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으로 불리는 인디 뮤지션 한희정

내 이야기로 노래를 만들고, 영화도 찍었어요

언제부터인지 홍대 앞에서는 대형기획사가 만든 아이돌이 아니라 소규모 공연을 하며 팬들과 가까이에서 만나는 인디 뮤지션들이 더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들은 독특한 감성과 자유로운 스타일로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하면서 팬들과 함께 호흡한다. ‘홍대 인디신(scene)’에서 요조, 타로 등과 함께 3대 여신으로 불리며 인기를 모으고 있는 한희정, 그녀와의 인터뷰.
한희정의 2009년 마지막 공연이었던 크리스마스 콘서트 <같이 쉬자, 숨>에는 수많은 팬들이 (주로 남성)자리를 가득 메웠다. 무대 위 그녀는 ‘여신’이라는 애칭에 걸맞게 흡입력 있는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투명한 듯 애잔함이 배어 있는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는 묘하게 어울렸는데, 어느새 팬들은 그녀의 노래를 조용히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공연할 때가 가장 ‘나 같아서’ 지난 1년 동안 한두 달에 한 번꼴로 무대에 섰다”고 말한다.

“팬들을 바로 앞에 두고, 내 호흡까지 들려주는 작은 공연이 좋아요. 제 방에 친구들을 초대해 ‘나 이거 어제 만든 곡이거든. 들어봐~’ 하는 식이죠. 귀여우면서도 따뜻하잖아요? 그래서 공연이 더 재미있어요.”

싱어송라이터로 1집 <너의 다큐멘트>와 EP(Extended Play:싱글 음반과 정규 음반의 중간에 위치하는 음반)앨범인 <끈>을 차례로 발표하며 차분한 음색만큼이나 서서히 이름 석 자를 알리고 있지만 그녀가 2001년 ‘더더밴드’의 보컬로 데뷔, ‘푸른 새벽’을 거쳐 지금까지 쉼 없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왔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오래전부터 밴드 활동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제가 직접 결성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미 결성되어 있는 밴드를 찾다가 1999년 ‘더더밴드’에 보컬로 합류했고 ‘푸른 새벽’은 2001년 더더밴드와 병행하며 활동을 시작해 2006년 해체할 때까지 함께했어요.”

대학 행정학과를 다니던 그녀는 밴드생활을 시작하면서 한 곳에 몰입하고 싶어 과감히 자퇴했고, 어느덧 음악은 그녀의 전부가 되었다.

“팬들 가운데 직접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꽤 있어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방법을 알려달라 하죠. 그럴 때 전 말해요. 아직 어리니까 초조하게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보고 듣고 읽고, 그저 열심히 살다 보면 하고 싶은 게 생기고, 노래할 수 있다고.”

‘더더밴드’의 경우 1, 2집에서 박혜경이 보컬을 맡아 이미 유명해진 밴드다. 그는 이 밴드의 보컬로 발탁돼 3, 4집 앨범을 냈다.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도 ‘이걸로 생계가 해결될까?’ 번뇌와 고민에 휩싸인 적도 있었다.

“부모님이 자식들을 독립적으로 키우세요. 대학 입학 후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으셨는데, 제가 대학을 그만둔다고 할 때도 ‘네 인생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는 반응이셨죠. 그런데 제가 인디밴드로 활동하면서 어려움을 겪자 ‘이제 다른 일을 해봐야 하지 않겠니?’ 걱정 어린 말씀을 하셨어요. 뭔가 오랫동안 애쓰는데, 드러나는 게 없으니 안쓰러우셨나봐요.”

지금 그녀는 홍대 인디신에서 ‘가장 잘 팔리는 가수’ 중 한 명이다. 공연을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을 갖추고 있고, 팬들의 반응도 뜨겁다는 반증 아닌가. 그녀의 첫인상은 보호본능을 일으킬 만큼 창백하고 가녀리다. 그러나 실제 그녀는 1남2녀의 장녀답게 책임감 강하고 씩씩하다고 한다. 털털하고 솔직한 성격이어서 ‘왈가닥 푼수’ 같은 의외의 모습에 놀라는 사람이 많다.

“‘푸른 새벽’ 시절 멤버였던 정상훈 씨는 ‘네 성격을 표현할 때는 성품이니 이런 말보다 성깔이란 단어를 붙여야 잘 어울린다’고 했어요. 제가 욱하면서도 단순한 면이 있어 뒤끝은 없거든요.”


단편영화 〈춤추는 동물원〉에 여주인공으로 출연

그런 성격이 연하의 남성 팬들을 끌어 모으는 인기 비결이기도 하다. 이제 30대에 들어선 그녀를 보고(나이가 믿기지 않는 동안이지만) 어린 팬들은 ‘이모’라고 부르며 편하게 말을 건넨다. 그녀의 공식 홈페이지 ‘더니붐’ 역시 팬들의 놀이터로 활용되고 있다.

욕심 많은 그녀는 최근 영화배우로도 데뷔했다. 〈춤추는 동물원〉이라는 단편영화에 여주인공 ‘서희정’ 역으로 출연한 것. 상대배역은 밴드 ‘몽구스’의 보컬 몬구가 맡았다.

“연기 욕심 때문에 영화를 찍은 건 아니에요. 우선 음악이 나오는 영화였고, 시나리오에도 참여할 수 있었고, 음악으로 배우들의 감정흐름이 드러나기 때문에 공연 장면이 많이 등장해요. 몬구와 제 노래가 영화에 많이 쓰였어요. 제 노래 ‘멜로디로 남아’와 앞으로 앨범에 수록될 ‘복숭아라도 사갈까’라는 곡도 나오고요.”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춤추는 동물원〉
영화 제목은 한국 100대 음반에도 선정된 바 있는 몽구스의 2집 앨범 제목에서 그대로 따왔다.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다는 감독의 의도 때문에 캐스팅이 끝난 후 남녀 주인공과 공동연출인 감독 두 명이 모여 한 달 동안 서로 살아온 이야기, 연애 이야기를 인터뷰하듯이 진행했고 그것을 토대로 미완이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그래서 영화에는 한희정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녹아 있단다. 실제 자신의 경험이 녹아든 영화이다 보니 힘든 일도 많았다. 자신의 감정에 빠져 우느라 촬영하지 못한 적도 있다고 한다. 영화 촬영 막바지, 한희정의 노래 ‘브로콜리의 위험한 고백’을 모티프로 단편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연기해줄 수 있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바쁜 일정 때문에 고사했는데, 〈지붕 뚫고 하이킥〉으로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연기자 신세경이 그녀 대신 캐스팅됐다고 한다.

“신세경 씨가 가수 트레이닝을 받은 분이라서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잘하나봐요. 자연스럽게 잘 소화했다는 평가가 많더라고요. 제가 캐스팅되지 않은 게 어쩌면 다행이에요.”

최근 몇 년 동안 한희정은 뮤지션으로, 배우로, 음악방송 진행자로 바쁘게 살아왔다. 곡을 쓸 때는 ‘써야지’ 작정하기보다 가만히 있으면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되고 노랫말이 떠올라서 항상 삶 속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유명한 스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다만 제가 만들고 부르는 노래를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줬으면 좋겠어요. 제 노래가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외롭고 지칠 때 가장 큰 위안이 되어주는 음악. 그 음악이 다른 사람의 아픔도 치유하는 도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노래를 만들 때는 ‘이런 노래 누가 좋아하겠어?’ 의구심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도 ‘그 음악이 위로가 되었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냥 내게 위로가 되는 음악을 만드니, 다른 사람에게도 위로가 되더라고요. 제 음악이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행복하고 힘이 나요. ‘내가 허투루 사는 게 아니구나’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스케줄이 없으면 하루 종일 집에서 가벼운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는 그녀.

3년 전 집에서 독립한 후 잘 챙겨 먹지 못한 탓에 자꾸만 살이 빠져 걱정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새 앨범 작업과 공연”이라는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멀리까지 계획하고 싶지는 않단다. 그저 좁은 시야를 넓히기 위해 많이 움직여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기회가 닿으면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음악적 색깔이나 정체성에 대해서도 굳이 규정지으려 하지 않는다. 10여 년 동안 음악을 해왔지만 애초부터 어떤 음악을 하겠다고 정해놓고 시작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희정에게는 음악이 수단이나 목적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고 숨 쉬는,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더 잘 맞고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지금도 끊임없이 찾아 나가는 중이다. 한희정의 팬들도 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함께 성장하고 있다.

사진 : 김진구
사진제공 : 디지털 오아시스
  • 201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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