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인생 50년 타악기 연주자 류복성

재즈는 나의 심장, 나의 연인

한국 재즈계의 산증인인 타악기 연주자 류복성(69) 씨의 일생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연인을 꼽는다면 그것은 ‘재즈’다. 그는 “내 인생에 재즈가 없었다면 살아 있다는 게 아무 의미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 8군 재즈 드러머로 출발해 이봉조 악단, 길옥윤 악단 등 한국의 대표적인 음악밴드에서 드러머로 활약하던 그는 1967년 색소폰 연주자 정성조 씨와 함께 ‘류복성 재즈 메신저즈’를 창단하면서 재즈 드러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재즈 드럼과 라틴 퍼커션의 일인자로 꼽힌다. 지금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드라마 〈수사반장〉의 타이틀 음악 중 봉고 연주, 영화 〈살인의 추억〉에 등장한 음악이 그의 손을 통해 탄생했다. 재즈 드럼과 라틴 퍼커션뿐 아니라 봉고 등 수많은 타악기를 능통하게 연주하는 그는 직접 작곡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에 재즈를 뿌리내리기 위해 전방위로 활동했다. 1992년 제 1회 대한민국재즈페스티벌의 기획과 연출을 맡는 등 수많은 재즈페스티벌에도 참여해왔다. 언제나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류복성 드럼 & 퍼커션 스쿨’(www.mrbongo.co.kr)을 통해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그가 최근 〈재즈인생 50주년 류복성 재즈콘서트〉라는 CD & DVD를 출시해 화제다.

“50여 년 재즈 한길을 걷다 보니 지금은 조금 알 것도 같아요. 20대는 무언지 모르고 했고, 30대는 그저 고집스럽게 한 거고…. 이번 CD & DVD에는 재즈의 모든 것을 담았어요. 재즈를 하는 후배들에게 주는 재즈의 백과사전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자신의 대표곡을 새롭게 편곡하거나 개사하면서 재즈 인생을 총결산했는데, 50주년 기념공연에는 말로(보컬)와 정광진(트럼펫), 손성제(색소폰), 김정균(콩가), 문정희(살사) 등 재즈계의 후배들이 함께했다. 음악평론가 이해성 씨는 그의 연주를 두고 “심장으로 연주하는 아티스트, 타악기의 거장”이라고 칭송했다. 그의 즉흥연주와 스윙(swing)은 ‘생명’ 그 자체라고 평하는 이들이 많다.

“재즈는 흑인의 영혼이에요. ‘오, 주여 왜 하필이면 흑인으로 태어나 노예로 팔려 나가고, 이렇게 천대받고 살도록 두시나요’라는 기도에서 시작된 음악이잖아요. 흑인은 가족이나 친지가 죽었을 때도 장례 예배를 보면서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들의 독특한 혼이 담겨 있는 재즈는 이제 세계의 음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클래식 음악만 최고인 줄 알아요.”

“내 음악의 전성기는 바로 지금이다.” “내가 좋아하는 재즈 뮤지션을 꼽으라면 나 빼고 전부 다라고 말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보다 타악기를 더 잘 치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자살하고 싶을 것 같다. 그래서 늘 긴장하고 매일매일 연습에 몰두한다.” “요즘은 흑인의 혼이 담긴 음악인 재즈를 연주하기 전에 ‘빅토리 오바마’를 외친다.” “지금도 나는 매력적인 여인과 사랑에 빠지기를 기대한다” 등 그가 쏟아내는 말에서는 열정적이고 거침없는 성격을 읽을 수 있다.


10대 때 라디오 음악방송에서 들은 곡이 재즈 인생 시작하게 해

그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은 재즈와 어떻게 만났을까? 청소년 시절, 라디오 음악방송을 듣던 그는 존 콜트레인, 마일스 데이비스가 연주한 명곡 ‘Straight, No Chaser’을 들으며 전율을 느꼈다. 이 음악이 그의 영혼을 재즈로 이끌었다. 이제까지 듣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음악에 빠져들었던 열일곱 살 소년 류복성. 그 시절에는 재즈를 배우고 싶어도 마땅히 배울 만한 곳이 없었다. 대학에서는 클래식 음악만 가르쳤기에 재즈를 하기 위해 대학을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1958년 미8군 악단에 들어가 재즈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고, 1968년 세계적인 타악기 주자인 아기콜론(미국)에게 사사를 받기도 했다. 재즈를 하는 사람 자체가 드문 시대였으니 재즈의 타악기 연주자는 그가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 때문에 할 일도 많았다. 1960~1970년대에는 TV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뻔질나게 방송국을 드나들었다.

“<이 밤을 즐겁게>라는 프로그램의 차제영 PD가 저를 처음 방송에 발탁해준 사람이에요. 당시 저는 녹음실 세션맨으로 한국 가수들 대부분의 반주와 연주를 맡았어요. 타악기 연주를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이에 비해 방송 출연료는 별로 돈이 되지 않아 거절했는데, PD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한국에도 봉고라는 악기를 알릴 의무가 있지 않느냐’고요. 맞는 말이었어요.”

그가 꼽는 한국의 대표적인 재즈 음악가는 정성조(서울예대 교수, 전 KBS 음악단장), 김수열(테너색소폰), 정광진(트럼펫), 손성제(테너색소폰), 이한진(트롬본) 김광민(피아노) 씨다. 한국을 대표할 만한 재즈 보컬로는 말로(malo)와 웅산을 꼽는다. 그는 재즈 뮤지션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한국 재즈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사운드 엔지니어라는 전문가 그룹이 없다는 것을 든다.

“버클리음대 등에는 사운드 엔지니어과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이 학과가 없어요. 이젠 생겨야지요.”

1991년, 그는 일본의 재즈시장을 돌아보기 위해 반년 가까이 일본에서 체류했다. 일본의 유명한 재즈페스티벌인 후지마운틴재즈페스티벌을 비롯한 축제와 콘서트, 시장, 교육, 심지어 뮤지션들의 라이프스타일, 잡지 등 모든 것을 조사했다.

“일본은 지금 음악의 황금기 같아요. 재즈뿐 아니라 오페라・뮤지컬 등 모든 분야에서 그렇지요. 일본에 가면 각 나라 재즈의 대부들을 다 만날 수 있어요. 음반도 많이 팔리고요. 〈스윙저널〉이나 〈재즈라이프〉 같은 재즈전문 잡지는 전 세계의 재즈 콘서트, 페스티벌의 스케줄이 다 나와 있을 정도로, 일본의 재즈 팬 층은 두텁습니다.”

세계 음악의 흐름은 라틴 리듬이 가미된 재즈와 여러 장르가 혼합된 퓨전 재즈로 가고 있는데, 한국만이 그 흐름에서 뒤처져 있다는 생각을 하면 답답할 정도라고 한다. 요즘도 단 하루 빠짐없이 연습한다는 그. “음악 인생은 끝이 없는 길을 가는 것과 같아요”라고 말한다. 라틴의 열정과 쿨한 재즈의 특성에 한국적인 해학을 가미한 그의 존재는 미래의 재즈 뮤지션들에게 또 하나의 버팀목이 될 것이다.

사진 : 김진구
촬영협조 : 류복성 드럼 & 퍼커션 스쿨 (www.mrbongo.co.kr)
  • 201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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