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여행 에세이 《키스 미, 트래블》 펴낸 모델 송경아

여행이요?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죠

패션모델, CF모델, 방송 MC, 패션디자이너 등 전방위로 활동 중인 송경아. ‘그림 잘 그리는 모델’로도 유명한 그가 두 번째 여행 에세이집 《키스 미, 트래블》을 냈다. 《뉴욕을 훔치다》 이후 4년 만이다. 이번 책은 베니스・프라하・파리・싱가포르・코사무이 등 10여 개 도시를 찬찬히 거닐며 쓰고 그린 여행 에세이다. 관광 명소보다는 우연히 발견한 이름 모를 작은 골목길에 반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무턱대고 쪼그리고 앉아 수첩을 꺼내 스케치하는 여유로운 내면을 고스란히 담았다. 출간 기념으로 신사동에서 일러스트 전시회를 열고 있는 그를 만났다.

그가 씩씩한 걸음걸이로 약속 장소에 들어서자, 기자 일행은 할 말을 잃었다. 179.5cm의 키에 굽이 10cm 정도인 운동화를 신어 190cm 정도가 된 그를 올려다보며 압도당한 것. 하지만 그는 이내 소탈한 말투와 행동으로 일행을 무장해제시켰다. 재기 발랄하게 웃으며 전시실 그림을 설명하는 그에게서 팅커벨의 아우라가 풍긴다. 팔다리가 길쭉길쭉하고 환한 은빛 에너지를 흩뿌리면서 날아다니는 요정 팅커벨.

송경아의 그림은 경쾌하면서도 사색적이다. 붓과 펜의 터치가 과감하고 채도가 높아 시원스럽다. 화폭에 담긴 오브제들은 그 도시의 표정을 대변하는 듯 각기 표정이 있다. 부라노 섬의 새파랗고 샛노란 벽, 프라하 골목길의 낡은 기둥, 도쿄의 회색 타일 벽 앞에 세워진 자전거 등. 스쳐 지나기 쉬운 풍경과 사물의 고유한 느낌을 잡아내 화폭에 옮긴 그의 그림은 가볍지만 깊이가 있다. 책에는 그의 오랜 여행 경험에서 터득한 여행지 쇼핑 팁과 여행 패션 스타일링 등 실용 팁도 함께 담았다.

송경아는 무엇에 이끌리듯 여행을 떠난다. 철저히 계획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우연히’ 떠나 에너지를 충전하고 돌아온다. 그에게 여행은 특별한 효용성을 갖는다. 그는 “여행은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게 해주는 건전지 같은 것”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이 도시들을 여행할 때가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였어요. 인생의 한 장을 마감하고 새로운 장을 여는 중요한 시기였죠. 이제까지 내가 걸어온 길이 맞는 건지, 앞으로도 같은 길을 갈지, 새로운 길에 들어설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여행가서 낯선 곳에 뚝 떨어져보면 제가 잘 보여요. 저를 감싸고 있는 벽이 없어지면서 객관적으로 보이거든요.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시작하게 된 패션모델. 그는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았지만 모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키가 너무 커서 체형 교정을 위해 모델 에이전시에 다녔고, 우연히 지춘희 패션쇼 모델로 발탁되면서 모델의 길에 들어섰다. 어머니가 174cm, 오빠는 187cm, 할아버지가 180cm, 삼촌들은 180cm가 넘고 고모들이 170cm이 넘는다고 한다. 쉼 없이 10년 넘게 모델 활동을 해왔지만 그림 그리기 역시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림과 사진 모두 좋아해요

“네 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아버지가 책 컬렉터이신데 아무 책에나 그림을 그려서 혼나곤 했죠. 언니와 경쟁하듯 그림을 그렸어요. 언니는 10년 넘게 스튜어디스를 하다가 지금은 호주의 르 코르동 블루에 가 있죠. 나중에는 그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요.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가 너무 좋거든요. 어려서 문방구 주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웃음).”

송경아는 사진 찍기도 취미다. 모델은 사진의 피사체여서 카메라는 늘 함께하는 친숙한 존재다. ‘미적인 순간을 포착해 평면에 담아내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그림과 사진은 통하지만 이 둘을 즐기는 관점은 다르다.

“사진은 찰나에 완성되지만, 그림은 시간이 오래 걸리죠. 대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생각하고 얽힌 사연을 상상하며 선택적으로 선과 색을 넣어요. 철학과 그림 그리는 작업은 닮아 있어요.”

모델 중에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많다. 전성기가 짧고, 런웨이에서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잊지 못해 그 시절의 망령에 사로잡혀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 하지만 송경아는 우울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는 연신 “헤헤헤” “흐흐흐” 웃었다. 자화상에는 자기애가 넘친다. 스스로도 “저는요, 저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요”라며 또 “흐흐흐” 웃는다.

“성격이 낙천적인 편이에요. 일이 터지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다른 모델들은 외모와 관련된 비난을 들으면 괴로워하는데 저는 ‘그런가 보다’ 해요. 제가 슈퍼모델이 됐을 때 모델계에서 화제가 됐어요. 그전에는 쌍꺼풀 있는 예쁘장한 모델이 대세였거든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저나 장윤주 씨처럼 동양적인 이목구비의 외모가 뜨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제 눈이 싫었어요. 지금은 장점으로 여겨요.”

그의 롤모델은 케이트 모스다. 168cm의 키에 눈은 약간 사시인데다 다리도 휘었지만 30대 후반임에도 여전히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모델. 소녀적인 순수함과 여인의 관능미를 동시에 지닌 케이트 모스는 변화무쌍함으로 팬과 디자이너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는다. 송경아는 “어떤 분야든 예외는 있다”며 “케이트 모스처럼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송경아의 지난 삶은 자신을 찾는 여정이었다. 12년 동안 모델을 하면서 모델 일에만 푹 빠져 지내는 게 아니라 수시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으며 여기까지 왔다. 그는 목표를 향해 앞만 보면서 달려가지 않고,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길가에 핀 꽃들에 눈길을 보낼 줄 알고, 누군가 손을 내밀면 환한 미소로 화답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밝은 에너지는 그 과정에서 점점 더 강하게 뿜어 나오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인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을 물었다.

“경험이요. 겪어보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면 안돼요. 저는 직업 때문에 제 또래에 비해 많은 나라를 다녀보고 다양한 경험을 했잖아요. 알면 알수록 모르는 분야가 더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험을 해봐야 ‘이건 이랬지, 저건 저랬지’ 하면서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요. 두려워하지 말고 다양한 일을 경험해본 후 결정해도 절대 늦지 않아요.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굳이 해외여행을 하지 않아도 돼요. 조용한 정자 같은 곳에 하루 종일 앉아서 생각해볼 수도 있지요.”

사진 : 김선아
  • 201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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