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혁
1972년 강원도 화천에서 출생하여 목원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2006년 갤러리 상에서 <도시여행/흘러가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첫 개인전을 가졌고, 2007년 EBS 스페이스에서 두 번째 개인전 <나는 바바리 코트를 입고 서울여고로 간다>를, 같은 해 스페이스 아침에서 세 번째 개인전 <관공서>를 열었다. 2005년 7월 제27회 중앙미술대전 선정, 작가와 관객이 뽑은 인기작가상을 수상했고, 2006년과 200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진예술가 지원에 선정되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 작품이 소장되었다. 현재 서울에서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 도시의 욕망을 그리는 풍속화가 이민혁

이민혁
1972년 강원도 화천에서 출생하여 목원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2006년 갤러리 상에서 <도시여행/흘러가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첫 개인전을 가졌고, 2007년 EBS 스페이스에서 두 번째 개인전 <나는 바바리 코트를 입고 서울여고로 간다>를, 같은 해 스페이스 아침에서 세 번째 개인전 <관공서>를 열었다. 2005년 7월 제27회 중앙미술대전 선정, 작가와 관객이 뽑은 인기작가상을 수상했고, 2006년과 200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진예술가 지원에 선정되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 작품이 소장되었다. 현재 서울에서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지난 6월 26일 우리나라가 남아공월드컵에서 8강 진출을 가름하는 우루과이와의 결전이 있던 날, 삼성동 한 맥줏집. 붉은 악마 차림의 사람들은 한국 팀이 볼만 잡으면 쏟아내는 함성과 아우성으로 하나였다. 종업원들도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흥분과 열광의 와중에 오직 한 사람만이 우울했는데, 바로 주문을 받고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주방장이었다. 혼자 닭을 튀기려고 돌아서는 그의 입이 십리는 나와 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바로 그날 오후에 보고 온 이민혁의 작품이 그대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민혁이라면 이 장면을 어떻게 그렸을까?

화가 이민혁의 작품들은 〈배 나온 인도 사람이 사진 찍고 있는 삼성동 플레어 바〉 〈불난 도우미 노래방을 지나는 초딩〉 〈애 업고 서점에서 책 고르는 아버지들을 위하여〉 등 생활밀착형 제목을 달고 있다. 그림은 그려짐으로써 그림이 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클럽을 찾고 서점을 찾아도 무심히 지나치면 그만인 사건들, 혹은 매우 점잖지 못한, 비예술적인 사건들이 이민혁에게는 그림의 소재가 된다.

잠실철교에서 일어난 사건_ 91.0x60.6cm, Acrylic on canvas, 2008.
〈자욱한 안개가 흐르는 블루스 타임〉에서는 남녀가 짝을 이루어 춤을 추는 끈적끈적한 시간이다. 한복판에 짝을 찾지 못한 채 웃통을 벗고 행패를 부리는 남자가 등장한다. 저런 사람은 어디에나 꼭 한 명씩 있다 싶어서 웃음이 나온다. 이 남자는 블루스 음악으로 포장된 끈적거리는 로맨스의 실체를 폭로한다. 이렇게 그림 속에 사건은 슬쩍 숨어 있다. 〈잠실철교에서 일어난 사건〉은 제목을 보고도 무슨 일인지 눈치채기 어렵다. 화면 한가운데는 석양에 물든 강물이 차지하고 있다. 화면의 오른쪽 귀퉁이 하단에는 경찰차의 일부분과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자세히 보면 두 번째 교각 아래 동그란 물의 파문이 보인다. 〈잠실철교에서 일어난 사건〉은 바로 자살 사건임을 알 수 있다. 남이야 죽든지 말든지 화면의 위쪽으로는 전철과 자동차가 경주하듯이 질주한다. 죽음을 암시하는 네 그루의 수양버들만이 요란히 타오르는 듯 흔들린다. 아름다운 한강 변에는 눈이 오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카섹스가 벌어지고, 산책을 하고, 자살을 한다. 하나의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인간의 삶이다.

흘러가는 사람들 486.6x130.3cm, Acrylic on canvas, 2005
이민혁이 묘사하는 것은 사람의 생김새가 아니라 행위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남녀, 옷벗음과 옷입음이 겨우 구별될 만큼의 차이 속에만 존재한다. 그들은 행위에 몰두하며 행위로서만 표현된다. 혜원 신윤복의 그림이 양반 사회의 위선과 실상을 드러내는 것처럼 이민혁의 그림은 우리의 일상적인 공간에 내재된 욕망의 실상을 직접 화법으로 드러낸다. 이런 직설적인 내용뿐 아니라 고흐나 뭉크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화면은 한국 미술에서는 낯설다. 그는 “나는 사물을 색의 띠로 본다”라고 말한다. 그의 붓질은 모두 뭉쳐짐이 없는 선의 덩어리다. 그것은 분출하는 힘이기도 하고 도시의 역동성과 인물들의 행위를 담아내는 최적의 도구이기도 하다. 한동안 한국 미술의 화면은 잘 꾸민 새색시 같은 얼굴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냄새가 푹 밴 이민혁의 그림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세 번의 개인전은 모두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 이루어졌다.


첫 번째 개인전 〈도시 여행〉에는 도시의 빠른 질주, 아찔한 공간 구성이 표현된 작품들이 있는데, 이는 성인이 된 20대 후반에 본격적인 도시 생활을 하게 된 사람의 시선이다.

그는 강원도 화천의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후 대전에서 대학을 나왔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인 그는 그 무렵 한 여학생이 지나가던 자기를 향해서 “엄마, 쟤 화가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게 너무 좋았다. ‘화가가 된다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림을 학교가 아닌 낚시터에서, 삶의 현장에서 배운 것 같다. 풍속화가가 갖추어야 할 미덕인 ‘삶에 대한 가감 없는 통찰’을 얻은 것은 삶 자체에서다.

신(新) 강강술래 162.2x130.3cm, Acrylic on canvas, 2010
1998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서울에 올라온 당시만 해도 ‘내 작품이 최고다. 난 서울에서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넘쳤다. 그러나 미디어 아트 중심이던 당시의 미술판에서 그가 설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해 한때 영화의 특수효과 팀에서 일하기도 했다. 비 뿌리고 눈 뿌리는 험한 일이었다. 이때의 경험은 작품 속에 내리는 눈과 비로 표현되고 있다. 그렇게 밑바닥에서부터 바라 본 서울이라는 도시는 욕망으로 들끓고 있었다.

세상이 끈적거리는 욕망의 존재를 충분히 인정하니 오히려 그의 시선은 과장이 없다. 함께 술을 마신 친구들이 “우린 술만 마시지만, 이민혁은 이걸 또 그림으로 그린다”라는 말처럼 그는 체험하고 느낀 바를 진솔하게 그려낸다. 2회 개인전에는 도시를 채우고 있는 끈적거리는 욕망을 좀더 직접적으로 그렸고, 3회에서는 개인을 왜소하게 만드는 공권력의 권위주의를 그려냈다.

진저리 쳐지도록 매력적인 이곳에도 가끔은 땅도 갈라진다 193.9x63cm, Acrylic on canvas, 2006
작업실 한쪽 벽에 두 개의 그림이 눈에 띈다. 모두 작가의 자화상이다. 하나는 물난리가 난 지하 작업실에서 필사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등장한다. 서울에 올라온 직후 고단하던 시절의 추억이다. 다른 하나는 난로와 디스코 볼의 불빛이 휘황한 지금의 작업실 장면이다. 여기에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에게 알몸의 여자가 달라붙어 있다. “이 작업실로 옮기고 나서는 이렇게 껄떡대는 것이 많았다”라고 말한다. 2005년 어렵게 치른 첫 개인전 이후 미술시장의 폭발적인 반응에 대한 그의 대답이다. 미술시장의 속내 뻔한 환대를 그는 맹신하지 않는다.

완전 그림시장 130.3x89.4cm, Acrylic on canvas, 2009
작품 이외에도 그의 작업실은 고물상과 앤티크 숍의 중간에 있다. 평생 버리지 않으리라 선언한 구식 짐자전거, 구식 연탄난로, 40년이 넘은 턴테이블, 반닫이들, 재활용품장에서 구제해온 여러 장난감이 잔뜩 쌓여 있는 가운데 1200장의 LP판이 있다. 그의 감수성의 근원을 알 수 있다. 그가 수집한 반닫이처럼 투박하고 관록 있는 턴테이블로 듣는 LP판의 생생한 음질이 작품에 배어 있는 것 같다.

“사람은 죽으면 한 문장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내가 죽고 나면 어떻게 평가될까 생각해보았다. 후에 나를 기득권층이 아닌 일반 대중 혹은 서민과 함께한 작가라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4회 개인전의 테마는 ‘한강’으로 확정되었다. 정선의 강원랜드는 연구과제로 남아 있다. 이 기획은 발자크의 《인간 희극》처럼 우리 시대의 풍속을 총망라하는 백과사전적인 성격을 띨 것이다. 우리 삶이 지속하는 한 화가 이민혁이 그릴 소재는 무궁무진하며, 삶이 다하도록 그는 그림을 그릴 것이다.

사진 : 김선아
  • 201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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