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시장 돌풍 일으킨 소설 《덕혜옹주》 작가 권비영

사진으로 보고 이끌린 덕혜옹주의 삶, 되살리고 싶었어요

요즘 출판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을 꼽으라면 단연 《덕혜옹주》다.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르더니 7주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벌써 20만 부가 넘게 팔렸고, 선인세로 10억 원을 넘게 주었다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도 가볍게 제쳤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우스갯소리로 “고종의 막내딸 덕혜옹주가 마침내 일본 위에 올라섰다”고도 한다.
《덕혜옹주》의 돌풍이 이변으로 꼽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저자인 권비영 씨가 기존 문단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지방 문인이라는 데 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권씨는 결혼과 함께 울산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벌써 20여 년째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학창 시절, 글쓰기를 좋아했고 각종 백일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는 했지만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적이 없던 그는 결혼 뒤 글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지역에서 주관하는 주부 백일장 공고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둘째 아이를 들쳐 업고 대회장에 나가 당당히 입상했고, 부상으로 냉장고를 받았다.

그때부터 그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한국문인협회 경주지부에서 주관하는 신라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소설 21세기’ 동인으로 활동하며 2005년에 창작집 《그 겨울의 우화》를 발표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지만 크게 이름을 얻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자신이 치르고 있는 유명세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다는 말이 내 얘기가 될 줄은 몰랐어요(웃음). 사실은 아
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얼마 전 출판사로부터 ‘40쇄를 찍었다’는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어요. 처음 책을 낼 때만 해도 출판사를 찾는 게 너무 어려워 제 돈을 보태서라도 출판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거든요.”

눈을 의심할 만큼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판매량에 그도, 출판사도, 독자도 모두 놀랐다. 그는 “모두 《덕혜옹주》가 이렇게 큰 관심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내게 묻는데, 사실은 나도 잘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덕혜옹주는 고종이 환갑에 얻은, 유난히 총애했던 막내딸이에요. 그런데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일본으로 끌려가 대마도 번주의 아들인 소 다케유키(宗武志)와 강제 결혼했다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10여 년 세월을 그곳에서 보내지요. 해방이 되고도 한동안 돌아오지 못하다가 1962년에야 귀국했는데, 1989년 숨을 거둘 때까지 창덕궁 수강재에서 외부와의 접촉 없이 말을 잃은 채 지냈어요. 이런 비극적 삶이 그 시기의 아픈 우리 역사, 우리 민족의 삶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에요.”


집필 들어가기 전, 보라색 소국 들고 덕혜옹주 묘소 찾아가

그가 처음 덕혜옹주에 관심을 가진 것은 3년 전이었다. 대한제국을 재조명하는 신문 기사를 읽다 어린 덕혜옹주의 사진을 발견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감정을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옹주의 모습이 그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궁금해하며 자료를 찾았지만 제대로 된 책 한 권이 없었다. 인터넷에 파편처럼 떠도는 단편적인 내용을 모으던 중 대학 도서관에서 일본 학자 혼마 요스케가 쓴 덕혜옹주에 관한 책을 발견했다. 일본어를 모르는 그는 지인에게 책의 번역을 부탁했다. 그는 “정작 우리는 잊고 있는 덕혜옹주의 삶을 일본인이 사료에 기초해서 구체적으로 기술한 것을 보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덕혜옹주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분의 삶을 소설로나마 되살려놓아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어요.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뒤 보라색 소국을 사 들고 남양주 금곡에 있는 그분의 묘소를 찾아갔지요.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도와주세요.’ 그런 마음으로요. 그런데 신기하게 사흘 뒤 제 꿈에 덕혜옹주가 나타난 거예요. 제가 묘소에 가지고 갔던 그 꽃을 들고 가만히 저를 내려다보시더라고요. 이게 길몽인가 싶더군요.”

근 1년간에 걸친 자료조사가 끝난 후 그는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했다. 글을 쓰는 도중에도 덕혜옹주에 관한 자료가 있으면 먼 거리를 마다 않고 달려갔다. 덕혜옹주가 결혼해 한동안 살았던 대마도에도 세 번을 다녀왔다. 인터넷 카페인 ‘우리황실사랑회’가 주관한 덕혜옹주 추모제에도 참여했다.

방대한 자료 수집을 통해 그는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배치하며 덕혜옹주의 삶을 완성해나갔다. 그동안 드라마 등에서 ‘곱사등이며 성격이 포악해 폭력을 일삼는 폭군’으로 묘사되곤 했던 덕혜옹주의 남편을 그는, ‘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마음을 열지 않는 부인 앞에서 끝내 좌절하고 마는 인물’로 그렸다. 일본 사람이라고 무조건 나쁘게 볼 것이 아니라 영문학자이자 시인, 화가였던 그를 좀 더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는 “이 부분이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항의를 받고 있는 대목”이라며 웃었다.

자료조사에서 출간까지 3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는 동안 책이 나오지 못할 뻔한 위기도 겪었다. 한창 원고가 마무리되어갈 즈음, 덕혜옹주에 관한 책이 출간된 것.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니 그가 자료로 구해 읽었던 혼마 요스케의 책이 《덕혜희(姬·히메·왕녀)-이씨 조선 최후의 왕녀》라는 제목을 달고 번역본으로 나온 것이었다.

“뒷북치는 꼴이 되는 것 같아 그만둘까도 생각했는데 ‘내가 당신 삶을 되살려보겠다’고 한, 덕혜옹주와의 약속을 지켜야 할 것 같아 다시 마음을 추스렸지요. 원고 작업이 끝난 후에는 한동안 출판사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다 우연히 지금의 출판사와 연결되면서 출간 작업이 급물살을 타게 됐어요. 일이 하도 일사천리로 진행돼 지금도 꿈만 같아요.”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며 환하게 웃는 그에게 책을 내밀며 저자 사인을 부탁했다. 그는 기자가 내민 펜 대신 자신의 가방 속에서 만년필을 꺼냈다.

“이게 사연이 있는 펜이에요. 우리 아들이 5년 전에, 엄마가 유명 작가가 되어 사인해 줄 일이 생기면 이 펜으로 쓰라고 사준 거예요. 그동안 한 번도 쓸 일이 없어 묵혀두었는데, 요즘은 자주 사용하고 있어요. 한동안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뒤 또 다른 작품을 시작해야죠. 역사 속 인물을 재조명하는 작품을 해보자는 청탁을 몇 군데서 받았는데 모두 거절했어요. 그 사람에게 푹 빠져들지 않으면 글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죠. 덕혜옹주같이, 제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는 인물을 또 만난다면 몰라도요.”

사진 : 정익환
  • 201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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