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발레콩쿠르에서 특별상 수상한 유니버설발레단 드미 솔리스트 한서혜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하는 발레를 하고 싶어요

세계 발레 콩쿠르에 한국인이 연이어 수상하면서 한국 발레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서혜는 최근 미국 국제발레콩쿠르 여자 시니어 부문에서 로버트 제프리 특별상을 수상한 발레리나. 현재 유니버설발레단의 드미 솔리스트(준 솔리스트)로 활동 중인 그는 해보고 싶은 것이 아주 많은 발레리나다. 출연하고 싶은 작품도 많고, 장차 발레의 대중화에 크게 공헌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스물 한 살, 그에게 발레는 행복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전 클래식 튜트보다 로맨틱 튜트가 더 잘 어울려요!”

유니버설발레단의 3번 스튜디오에서 만난 발레리나 한서혜(21)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로맨틱 튜트와 엉덩이를 간신히 덮는 클래식 튜트를 양손에 든 채 기자에게 인터뷰 촬영 콘셉트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예쁜 무대의상을 입는 것도 좋지만, 평소의 연습복을 입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라며 짙은 푸른빛이 도는 연습복을 보여준다. 또 “인상이 강해 화장도 진하게 하지 않았다”며 깔깔 웃고는 “인터뷰는 바닥에 앉아서 하면 어떨까요?”라더니 연습실 바닥에 철퍼덕 앉았다. 이어 두 팔을 공중으로 뻗어 스트레칭을 하더니, “상장, 상장 가져왔지요”라며 빨간 끈으로 둘둘 묶은 종이 뭉치를 건넨다. 귀한 상장인데 액자에 넣어 잘 보관하지 그랬냐고 했더니, “상장은 이렇게 둘둘 말아두어야 더 폼이 난다”고 한다. 그의 기다란 손가락이 리본 매듭을 풀자 지난 6월 미국 국제발레콩쿠르에서 받은 상장이 펼쳐졌다.

“여러 달 함께 콩쿠르를 준비했던 발레리노가 개인사정으로 참가를 포기했어요. 미국으로 떠나기 2주 전의 일이었죠. 저는 졸지에 파트너를 잃고, 당연히 콩쿠르 참가는 물 건너갔다 여기고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께서 이왕 참가 신청서도 냈고, 비행기표까지 끊었는데 어떻게든 가라고 권유하셨죠. 찾으면 길이 보인다더니, 저를 도와줄 발레리노를 극적으로 만났습니다.”

새 파트너와 5일간 맹렬히 연습한 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는데, 그 짧은 기간에 완벽한 팀워크를 만들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1차에서 <백조의 호수> 중 ‘흑조’로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았어요. 그런데 2차에 준비한 창작발레 <심청>이 심사위원들 간에 창작 현대작품인지 아닌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죠. 결국 실격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는데, 1차 점수가 만점에 가까워서 가까스로 3차에 올라갈 수 있었지요.”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이번 미국 국제발레 콩쿠르 특별상 수상은 한서혜에게 각별한 추억이 됐다. 그는 이전에도 스위스 로잔발레콩쿠르 3위, 동아무용콩쿠르 금상 등 국내외 유명 콩쿠르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매년 콩쿠르에 참가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자극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콩쿠르에 나가려면 준비할 것이 많다”는 그는 아직 다른 참가자들과 실력을 겨루는 일이 필요한 시기라고 한다. 몸과 마음이 힘들 때도 많고, 두 번 다시 준비하기 싫을 때도 있지만 알 수 없는 매력 때문에 콩쿠르를 그만둘 수 없다고 한다.

“콩쿠르 무대 뒤에는 특별한 기운이 흐르죠. 차갑고 긴장되는…. 그곳에서 숨 쉬기가 싫어 도망치고 싶을 때도 많았어요. 이번 3차 무대에 오를 때는 아예 마음을 비운 상태였어요. 그래서 더 신나게 <해적>의 3막 ‘메도라와 알리의 그랑 파드되’를 선보였죠. 앞으로는 준비를 많이 한 상태가 아니면 콩쿠르에 나가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아메리카발레시어터의 내한공연 보고 발레리나의 꿈 키워

그는 발레를 전공한 어머니 덕분에 어릴 때부터 우리나라에서 열린 발레 공연이란 공연은 거의 보고 자랐다. 그중에서도 결정적으로 ‘발레는 내 운명’이라고 믿게 된 계기는 미국 아메리칸 발레시어터의 수석 무용수 줄리 켄트가 주역을 맡았던 <백조의 호수> 내한공연을 보고서였다. 그는 지금도 줄리 켄트의 아름다운 모습을 또렷이 기억한다.

“운이 좋았던 것은 제 발레 인생을 열어주신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김선희 교수님께 기본기를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초등학교 3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에서 본격적으로 발레를 배웠고, 예원학교 졸업 후 서울예고에 입학했는데, 석 달만에 조기입학 제의를 받고 대학생이 됐죠.”

그는 17세에 특례 전형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학창시절 추억이 많지 않아 아쉽지만, 조기입학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한다. 잠시 후 그가 억울한 표정을 짓더니 말한다.

“어머니는 제가 발레리나가 되는 것을 반대하셨어요. 지금도 발레가 싫으면 그만두라고 하실 정도죠. 아, 어제도 발레가 지겹지 않으냐고 물으셨어요. 제가 발레를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든 장본인이신데도요.”

그의 어머니는 “최고가 되기는 어렵다. 운이 좋아 최고가 된다면 명예는 얻을 수 있겠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힘든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라며 발레리나의 길을 걷는 딸을 아직도 걱정한다고. 어머니는 딸이 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면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게 하고 마사지를 해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준다.

“발레리나 치고 예쁜 발을 가진 것은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관리해주신 영향도 있을 것”이라며 그는 기자 앞에 빠끔히 두 발을 내민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뼈마디 사이로 10cm가 넘는 수술 자국이 보인다. “4년 전 인대 파열로 큰 수술을 했고, 6개월간 재활 치료를 했던 상처다. 발레리나는 대부분 재활치료를 병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도 안 통할 정도로 꽉 조이는 토슈즈를 4~5시간 동안 벗지도 못하고, 딱딱한 바닥에서 힘든 동작을 배우는 동안 발레리나는 적지 않은 부상을 입곤 한다. 하지만 이는 각자 이겨내야 할 몫이라고 그는 말한다.

“저도 예쁜 하이힐을 신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싶죠. 하지만 특별한 날이 아니면 굽이 낮은 구두나 운동화를 신어요. 몸매 관리를 위해 늦은 저녁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것도 발레리나가 익혀야 할 습관 중 하나죠.”

현재 그는 유니버설발레단의 드미 솔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그는 “주역부터 시작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역할을 맡을 수 있고, 문훈숙 단장에게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위치”라며 자신이 맡은 포지션의 좋은 점을 설명한다.

“그저 신나게 배울 시기라고 생각해요. 단장님께서 ‘서혜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는 보석이다’라고 자주 말씀하세요. 기술적인 면은 곧잘 하지만, 발레리나에게 중요한 섬세한 선과 몸짓은 많이 부족한 편이거든요. 아름다움과 기교를 겸비한 발레리나가 되는 것이 목표이자 희망이에요. 몸짓에 마음씨가 여과 없이 드러나기 때문에 내면을 가꾸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하고요.”

말하거나 노래를 부를 수 없는 발레는 오직 몸짓으로만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소리 지르고 삿대질하고 싶어도 아름다운 손짓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렇듯 무대에서의 모든 행동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하는 점이 발레의 매력이자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그는 공연 중 각 장면에 어울리는 대사를 저절로 말할 때도 있다. “가령 심청과 심봉사가 극적으로 상봉하는 장면에서 ‘아버지’라는 말이 입에서 새어 나온다”고 한다. 한서혜는 이렇게 대사가 필요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대화를 주고받곤 한다.

그가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은 <돈키호테>와 <카르멘>. 발레리나로서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은 좀더 많은 관객에게 발레의 매력을 알리는 일이다. 그는 “발레의 고향답게 러시아 국민은 발레리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라며 아직 발레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의 현실에 아쉬움을 내비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상황을 바꿔놓을 자신감이 있다.

“발레를 보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그러려면 지금보다 많은 사람들이 발레를 보러 와야겠죠? 발레의 즐거움을 알리고,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누구보다 앞장 설 거예요.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마음이 필요하겠죠?”

사진 : 김선아
  • 2010년 09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