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35) 황학주,〈능가사 벚꽃 잎〉

이 봄에… 저 휘어짐!

어둠 속에서 여인을 본 날이었다
놀랍게도
이불을 끌어안은 것처럼
빗소리를 바짝 붙잡고 있는 모양이었다
낮술에 취해 비스듬히 베어진 남자가
물 묻은 가지를 짚은 채 여인 옆에 기대앉아 있었다
여인과 잠깐 눈이 마주친 동안
산벚꽃 잎이 날아왔다

빗소리 깔린 길
멀리 데려간 단 한 발자국만큼의 인연을
생이 지켜보고 있는 것도 같다 이미 울다 간 바 있는
봄, 사랑이 결정되기라도 하면
숙명이 책상다리를 하고 노랑 병아리 같은 것을 깔고 앉는

그런 전철이 있는 것 같다
서서히 기울며 지워지는
어둠은 그날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잎도 져 내리었다
한참 후
양쪽 발소리가 다른 여인이
입구 쪽으로 천천히 나가고 있었다

젖은 꽃잎이 날아 내리며 입구를 간신히 비추어 주었다



올해 벚꽃은 유난히도 희고 눈부셨다. 벚꽃 아래서 내 마음은 자꾸 허방을 짚고 어둔 심연 속으로 떨어지곤 했다. 허랑방탕하게 흘려보낸 시간들이 솟구쳐 가슴을 치고, 꿈속에서는 멀리 떠나보낸 사람들이 자꾸 나와 울었다. 정말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아름다워서 슬픈 봄이었다. 그런 와중에 〈능가사 벚꽃 잎〉을 읽었다. 마침 이 시는 벚꽃이 피고 지는 봄 풍경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만남과 헤어짐, 존재와 부재, 이승과 저승 사이에 벚꽃이 만발하며 충만한 이 봄에 완충지대는 없다. 울고 간 자와 남은 자 사이에 벚꽃의 하염없는 낙화만 있을 뿐이다. 비가 오고 꽃잎이 떨어지는 능가사에 시인은 무슨 볼일이 있어 간 것일까. 이 배경 속에 낮술에 취한 남자와 그 옆에 여인이 있다. ‘나’는 여인과 잠깐 눈이 마주친다. 그게 전부다. ‘나’는 여인과의 찰나적인 눈 마주침에서 되풀이되는 생의 흔하디흔한 전철을 읽어낸다. 그것은 내가 겪어낸 경험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이와 똑같은 이별의 순간이 있었던 것이다. “이미 울다 간 바 있는 봄”이라는 구절은 그런 사연을 품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긴 있는데, 알 수는 없다. 이 사랑은 애달프다. 이 사랑이 깨진 사랑이라는 암시를 담고 있는 까닭이다. 그럴 때 시인의 마음은 잘 “휘어진다”. “제 자신의 바닥까지 휘어진 / 생의 화장을 고치는 노련한 산그늘”(〈고향〉), “나, 휘어진 바닷길을 그제야 따라 붙는다”(〈고흥〉), “발포, 등이 멀리 휜 가운데만큼은 / 아직 아프다”(〈발포 해변〉)라는 구절에 나오는 “휘어진”이라는 형용사는 황학주만의 것이다. 이를테면 전매특허 같은 것이다. 이 휘어짐은 수양버들의 휘어짐이고, 길의 휘어짐이고, 이미 다른 운명을 품고 속절없음을 품은 마음의 휘어짐이다. 휘어진 것들은 그 본성이 연하디연한 것들이어서 굳세지 못하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연해서 휘어진 것이 아니라 휘어져서 연한 것들이다. 휘어진 것들은 어떤 궤도를 벗어나 굴곡의 운명, 혹은 오차가 난 삶을 묵묵히 견뎌낸다. 휘어짐은 그저 마음에 그어진 상흔으로 남을 뿐이다. 이 연성(軟性)의 운명을 붙잡고 있는 시인은 한 남자와 이별을 앞둔 낯선 여인에게 제 운명을 겹쳐 바라보는 것이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다. 여인은 절의 입구 쪽으로 걸어 나간다. “양쪽 발소리가 다른 여인이 / 입구 쪽으로 천천히 나가고 있었다”라는 구절은 눈이 번쩍 뜨이는 발견이다. 양쪽 발소리가 다르다는 것은 여인의 다리가 불편하다는 암시를 담고 있다. 다리의 불구가 여인의 운명을 붙잡고, 그래서 여인의 운명도 함께 휘어졌을 터다. 입구 쪽으로 걸어 나간다는 것은 속절없이 품었던 그 휘어진 운명 바깥으로 나간다는 뜻일 게다. 그것은 아마도 “내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그런 운명은 / 오래오래 기억하다 해발 가장 높은 추전역 같은 데 내려주어야 한다”(〈노랑꼬리 연〉)는 구절에 보이는, 붙잡고 있던 운명의 놓아줌과 같은 뜻일 게다. 입구는 곧 출구다. 들어온 길이 곧 나가는 길이다. 시인은 굳이 “젖은 꽃잎이 날아 내리며 입구를 간신히 비추어 주었다”라고 여인이 걸어 나가는 입구 쪽을 환하게 밝혀둔다. 우리는 “양쪽 발소리가 다른 여인”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빗소리가 그 여인을 배웅하고, 젖은 꽃잎들이 날리며 그 여인의 앞길을 밝혀주었다는 것뿐이다. 이 봄에 그런 전철을 밟는 사람이 어디 이 여인뿐이었겠는가!



황학주(1954~ )는 광주 사람이다. 시인은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나 명문 광주상고를 나왔다. 그는 나중에 국문학 박사가 되었지만, 삶의 태반은 상고 출신으로 살았다. 그 삶은 학력사회인 이 땅에서 소소하게 마음이 많이 다친 삶이었을 것이다. 그 증거가 있다. 그의 시는 ‘상처 학교’라고 부를 만큼 다친 흔적이 지천이다. 그는 때때로 인륜의 어떤 의무들에 태만한데, 그것은 도덕적인 빈곤이기보다는 기진(氣盡)한 자의 불가피함으로써 그러하다. 그가 굴곡 많은 삶과 상처를 품은 시들을 세상이라는 진흙 뻘에서 배[復]를 밀며 씩씩하게 나가게 하는 동력은 연민이다. 시인은 불화와 헤어짐을 품으며 가여운 것들을 연민으로 품는데, 연민은 갸륵하게도 상처를 견디는 힘이 되었다. 그는 1987년에 시집 《사람》으로 시인이 되었다. 그가 시인이 될 때 나와는 인연이 있다. 그가 시집 원고를 들고 내가 경영하는 출판사를 찾아왔고, 나는 그 원고를 받아 읽고 흔쾌하게 시집을 만들었다. 그 뒤로 나는 출판사를 접었다. 30대를 갓 넘겨 새파랗게 젊던 시절에 만난 그도 이제는 50대 중반을 넘어서고 여러 권의 시집을 가진 중견 시인이 되었다. 그는 고흥에 산다고 했다. 때로는 아프리카 케냐에 가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이 모든 것들은 정확하지 않다. 나는 항상 그가 어디에 사는지 그 정확한 주소를 모른다. 그가 유목민으로 여기저기 떠돌며 살기 때문이다.

황학주의 시들은 늘 어떤 상흔(傷痕)을 노래한다. 시인이 걸어야 했던 일신운화(一身運化)의 길은 거칠고 팍팍한 길이다. 스물세 해 전 쯤 펴낸 첫 시집 《사람》에서 “지금 성한 것은 영원히 성한 것이 아니라고 / 내 믿음을 섣불리 말하면 너는 눈물 안 날 것이냐?”(〈섬진강 내일〉), “5월과 6월이 어떻게 지나갔는가 / 우리 살도 째고 내장도 뜯으며 간 봄”(〈계화교에서〉), “가슴은 새로 쓸 수 있다 하니 다친 가슴 / 단단히 잘 굳으면 나가서 빗줄기를 맞을 때”(〈바람에 불려 차디, 차던〉) 따위의 구절들에, 살림을 들어먹고 고리 사채(私債)에 시달리다 등 맞대고 살던 사람이 뿔뿔이 흩어지며 찢기고 뜯긴 마음의 흔적들이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 그가 시에서 계화도 수몰 이주민의 팍팍한 삶에 제 삶을 겹쳐낼 때 슬픔은 삶의 저 안쪽까지 깊게 삼투하며 어떤 무늬들을 선명하게 새긴다. 황학주의 시들은 그 무늬들을 안고 찬란해지는 것이다.


사진 : 진구
  • 2010년 06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