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 ‘하이브리드 목수’ 박종선

조선 목가구의 정신과 최첨단 문명을 결합하다

박종선
1969년 원주에서 출생했다. 2005년 <나무에게 말을 걸다>, 2005년 <소리의 풍경>, 2006년 <소리 나는 목가구>, 2007년 <빛과 소리의 숲>, 2010년 <나무의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가졌다. 단체전으로는 2009년 미국 마이애미의 디자인 마이애미, 2010년 뉴욕 첼시의 R갤러리에서의 <한국 디자인 5인전>, 2010년 LA의 피에르 쾨니히 하우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으며, 2010년 6월 스위스 바젤의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에 참여할 예정이다. 현재 전업 작가로 원주에서 작품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간결하고 날렵한 선이 시야를 가로지른다. 숨이 막히게 완벽한 비율. 나무의 결은 살아 있으나 과하여 형태를 해하지는 않는다. 나무와 나무가 만나는 모서리는 완벽한 결구를 이루며, 지름 3mm의 작은 나무못이 견고함과 아름다움에 완벽을 더한다. 더듬어 결을 느끼면 나무는 사람의 손길에 순응하며 함께할 오랜 시간을 기약한다. 서랍은 부드럽게 여닫히면서도 아직 손때가 타지 않은 나무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것은 가구라는 이름을 한 예술이었다.

원주시 판부면 박종선의 작업실. 올해 6월 디자인 마이애미 바젤페어에 출품할 책상, 조명, 의자, 캐비닛 등의 마감 작업이 한참 진행 중이다. 디자인 마이애미 바젤 페어는 작년에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가 한국 작가의 작품을 사서 국내에도 알려진 세계 최고의 디자인 아트페어다. 거미같이 긴 다리를 가진 나무 조명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온다. 나무로 된 회전형 플랩을 움직여 빛의 세기와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 창고에는 이 작품을 위해 만든 다리가 세 개나 더 있다. 깎아보니 나무의 결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네 번째 것을 다시 만들었단다. 내 눈에는 모두 다 똑같이 훌륭해 보이는데, 작가 박종선의 눈은 아주 작은 차이를 모두 걸러내나 보다. 완성도 높은 그의 작품이 나오는 긴 시간이 느껴졌다. “이 조명등은 자기 존재를 알릴 정도이지 누굴 비출 만하지는 않아요.”

그가 웃으며 잠시 후 덧붙였다.

“그래도 아주 깜깜할 때는 약간은 기여를 해요.”

농담같이 던진 말이지만 그의 작업 철학이 담긴 말이다. 조선 목가구에 담긴 절제와 겸손의 미학을 그는 익히 알고 있다. 올해 초 청담동 ‘서미 앤 투스’ 갤러리에서 있었던 박종선의 개인전은 한국 미술에서 새로운 취향을 보여준 좋은 전시였다. 조선조 목가구의 전통을 세련된 감각으로 현대화한 그의 작품은 외국 수입 디자이너들의 가구점이 즐비한 청담동에서도 빛났다. 박종선의 진가는 2009년 12월 있었던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출품 전작이 솔드 아웃됨으로써 해외에서 먼저 알려졌다. 그는 쉴 틈이 없다. 현재 디자인 작품 전시로 유명한 뉴욕 첼시의 R갤러리에서 열리는 <한국 디자인 5인전>에 참여하고 있으며, LA의 랜드마크인 할리우드 힐에 위치한 현대적인 서양 건물에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해서 통째로 파는 피에르 쾨니히 하우스 프로그램(Pierre Koenig House Program)에서도 전시를 하고 있다.

Trans-1005(Zelkova Brass Floor Lamp), W 1000 x D 1000 x H 1510, 2009
7월에는 일본의 가나자와에 개인전이 잡혀 있다. 그는 백운산이 보이는 원주의 시골 농가를 개축한 크지 않은 작업실에서 세계 각지의 미감 높은 사람들에게 선보일 작품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2005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꾸준히 전시를 해왔는데, 2008년 4월 인사동 토포하우스, 아원공방, 몽인갤러리 세 군데에서 동시에 개인전을 가졌을 때 ‘서미 앤 투스’ 갤러리의 홍승원 관장이 입소문을 듣고 직접 와서 보고 전격적으로 발탁하면서 그는 주목받는 작가의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근래이지만 그는 15년째 원주의 작업실에서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무엇이 될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은 길이지만, 그는 묵묵히 그 시간들을 견뎌냈다.

“작업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10년만 해보자’ 하다가 하다 보니 ‘평생 해보자’라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물론 평생 해보아도 이룰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냥 ‘이 생애는 이것으로 끝내자’라고 생각했어요. 제 작업이 꼭 가구를 만든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일 자체가 즐거움이며 유희고 놀이 같은 거죠. 어두운 다락방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나무일이 인연이 되었고, 그게 작업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Oak Desk (Hidden Drawer), W 700 x D 485 x H 740, 2009

액자 공장 하다 우연히 목가구 만들기 시작해

박종선이 만드는 작품은 현대 건축, 현대 미술작품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세련된 미감을 뽐내는데, 그 연원은 조선조 목가구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대학도 다니지 않았고 그 흔한 공모전에도 입상한 적이 없다. 나무일을 하게 된 것은 20대 후반 액자 공장을 하면서였다. 그러나 액자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그러던 중 동업하던 친구가 엉뚱하게 가구 주문을 받아왔다. 생전 해보지도 않은 가구를 눈짐작, 손짐작으로 만들어냈다. 해보니까 즐거웠다. 이를 계기로 27세 때 본격적으로 가구 만드는 일을 배워나갔다. 문화재청 학교에서 전통공예를 배우면서 조선조 목가구의 테크닉을 완벽하게 습득했다. 이때부터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의 작업장 한켠에는 100여 개가 넘는 목수 연장이 나란히 꽂혀있다. 이 소목 연장들은 이름도 모르는 충주의 목공예 장인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이 장인은 연장을 물려줄 제자도 없이 세상을 떠났고, 주변 사람에게 이 연장을 쓸 만한 사람을 만나면 전해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것이 박종선에게 전해진 것이다. 이 연장들은 지금도 녹이 슨 게 하나도 없고, 언제든지 일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반짝거린다. 처음에는 물욕에 기쁘기만 했는데, 요즘은 이 연장들에 점점 고개를 숙이게 된다고 박종선은 말한다. 연장을 만지는 그를 가만히 보니 손이 유난히 크고 팔도 남보다 길다. 목수로 타고난 사람이다.

Trans-1002(Zelkova Audio), W 960 x D 960 x H 1540, 2009
조선조 목가구의 세련된 비례감각과 나무 다루는 법을 배운 그는 전통에 정통하면서도 그에 묶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우리 시대의 감수성을 자신의 작품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박종선은 늘 수첩을 들고 다니며 술자리에서건 일상적인 대화의 자리에서건 떠오르는 생각을 즉석에서 메모한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생각이 작품에 부여하는 첫 번째 원동력이다.

“제 작품은 기능에 맞춘 것이 아닙니다. 가구의 기능을 배웠고 거기에 자연스럽게 소리·빛 등이 담겼지요.”

Walnut Cabinet, W 530 x D 520 x H 1810, 2009
어린 시절부터 여러 방면으로 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고등학교 때는 그룹사운드를 만들어서 활동했다. 지금도 그의 베이스 기타 솜씨는 수준급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잘 들을 수 있는 음향 기구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2006년 그의 개인전 전시 제목은 〈소리 나는 목가구〉와 〈소리의 풍경〉이었다. 그의 작업실에는 티볼리 네트워킹 라디오 신형 모델이 눈에 띈다. 아이폰 대기 구매자였고, 인터넷으로 새로운 기계와 부속을 끊임없이 조사할 정도로 그는 얼리어댑터이기도 하다. 전선, 전구 플러그 등 작품에 필요한 소품은 모두 여행하면서 사들인다. 조선조 목가구라는 전통적인 개념과 최첨단의 문명을 연결하는 그는 ‘하이브리드 목수’임에 분명하다.

이 ‘하이브리드 목수’의 사고는 가구의 세계에 갇혀 있지 않다. “가구는 집을 작게 짓는 것이다. 나는 건축적으로 사유한다”고 그는 말한다. 건축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지만 그는 네 채의 집을 지었다. 그가 요즘 관심을 갖는 것은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집’이다. 기능을 가진 가구를 중심으로 집을 풀어나간다는 신선한 생각으로, 과시하고 외부와 차단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신체의 연장으로 집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집’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회운동가 장일순의 사상이 떠올랐다.

Walnut Armchair, W 550 x D 500 x BH 795, 2009
“원주에 있는 게 즐겁죠. 원주에는 장일순 선생의 정신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장일순 선생의 잠언집을 보면 눈물이 나요. ‘어른이 고프다’라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종아리도 맞고 싶고 칭찬도 듣고 싶을 때가 있어요.”

직접 만나뵌 적은 없지만 식당에 가도 장일순의 글씨가 걸려있을 정도로 원주는 장일순, 지학순 주교, 김지하로 이어지는 한국 사상의 한 맥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10년이 넘는 긴 무명 생활을 견뎌내는 것은 이런 정신적인 힘 덕분이다. 21세기 ‘하이브리드 목수’는 뿌리 깊은 견고한 사상적인 바탕 위에 전통과 최첨단의 문명이 제공하는 감수성을 결부시키고 있었다. 옛말이 더러 잘 맞는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많이 열리니라’.

사진 : 진구
사진제공 : 갤러리 서미 photo by 박명례
  • 2010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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