
양동마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배산임수의 명당이라는 것이다. 앞쪽으로는 형산강이 들판을 휘돌아 빠져나가고, 뒤로는 설창산의 문장봉에서 뻗어나온 산등성이가 네 갈래로 갈라지면서 ‘물(勿)’자 형태를 띤다. 예부터 이 혈맥을 띤 지형에서는 훌륭하고 귀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는 상서로운 땅이라고 믿었다. 특히 ‘서백당에서는 세 명의 현인이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는데, 우재 손중동 선생과 회재 이언적 선생이 여기서 태어났다. 마지막 한 명의 현인을 기다리는 손씨 종가에서는 며느리들로 하여금 필히 이곳에서 출산하도록 하고 있다 한다. 서백당 마당에는 500년 넘은 아름드리 향나무가 서 있다. 해설사는 “예전에는 뒷마당까지 개방했는데, 관광객들이 큰 소리로 떠들면서 장독대 뚜껑을 열어보고, 손가락으로 장을 찍어 맛도 보는 등 몰지각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어 뒷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막았다”며 “마을 분들의 사생활을 존중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재가 많이 배출된 마을이라는 문화재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찰나, 김장 준비를 하는 권소주 할머니를 만났다. 마당 빨랫줄에는 하버드대와 예일대의 삼각 깃발이 걸려 있었다.

“큰손자는 예일대에 다니고, 작은손자는 하버드에 다녀. 우리 아들도 서울대학 나왔지. 며느리도 똑똑하고 착해. 6년 전에는 뉴욕이랑 워싱턴에도 다녀왔어. 백악관 있지? 테레비에서 본 거랑 똑같아. 나? 이씨한테 시집와서 여태 여기서 살고 있는데, 일가가 많아서 좋아.”

1 솥에서 갓 찐 고구마를 꺼내는 권소주 할머니.
2 이언적의 17대 종손 이지락 씨.
15분 동안 쉬지 않고 자식 자랑, 손자 자랑을 늘어놓던 권 할머니는 “잠깐 기다려봐” 하더니 솥을 열고 갓 찐 고구마를 건네줬다. 따끈한 고구마는 속이 노랗고 수분이 많으면서 당도가 높았다. 양동마을에서는 전통 한과・약과・쌀엿 등 특산물을 맛볼 수 있다. 때마침 ‘양동전통민속한과’에서는 한과 만들기 체험이 한창이었다. 전화예약을 하면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한과와 쌀엿, 약과를 만드는 손보경 할머니를 만났다. 지름 1m가 넘는 무쇠솥에 장작불을 때서 엿을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열 시간 끓여야 엿이 돼요. 이건 정말 좋은 음식이에요. 요즘엔 돈에 급급하다보니 이런 걸 만들 때 첨가물도 넣고 방부제도 넣지만, 우리는 그런 거 안 넣고 자연식 그대로 만들어요. 설탕도 전혀 넣지 않아요. 태어나면서부터 양동마을에서 살았어요. 나는 손가(哥)고, 시댁은 이가(哥)예요.”

1 쌀엿을 만드는 손보경 할머니.
2 양동전통한과·약과·쌀엿.
생강 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약과는 달지 않고 깔끔했다. 느끼하지 않아 자꾸 손이 갔다. 쌀엿은 담백하면서도 끈적이지 않았고, 달큼한 조청 향이 기분 좋게 풍기는 한과는 최고급 백화점에서 파는 유명 브랜드 한과에 뒤지지 않았다. 모양은 투박했지만 깊은 맛이 살아 있었다. 들판 너머 형산강이 바라보이는 벤치에 앉아 이 마을 부녀회에서 만든 수정과와 곁들여 먹으니 시간이 더디 흐르는 듯하다. 해질 녘 고즈넉한 마을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동양화였다.

엿기름을 체에 내리는 손가(哥) 할머니들.
무첨당에 사는 이지락 씨를 만났다. 이지락 씨는 이언적의 17대 종손으로, 대학 4년을 제외하고는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 경북대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대학에 출강해 한문학을 가르치면서 한국국학진흥원 객원연구원으로 있다. 문중 어른을 모시는 일을 하면서 국내외 학자 및 관광객에게 마을 내력을 알리기도 한다. 그는 양동마을의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양동마을의 문화는 고급 문화입니다. 고급 문화는 일단 높은 도덕성을 전제로 합니다. 또한 자기 이해와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진정한 행복을 찾는 개인이 많은 문화입니다. 이때의 행복은 이기적인 행복이 아니라 타인을 배려한 행복이고, 사회에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행복입니다. 우리 사회가 국격과 품격을 갖추려면 전통과 역사가 중요합니다. 양동마을이 그 매개체가 되는 공간 중 하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도시의 콘크리트 건물보다 이 마을에서 고급 문화를 이야기하는 게 진정성이나 신뢰성이 더 높겠죠. 양동마을이 이 사회의 고급 문화를 전파하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에 있습니다.”

양동마을에서 돌아오는 길, 현실에는 없는 마을에 다녀온 듯 꿈결처럼 아득하다. 그곳에는 마음자락 넓고 반듯한 사람들이 분명한 자기 기준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소란스런 도시의 소음 속, 양동마을을 떠올리면 적요 속으로 빠져든다.

사진 : 김선아

마을 곳곳에는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유교문화교실, 전통 엿 만들기, 떡메치기, 승마체험, 한지공예체험, 미꾸라지 잡기, 연꽃차 시음 등. 마을 입구에 ‘해설사의 집’이 있어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마을 순례를 할 수도 있다. 체험 프로그램은 예약제로 운영되며, 문화유산 해설은 별도의 예약이 필요 없으나 간혹 대기 중인 해설사가 모두 출타 중인 경우가 있으므로 전화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마을 안내 : 010-3212-8360 / 체험 안내 : 054-762-2633
  • 2011년 01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