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콘서트 시작한 지 9년, 작곡가·피아니스트 박창수 씨

연주자를 가까이에서 만나는 작은 음악회

지난 9년간 자신의 살림집과 여러 작은 공연장에서 ‘하우스 콘서트’를 열어온 작곡가·피아니스트 박창수(47) 씨. 서울대 음대에 수석 입학해 ‘천재’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던 그가 지금까지 몰두해온 음악은 바로 ‘하우스 콘서트’라는 커다란 작품이다. 탄탄한 연주진의 밀도 있는 공연과 마룻바닥에 앉아 감상하는 재미가 더해져 이 연주회는 오래 전부터 두터운 마니아층이 형성된 상태. 자연스레 연주자들도 한 번쯤 꼭 서보고 싶은 무대로 꼽는다. 그 주인공인 박창수 씨를 만나러 서울 도곡동의 율하우스를 찾았다. 그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힘닿는 데까지는 ‘하우스 콘서트’를 이끌고 싶다 한다.
오후 8시, 하우스 콘서트의 263번째 음악회는 박창수 씨의 등장으로 시작됐다. 마이크를 든 그가 조심스레 무대 앞쪽으로 나와 무릎을 꿇어앉는다. 그는 조용하고 느릿한 말투로 관객에게 인사를 건네더니, 곧 무대에 등장할 연주자를 소개한다.

“공연장에 왔는데 의자가 없어서 당황하셨나요? 일부러 바닥에 앉으시라고 방석을 준비해두었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방석을 옆으로 밀어두시기 바랍니다. 그 이유는 연주가 시작되면 마룻바닥의 울림이 그대로 온몸에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경험이 되실 겁니다. 겉보기에 허름한 음식점일지라도 맛으로 소문난 곳이 많습니다. 저희 하우스 콘서트도 그런 모습으로 보이길 기대합니다.”

그의 인사말이 끝나자 공연장의 유일한 문으로 피아니스트 리사 시미노바, 바이올리니스트 안나 카딘스카야, 첼리스트 로버트 최가 입장했다. 그들은 마룻바닥에 앉아 있는 관객의 틈을 비집고 무대로 향했다. 이들은 독일과 호주,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활동 중인 전문 연주자들로, 내한 공연차 서울에 왔다가 하우스 콘서트의 무대에 섰다. 현악기의 조율이 끝나자 슈만의 〈피아노 삼중주 1번〉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박창수 씨와 스태프가 석 달 동안 만들었다는 공연장 내부의 울림은 상당히 좋았다. 그의 말처럼 연주자의 호흡과 악기의 진동이 마룻바닥에 그대로 전해졌다.

박창수 씨는 지난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 연희동에 있는 자신의 살림집에서 무려 200회의 하우스 콘서트를 열었다. 그의 집은 2층짜리 주택으로, 관객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 연주회를 감상했다. 연주회가 열리던 2층 거실은 무대랄 것도 없이 스타인웨이 사의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연주회가 열리는 날이면 그의 2층 거실은 앉을 자리가 없이 꽉 차곤 했다.

“예고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집에서 연습하던 날이 꽤 있었습니다. 저는 유난히 집에서 연주하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그러다가 대학에서 서양의 귀족들이 자신들의 성에서 음악회를 자주 열었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때부터 언젠가 저도 집에서 음악회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우스 콘서트는 말 그대로 집에서 열리는 음악회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역사상 가장 자주 열리던 형식의 음악회로, 연주자와 관객의 거리가 공연장처럼 멀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가까이에서 연주자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 처음 하우스 콘서트를 기획할 당시 선뜻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연주자가 드물었던 까닭도 여기서 비롯된다. 박창수 씨는 “연주자들이 관객과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 연주해야 한다는 것에 부담감이 컸고, 낯선 종류의 음악회를 기피하는 경향도 많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때문에 첫 번째 하우스 콘서트는 즉흥 연주자인 일본인 치노 슈이치 씨와 그의 연주로 막을 올렸다.


김선욱 씨도 스타가 되기 전부터 하우스 콘서트에서 연주했죠

“다행히 그 이후 뜻이 맞는 연주자들이 하우스 콘서트를 찾아주었습니다. 가장 많이 출연한 연주자는 피아니스트 김선욱 씨로, 콩쿠르 스타가 되기 전부터 하우스 콘서트에서 연주했죠. 클래식 음악가뿐만 아니라 이병우, 이자람, 강산에 씨 등도 하우스 콘서트의 좋은 연주자들입니다.”

그와 인터뷰하는 동안 하우스 콘서트의 여러 스태프는 리허설 준비로 분주했다.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연주자가 원하는 조건에 맞게 악기 배치와 조명, 음향 등을 확인하고 있었다. 박창수 씨는 “스태프가 없는 하우스 콘서트는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대부분 음악계에 종사하는데, 전원이 보수를 받지 않고 일한다고 했다. 한 달에 2~3회 열리는 음악회 날이면, 오후 3~4시에 공연장에 모여 그날 공연을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1급 재료로 요리한다고 좋은 음식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맛을 결정하는 것은 요리사의 실력입니다. 하우스 콘서트는 요리사의 입장에서 좋은 연주와 관객을 연결하고자 합니다.”

연주회가 끝나면 와인 파티가 이어진다. 그날의 연주자와 관객이 와인잔을 사이에 두고 가볍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 하우스 콘서트에서 가장 재미있는 순서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박창수 씨에게 연주를 희망하는 음악가들의 요청이 쇄도한다고 한다. 화려한 학력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는 “바보 같은 짓 입니다. 경력으로 그 사람의 실력을 판단하는 일은…”이라며 아쉬워한다. 그는 현재 서울예고에 재학 중인 피아니스트 조성진 군을 언급했다.

“언젠가 음악계 지인에게서 조성진이라는 학생이 굉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는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전이었는데, 한마디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죠. 하지만 저는 조성진 군을 하우스 콘서트에 초대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관객이 찾아주셨죠. 제가 자부하는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제가 어떠한 연주자를 내세우든 관객은 믿고 와주신다는 것입니다.”

263회 하우스 콘서트의 공연 모습. 관객은 마룻바닥에 앉아 연주를 감상해야 한다.
그에게 하우스 콘서트를 이끄는 원칙을 물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든, 집을 짓든 구조가 가장 중요하다며 대답을 이어갔다.

“작곡도 마찬가지로 구조가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날은 강렬한 연주자를 세우고, 어떤 날은 생기있는 음악을 들려드리죠. 결국 하우스 콘서트라는 커다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니까요.”

박창수 씨는 “연주자는 소리라는 공통점을 가진 사람이다. 어떤 연주자의 무대를 언제 배치할 것인지는 매번 음악회의 음색과 분위기를 다듬는 과정이다”라고 강조한다. 그가 하우스 콘서트를 연 이후 가장 많이 받은 오해는 그가 ‘부자’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하지만 매회 적자를 피할 수 없어 연주자들의 개런티도 넉넉히 챙겨주지 못할 때가 많단다. 그럼에도 그의 무대에는 쟁쟁한 연주자들이 참 많이 찾아온다. 그의 사교성이나 인간관계 덕분인지 궁금했다.

피아니스트 리사 시미노바, 바이올리니스트 안나 카딘스카야, 첼리스트 로버트 최가 하우스 콘서트에서 슈만의 작품을 연주하고 있다.
“저는 사교성이나 사회성이라고는 없는 사람입니다. 성격도 엄청 못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섭외를 위해 연주자와 개인적으로 만나 식사한 적이 딱 한 번밖에 없어요. 연주자들이 우리 하우스 콘서트를 찾는 것은 그동안 쌓아올린 좋은 이미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뿌듯합니다.”

그의 일상은 단조롭다. 무용가인 아내 김영희 씨와 서로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러한 대화가 때때로 결정적인 도움이 된단다. 그는 1년에 두어 차례 즉흥 연주자로 직접 무대에 서기도 한다. 살림집에 관객을 초대하는 게 한계가 있어 장소를 옮긴 하우스 콘서트는 당분간 율하우스에서 계속된다.

“공연장이라고 하기에는 협소한 공간이지요. 하지만 그 어느 훌륭한 공연장 연주보다 진한 여운을 드릴 수 있다는 믿음은 확고합니다. 앞으로 더 친밀한 음악의 나눔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사진 : 김선아
사진제공 : 하우스 콘서트
  • 201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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