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 화가 최영걸

동양 ‘산수화’와 서양 ‘풍경화’의 만남

최영걸
1968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졸업 후 14년간 계원예고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2003년 첫 개인전을 계기로 화가로 데뷔하였다. 지금까지 이화익갤러리 등에서 5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2005년 크리스티 홍콩 아시아 현대미술경매, 아트 두바이, 뉴욕 코리안 아트 쇼 등에 참여하였다. 서울 백병원, 국립현대미술관 아트뱅크,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해태크라운제과, 한국민속촌 박물관, 하나은행,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있다.
5년째 ‘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의 미술가’를 쓰고 있지만, 이렇게 안타까운 적은 없다. 작은 지면에 작은 인쇄물로는 독자에게 최영걸의 진가를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은 독자는 기회가 닿으면 반드시 전시장에 가서 그의 그림을 보아야 한다. 전체 조망을 위해서 멀리서 한 번, 그리고 세부를 즐기기 위해서 작품에 코를 박고 여러 번 보기 바란다. 그의 작품은 작은 인쇄물 상태에서는 평범한 풍경 사진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유화도 아니요, 그 흔한 사진은 더더욱 아니며 화선지에 수묵담채라는 전통적인 동양회화 재료로 그려진 것을 알고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사물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점에서는 사진을 따를 장르는 없다. 또 유화는 재료의 특성상 사물의 질감 표현에 있어서 종이와 먹을 기본으로 하는 동양화보다 장점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나무의 껍질, 사람의 피부, 동물의 털, 번쩍이는 금속성 물건, 투명한 유리잔 같은 것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훨씬 우월하다. 그러나 최영걸의 작품은 동양화의 재료적 제한에도 불구하고 거의 사진에 가까울 정도로 사물을 재현하고 있다. 섬세하고 정밀한 묘사뿐 아니라 바위의 표면, 얼음, 물 등 기존의 동양화에서 잘 표현되지 않던 사물의 질감 표현에서는 감탄이 절로 난다. 물론 재료의 한계로, 물의 표면장력이 가지는 응축력과 밀도 높은 깊은 물은 그의 그림에 없다. 계곡의 투명하고 얕은 물, 파도치는 바다의 거친 표면이 주를 이루지만, 이것만으로도 옛날식 표현으로 ‘신묘한 재주’라고 극찬받을 만하다.

자연을 그린 그림을 동양에서는 ‘산수화’라 하고 서양에서는 ‘풍경화’라 한다. 최영걸의 작품은 동양 ‘산수화’와 서양 ‘풍경화’의 장점을 취해서 독특한 현대적인 ‘산수화’를 그려낸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을 ‘낙원’ ‘이상향’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것은 동서양의 공간을 가로지르는 산수화와 풍경화의 공통점이며, 또 과거나 현대에도 공통된 특징이다. 그러나 현대인에게는 새로운 산수화가 필요하다고 최영걸은 말한다.

친구, 162x125cm, 화선지에 수묵담채, 2008.
“옛 동양화에서 말하는 ‘와유(臥遊)’라는 것은 현재도 유효하다. 현대인도 그림 속 자연으로 돌아가 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옛 방식으로 그리는 것에 현대인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옛 그림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자연관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현대인은 그들과는 다른 자연관을 가지고 있다. 현대의 우리는 서양식으로 자연을 본다. 서양식 재현이나 파노라마적 전개를 받아들이고, 동양의 다시점으로 서양의 고정 시점을 보완했다.”

최영걸의 말대로 카메라의 정밀한 묘사에 익숙한 현대인이 자연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고밀도의 자연 묘사가 필수적이게 되었다. 서울대 동양화과 재학 시절 최영걸은 이단아였다. 인물을 그리면 손톱·눈썹까지 모두 그리는 그의 화법은 사물의 묘사보다는 관념을 중시하는 문인화 전통이 지배적이던 당시 서울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그는 14년간 예고에서 교사로 일했다. 교직이 잘 맞았지만, 예고의 입시 위주 교육은 그를 소진시켰다. 2000년, 한 집안의 가장인 그는 안정적인 교직을 버리고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

“2년간 선배 작업실에 빌붙어 연습만 했다.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먹으로 이미지를 꺼내는 일이었다. 얼마 뒤 뭐든지 연습하면 다 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관수도(觀水圖), 122x262cm, 화선지에 수묵담채, 2008.

쉽게 뜨기보다 ‘오래가는 그림’ 남기고 싶어

그의 진득하고 싫증을 덜 내는 성격도 큰 몫을 했다. 마음이 급해서는 절대로 그릴 수 없는 게 그의 그림이다. 계보를 따지자면 그의 그림은 사실적인 묘사를 중시하는 북종화 계열이다. 단연 북송시대의 장저돤(張擇端)과 청대의 랑스닝(郎世寧)의 영향을 꼽는다. 그는 “내 그림이 섬세하다고는 하지만 이 작가들의 그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대만에 출장을 다녀오신 아버지가 선물한 랑스닝의 ‘백준도(百駿圖)’ 포스터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00마리 말이 목욕하는 이 그림은 중국에서 활동한 이탈리아인 랑스닝이 동양의 재료와 서양화의 정밀한 묘사를 결합시킨 출중한 작품이다.

비상(飛上), 117X196cm, 한지에 수묵담채, 2010.

얼마 전 그는 대만미술관에서 7m가 넘는 이 그림만 한 시간을 보았다. 화가이기 이전에 최영걸 자신이 자연의 찬미자이고 섬세한 관찰자다. 그는 몸소 여행을 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우선 카메라에 담아낸다.

“설악산을 가장 좋아한다. 맑은 날의 천불동 계곡은 가슴이 터질 듯이 아름답다. 세계 최고다. 알려진 등산로로 가지 않고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다른 비경을 볼 수 있다.”

수해로 떠내려가 이제는 그림 ‘청명’에만 남아 있는 오색약수 부근의 주전골도 그가 사랑하는 장소다. 그의 한국 자연 예찬은 끝이 없다.

“바위와 계곡이 함께 있는 아기자기한 한국의 자연은 광활한 중국의 자연보다 더 산수화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제공한다.”

설악청명(雪岳淸明), 100X65cm, 화선지에 수묵담채, 2010.
그는 아름다운 자연을 완상하기 위해서 극적인 부감법이나 인간의 신체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뷰포인트를 설정하지 않는다. 즉 먼 산과 가까운 산을 한꺼번에 그린 전통적인 산수화의 넓은 시야가 그의 그림에는 없으며, 대신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의 구도를 잡아낸다. 이는 최영걸 자신이 자연 속에 들어가서 남들이 다니지 않는 위치, 자연의 풍광이 가장 잘 조망되는 곳에서 자연을 바라보고 느낀 바를 구체적으로 전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내외 두루 그의 작품을 아끼는 사람이 많지만 작품의 진가를 먼저 알아준 것은 해외였다. ‘20세기 중국미술’과 ‘아시아 컨템퍼러리’세일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어 실력을 인정받은 홍콩 크리스티 수석부사장 에릭 창은 최영걸의 작품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2005년 11월에 홍콩 크리스티에 첫 출품했으며 지금까지 국내 출품 작가 중에서 가장 많은 출품 수와 높은 낙찰률을 기록한다. 화려한 기록보다는 꾸준한 인정이 그를 돋보이게 해준다. 2008년 가을 몰아닥친 금융위기 때 다른 작가들의 낙찰률이 40% 이하로 곤두박질칠 때도 최영걸의 작품은 늘 추정가 이상으로 안정적으로 낙찰되었다. 시장에서 그의 작품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늘어나지만 그는 느리고 더딘 작업 스타일을 고수한다. 시장의 반응이 좋다고 대충 하는 법이 없다.

“그림을 그릴수록 그려야 할 세부들이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그는 말한다. 용인 수지의 주택가 상가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티끌 하나 없이 청결하다. 작업 과정의 분주함보다는 집중과 정갈한 정신의 통일이 느껴진다. 창은 검은색 필름으로 코팅하여 시간을 밀봉하였다.

“빛이 들어와 시간을 느끼면, 저녁이 되면 그만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청폭도(聽瀑圖), 124X160cm, 화선지에 수묵담채, 2009.
최영걸의 일일 평균 작업시간은 10시간이 넘는다.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이다. 인터뷰를 위해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는 노란 산수유 꽃이 잔뜩 핀 구례의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흑백으로 그려진 밑그림에 한참 노란 산수유 꽃을 피워가는 과정이었다. 하나하나 점을 찍듯이 섬세하게 그린 밑그림은 화가의 노고와 수고로움이 그대로 담겨 있다. 120호(195 x 130cm) 크기의 작품을 그리는 데 기초 작업만 한 달이 걸린다. 동양화는 원래 수정이 불가능한 작업이라서 10년째 그림을 그리지만 ‘그림을 망칠까 봐 늘 조마조마하다.’ 이렇게 그리니 아무리 열심히 해도 1년에 20여 점이 나오지 않아 그의 그림은 아주 어렵게 만날 수 있다.

“나는 거꾸로 간다. 그것이 나의 천성이다. 시장의 요구는 많지만, 그 요구에 따라가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뜨는 것보다 최영걸의 그림은 오래가는구나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오래 그린 그림은 오래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사진 : 김선아
  • 2010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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