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서예리

세계의 음악 거장들이 선택한 ‘크리스털 목소리’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독일의 고음악 체임버 오케스트라 ‘베를린 고음악아카데미(일명 아카무스(AKAMUS))’가 처음 한국을 찾았다. 지난 2월 17일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이들도 화제이지만, 2003년부터 ‘베를린 고음악아카데미’와 유럽·미국·중남미 등 주요 무대를 함께해온, 오랜 파트너인 협연자 소프라노 서예리(34) 씨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공연 전날 리허설을 마친 그녀를 LG아트센터에서 만났다.
유럽 등 세계 무대에서 소프라노와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는 서예리 씨는 활발한 해외 활동에 비해 국내에서는 덜 알려진 편이다. 그는 서울 음대를 졸업한 후 독일로 유학, 베를린 국립음대 솔리스트 디플롬 과정을 최고 성적으로 졸업하고 스위스 스콜라 칸토룸 바질리엔시스에서 고음악 최고연주자 과정,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오페라과 마이스터 연주자 과정을 마쳤다. 그동안 국내 팬들은 <텔레만, 함부르크 그리고 서예리>(원제:Elbipolis Barockorchester Hamburg) 등의 수입 음반을 통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최근 르네 플레밍, 예프게니 키신, 힐러리 한 등이 소속된 세계 굴지의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사 IMG 아티스츠(Artists)와 전속계약을 맺으면서 화제가 됐다. IMG와 전속계약을 맺은 한국인은 소프라노 홍혜경 씨에 이어 그가 두 번째다. IMG의 아티스트라는 의미는 세계적인 소프라노로 활약할 수 있는 티켓을 거머쥔 것과 같다고 한다.

IMG 아티스츠가 그를 선택하기 전에 그는 이미 한발 한발 유럽의 거장들과 함께 작업을 해왔다. 독일 고음악의 거장 르네 야콥스는 그의 노래를 듣고 “당신은 정말 크리스털 같은 목소리를 가졌다”라고 말했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 풍부하고 섬세한 감정표현이 그의 트레이드마크. 베를린 국립음대 졸업반 때 마스터 클래스에서 만난 르네 야콥스는 그의 자질을 알아보고 바로 발탁했다. 2003년 인스부르크 고음악 페스티벌에서 르네 야콥스 지휘 ‘오르페오’로 데뷔한 후, 필립 헤레베헤, 톤 쿠프만, 마사키 스즈키, 볼프강 림, 켄트 나가노 등 거장들과 함께해왔고, 현대음악전문 단체 ‘앙상블 모데른’에서 베를린 고음악아카데미와의 협연까지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우리나라에서는 IMG로 인해 주목받는 게 도리어 새삼스러울 정도다.

그는 바로크에서 현대음악까지 시대를 넘나드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하는 보기 드문 소프라노로 꼽힌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유럽 음악계에서 ‘무서운 유망주’로 주목하고 있고, IMG에서 그를 발탁했다. IMG는 지난해 5월 링컨센터에서 공연한 작곡가 진은숙의 작품 〈말의 유희〉와 죄르지 리게티의 오페라 〈거대한 기괴(Le Grand Macabre)〉에 등장한 그를 보고 주목하기 시작했다.

모노오페라 〈아리아드네〉
“IMG의 담당자가 지난 11월, 스위스 바젤극장에서 열린 공연 〈아리아드네〉를 보고 연기력과 노래, 현대음악의 표현력이 마음에 든다며 IMG 소속으로 활동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13세기 중세음악에서 방금 작곡된 현대음악까지 소화하는 점이 놀랍다’고도 하고요.”

그는 독일의 작곡가 계보를 잇는다는 볼프강 림의 모노오페라 〈아리아드네〉에서 평생 섬에 갇혀 디오니소스를 기다리는 아리아드네 역할을 맡았다. 열여섯 살부터 아흔 살까지 넘나들며 40분간의 러닝타임을 혼자 소화해야 하는 극. ‘얼마나 외로우면 미쳐갈까.’ 그 심정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작품을 준비하면서 석 달 동안 스스로를 고립시켰다고 한다.

“옷장 하나와 베개들이 나에게 주어진 소품이었어요. 원체 밝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한 남자를 기다리다 미쳐가는’ 연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연습 장면을 녹화해놓았다 다시 보는데, ‘이 정도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연 준비를 위해 스위스 바젤의 한 호텔에서 6개월 정도 살았는데, 공연 개막 석 달 전부터는 연습이 끝나면 호텔방에서 웅크리고 있었죠. 인터넷, 전화도 모두 끊었어요.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는 “연락이 없어도 걱정말라”고 양해를 구했죠. 외로움으로 미쳐가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어요. 오페라는 아리아를 부른 후 다음 곡까지 쉴 틈이 있지만, 이 작품은 웃었다, 울었다, 행복한 회상을 하다가 미쳐가는 행동을 반복해야 해요.”

베를린 고음악아카데미,

유럽 무대에서 차별받을 때도 좌절하지 않은 저는 ‘오뚝이’예요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던 그는 무엇이든 흉내 내기를 잘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는 어린이 탤런트 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졸랐을 정도였다. 피아니스트가 되려 했던 그는 중학교 때 성악으로 진로를 바꿨다. 그때는 무조건, 이유 없이, 간절하게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한다. 그의 말을 듣다보면 ‘참 복이 많은 사람’같이 느껴지지만, 그 역시 유럽 무대에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CD 독집이 나오기로 했는데 동양인이라고 무산된 적도 있고, 오디션까지 통과했는데 연출자가 동양여자라고 얼굴도 안 보고 거절해 출연을 거절당한 적도 있어요. 좌절도 하고, 울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더 오기가 생기고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는 스스로에 대해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사람’이라고 자평했다.

이번에 그가 협연한 ‘아카무스’는 1982년, 동베를린의 젊은 연주자들이 고음악을 되살리기 위해 결성한 연주 단체. 그라모폰상, 그래미상, 황금 디아파종상, 독일 음반비평가상 등을 수상한 실력파 앙상블이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솔로 소프라노 ‘교회 칸타타 BWV51- 만방에서 주님께 기뻐하며 감사하라’를 선보였다. 교회 칸타타는 특히 소프라노의 기교가 돋보이는 노래로 꼽힌다. 극도로 과시적이고 기교적인 패시지와 종교적인 감성을 섬세하게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작품으로 꼽힌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고음악이 생소하지만, 그는 바로크 음악이 낭만주의 음악보다 자유롭다고 이야기한다. 연주자가 악보를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바로크 음악에서 반복구의 장식음 같은 것들은 연주자가 즉흥적으로 채워가야 해요. 예를 들면 ‘도미’를 ‘도파미레미’로 할 수도 있죠. 바로크 음악을 지루하고 어렵고, 엄격하다고 생각하지만 르네 야콥스건, 안드레아 마르코니건 리허설할 때 하는 말이 꼭 ‘제발 재지(Jazzy)! 재즈처럼 생각하라’예요. 그만큼 즉흥적이고 창의적인 면이 강해야 하고, 연주자도 작곡가로서의 재능이 많아야 해요.”

작곡가 볼프강 림과 함께.
보통 음대에서는 17~19세기 오페라 레퍼토리를 공부하는데, 고음악을 가르치는 스위스 스콜라 칸토룸 바질리엔시스에서는 중세, 르네상스 시대 등 바흐 이전의 작품을 공부한다고 한다. 그 시대의 원전 악기와 바로크 댄스까지 배우는 전인교육이라고.

스물세 살 때 독일로 유학을 떠난 그는 지금까지 베를린에서 10여 년을 살았다. 지금도 주 거주지는 베를린이지만, 지난해 그가 베를린에서 머문 날은 44일밖에 되지 않는다. 프랑스나 벨기에, 네덜란드 등 유럽 각 도시와 미국, 아르헨티나까지 연주 여행을 다녔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공연을 마친 그는 곧바로 독일로 돌아가 한스 페터 키부르츠가 작곡한 솔로 소프라노를 위한 전자음악 오페라 <더블 포인트(Double Point)>의 세계 초연 무대에 페넬로페 역으로 선다. 그 후 바흐 칸타타 음반 녹음, 프랑스, 벨기에 연주 투어 등 앞으로의 계획이 빼곡이 차 있다. 그는 화려한 디바보다 어느 공연, 어느 자리에서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감동을 주는 소프라노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바로크는 바로크대로, 현대음악은 현대음악대로 보여드릴 게 정말 많아요”라고 말하는 그. 한국 무대에서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진 : 이창주
촬영협조 : LG아트센터
  • 201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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