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동 ‘오래된 집’에서 작품활동한 미술가 문영미, 변시재 씨

여성작가 2人이 머물면서 작업한 서울의 ‘오래된 집’

서울 성북동은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압축하고 있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서울 도성의 동북쪽에 자리해 성의 북쪽이란 뜻에서 이름 붙여진 성북동(城北洞). 꼬불꼬불 가파르게 난 골목길을 올라가면 만해 한용운이 살았던 고택 심우장,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의 옛집, 소설가 상허 이태준이 살았던 고택을 찻집으로 개조한 수연산방 등 고풍스러운 집들이 나타난다. 모두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지어진 근대도시형 한옥이다. 최순우 옛집은 주택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던 것을 시민성금으로 사들여 보존하고 있다. 그 외에도 길상사, 간송미술관 등 유서 깊은 문화공간과 으리으리한 호화 주택들, 외국 대사관과 대사관저들이 들어서 있는 곳. 그런데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서민형 주택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재건축이 거듭되면서 집의 형태도, 골목의 형태와 거리 분위기도 바뀌어가는 곳.


그곳에 썰물이 지나간 후에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조개들처럼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오래된 집들이 있다. 작은 창문들이 뚫린 시멘트 벽에 기와를 얹고 있는 집 두 채. 첫눈에도 요즘에는 보기 어려운 ‘오래된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보존가치가 있는 잘 지어진 한옥도 아니다. 1960~70년대 서민 주택으로 지어졌음직한 이 집들은 사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조금씩 확장되기도 하고, 변형되기도 하면서 생명을 이어오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이 된 처지다. 서울 성북동 62-10번지와 62-11번지, 나란히 붙어 있는 이 집들에 지난해 9월 젊은 여성작가 두 명이 들어갔다. 국제시각예술교류협회가 주최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인 ‘오래된 집 재생 프로젝트’. 이제는 비어서 폐가처럼 되어가는 그곳에서, 그 공간과 연관된 작업을 하려는 작가를 공모했다. 최종 선발된 작가는 문영미, 변시재 씨였다. 문영미 씨는 이 집에 들어오기 전부터 ‘오래된 집’을 그려온 작가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주문진·동해·속초·강릉·포항 등 동해 바닷가 도시를 옮겨 다니며 살았어요. 그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오래된 풍경’에 이끌려요. 그것들이 자아내는 정취 때문이지요. 오래된 사람의 흔적같은 거요. 그래서 재개발과 도시화에 밀려 사라져가는 낡고 오래된 집들을 정면 초상처럼 그렸습니다. 이번 레지던스 공모를 보고 제 작업과 너무 잘 맞는다는 생각에 지원했습니다. 제가 그리던 대상 속으로 들어가서 작업하는 것이니까요.”

문영미 씨가 작품활동을 한 ‘오래된 집’과 그 집을 그린 작품.
그는 새로운 입주민처럼 열 겹씩 덧발라놓은 벽지를 벗겨내고, 오래된 먼지도 털어냈다. 바닥의 깨진 시멘트도 다시 바르고, 뻐걱거리는 미닫이문도 손봤다. 지붕위에 박도 길렀다. 그러나 그 집은 겨울이면 하루에 몇시간도 있기 힘들 정도로 뼛속까지 추웠고, 장마철엔 습도 때문에 곰팡이가 슬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했다. 그는 이 집이 하얗게 눈을 뒤집어쓰고, 지붕 처마 밑에 고드름을 달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그와 오래된 집의 만남은 무엇을 남겼을까.

“벽지를 다 떼어내고 보니 회벽에 곰팡이로 인한 작은 얼룩이 많았는데, 그게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삶의 흔적처럼 느껴져 정다웠습니다. 제가 다루는 작품 소재를 더 깊이 이해하고 가까워졌다고 할까요? 작가로서 나가야 할 방향이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변시재 씨는 작업실로 쓰기 위해 집을 손보다 몇 겹의 벽지안에 붙어 있는 오래된 시간표를 발견했다. ‘1학년 3반 시간표’. 그것은 그를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했다.

“저는 어릴 적 서울의 아파트에서 자랐는데, 이사갈 때마다 저희 집 주변은 공사판이었어요. 강남·분당 등 서울이 팽창하면서 개발되던 지역에 일찍 들어가 빈터에 건물이 지어 올라가는 광경을 지켜봤지요.”

그에게는 새로운 건물에 앞서 공사장 펜스 천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에게 집은 견고한 형태이기보다 언제든 허물어지고 다시 지어질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제까지 그의 작품에서 삶의 터전은 공사장의 천막에 가려진 채 수수께끼처럼 등장하고, 이동 가능한 손잡이가 달려 있곤 했다. 변시재 씨는 작지만 마당이 있고 자연의 햇빛이 내리비치는 집, 사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오래된 집에서 친근감과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벽지 위에 다시 벽지를 바르고 살던 사람들. 그는 벽지의 문양을 되살려 오래된 집의 벽을 다시 포장하고, 여러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 집에 자신의 어린 시절 집에 대한 추억을 덧입히는 작업을 했다.

변시재 씨가 레지던스로 창작활동을 하고 전시장으로 쓰고 있는 성북동 집과 집을 주제로 한 작품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혼자 텅 빈 집을 지킬 때가 많았어요. 너무 조용한 게 싫어 구연동화 테이프를 틀어놓고 듣곤 했지요. 벽지 속에 있던 아이의 학교 시간표를 보니 저랑 비슷한 세대인 것 같아요. ‘그 아이는 이 집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상상하면서 작업을 했습니다.”

서울 성북동 오래된 집에 살았던 어린아이와 강남의 재개발 지역을 옮겨 다니며 살았던 어린아이는 오랜 시간 후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두 작가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끝내며 여는 전시는 성북동 62-10번지, 62-11번지 ‘오래된 집’에서 9월 1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

사진 : 조성준
  • 201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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