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28) 장인수, 〈온순한 뿔〉

먼 구름 속 비 냄새를 맡는 영원한 소년

시골집에는
짐승이 뛰놀던 터가 있다
평상(平床)에 누워 있으면
살살 발가락을 핥아대던 짐승
초등학교 때 염소를 쳤다
다섯 마리가 불어서
삼십 마리가 넘은 적이 있다
등교할 때 냇둑에 풀어놓았다
느닷없이 소나기가 퍼부은 날
우루루 학교로 몰려와
긴 복도에서 서성거렸다
비 그치고 내가 앞장을 서니까
염소들이 새까맣게 하교를 했다
염소는 수염이 멋있었다
암컷도 살짝 수염이 나 있었다
사실 염소는 새까맣고
주둥이는 툭 튀어나왔고
울음은 경운기처럼 털털거리고
아무거나 먹어치우고
두엄에도 잘 올라가는 천방지축이었다
얼룩을 좋아하고
뿔도 삐뚤어졌고
농작물도 닥치는 대로 뜯어먹고
신발 끝도 씹어 먹으며
나쁜 짓을 골라서 하는 골목 대장이었다
하지만 먼 곳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높은 바위를 잘 타며
구름 속 비 냄새를 맡을 줄도 알고
꽃도 열심히 따 먹고
가시 달린 찔레순도 찔리지 않고 잘 씹어 먹었다
무엇보다도 눈썹이 길어
눈가에 하늘거리는 멋진 그늘을 가졌고
뿔은 온순한 고집이었다
염소도 식구였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온순한 뿔〉은 동화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시다. 소나기가 오니까 당황한 염소들은 제 동무이자 주인인 소년이 있는 학교로 몰려와 긴 복도에서 서성거린다. 소년은 하교 때 이 검은 염소들을 몰고 돌아온다. 새까만 염소들을 몰고 하교하는 소년 장인수를 떠올리며 순간 나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초등학생 장인수는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이 그렇듯 흑염소를 키운 경험을 갖고 있다. 그의 시에서 흑염소의 生態(생태)가 발랄하게 그려진 것은 그 때문이다.

“흑염소를 몰고 냇길을 돌아 등교했으며 흑염소와 함께 하교를 했다. 흑염소와 매일 뿔싸움을 했다. 눈을 부라리고 팽팽하게 사력을 다하며 콧숨을 퍽퍽 내쉬는 뿔 맛이 기가 막혔다. 흑염소의 작은 뿔이 내 허벅지를 찔렀을 때 내 혈관에서 날카로운 울음이 터졌다. 흑염소는 멀리 도망가서 안쓰럽게 나를 바라보았다. 착한 짐승이었다.”

이 흑염소들은 천방지축이고, “뿔도 삐뚤어졌고”, “나쁜 짓을 골라서 하는 골목대장”들이다. 이 흑염소의 성정은 들에서 건강하게 잘 자란 시골 소년들하고 다를 바가 없다. 흑염소들이 보여주는 행각들이 곧 소년 장인수의 행각들이다.

흑염소들이 늘 철부지인 것만은 아니다. “먼 곳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높은 바위를 잘 타며”, “구름 속 비 냄새를 맡을 줄도” 안다. 들의 권태, 강물의 고독, 논둑과 밭둑의 슬픔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제 피의 일부로 용해시킨 자들은 타인의 자아에서 나오는 소리를 경청한다. 타인의 자아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진실한 독서”라고 말한 철학자는 니체다. 자연에 방임되어 무한자유를 누린 아이들은 영혼에 심연을 품는다. 어린 영혼이라는 입구로 자연은 쏟아져 들어오고, 그 자연이 소년의 척추가 되고 늑골이 되고 허파가 되는 것이다. 높은 바위를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는 기예와 구름 속의 비 냄새를 맡는 지혜를 취득한 것은 자연에 사는 것에 대한 보상이다. 그 기특한 기예와 지혜는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서 그 영혼이 국화빵처럼 만들어지는 아파트 키드들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다. 그들은 높은 바위를 탈 줄 모르고 구름 속 비 냄새도 도무지 맡을 줄 모른다.

흑염소는 긴 눈썹을 가졌다. 그 긴 눈썹 때문에 눈가에 “하늘거리는 멋진 그늘”이 드리워진다. 이 흑염소들은 도무지 仁義禮智(인의예지)라고는 모른다. 온몸으로 인이고, 의고, 예고, 지이니 따로 그걸 배우고 익힐 까닭이 없다. 흑염소들이 온몸에 두른 검정 색깔은 흑암과 같은 無知(무지)의 표상이고, 이 무지는 곧 순수의 결정체다! 사악한 부나 권력 따위와는 무관한 천진한 현자 흑염소들! 들은 叢林(총림)이고, 흑염소들은 그 총림의 학인들이니 어찌 여기서 뛰놀면 현자가 되지 않겠는가! 이는 무엇보다도 흑염소들이 나쁜 교육의 폐해를 입지 않은 탓이다. 산과 들은 이익과 배타적 권력을 구하기보다는 단순한 정신을 배양하기에 좋은, 전통이 유구한 명문교들이다. 흑염소들은 그 명문 학교에서 야성과 천진에 대한 공부를 철저하게 했으니 제 출신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위선이나 자기기만 따위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 초식동물 이마에 돋은 뿔은 살상병기가 아니다. 그 뿔은 평화와 위엄, 그리고 하고자 함이라는 신성한 가치의 상징이다. 장인수의 이마에도 “온순한 뿔”이 돋아 있다. 뿔이 있으니 들이받는 것은 그의 피 속에 내장된 차가운 본성이다. 흑염소들의 기막힌 뿔 맛을 아는 드문 시인인 그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깃든 그 장난기, 그 천방지축의 기예, 그 천진한 지혜는 들판 학교 동문인 검은 염소들에게서 배운 게 분명하다.

시인은 세상의 요철과 부침을 핥고, 비밀스러운 것들과 스스로 충만한 것들을 핥는 혀를 가졌다. 하늘과 대지 사이에는 봄마다 흙의 각질을 뚫고 튀어나오는 혀가 있다(〈봄에는 구멍이 많아진다〉). 이 혀는 사방팔방에서 기어 나온다. 마당 가장자리를 핥는 “노을의 붉은 혀”(〈어느 짐승의 시간〉)가 있고, 달의 혀는 “지구의 고독한 골목을 핥으며”(〈후미〉), “저녁 천수만의 혓바닥은 신열로 들끓”(〈오리떼의 비상〉)고, “아스팔트의 혀는 타이어를 정신없이 핥”(〈혀〉)고, 망당대해에는 망망대‘혀’가 해안선을 끊임없이 핥으며 열람한다(〈망망대혀〉). 이 혀는 세계를 맛보려는 천진한 야성의 혀다. 말하는 혀, 울부짖는 혀, 칼이 되어 세상을 베는 혀, 애정행각에 여념 없는 혀들! 우리는 어찌 저마다 혀가 아니랴. 혀는 수십 마리 나비 떼로 펄럭이고, 날벌레로 춤추며, 벌떼로 공중 선회를 하고, 꽃잎으로 흩날린다(〈수화〉). 이 혀는 대지를 핥아 열람하는 눈이며, 욕망으로 세계를 더듬는 손이고, 온갖 사물을 핥으며 상상하는 뇌다. 시인의 혀는 불순한 세상과 대거리하며 들이받는 초식동물의 “온순한 뿔”이다(〈온순한 뿔〉). 시인은 그 뿔로 세상을 천방지축으로 들이받다가 지치면 “울음 곳간” 한 채를 짓는다. 어느덧 대교약졸(大巧若拙, 재주를 가졌으되 자랑하지 않아 도리어 서툰 것처럼 보임)이 뭔가를 눈치 채 버린 이 불혹의 젊은 시인에게 어느 날 술 한잔 사 주고 싶다.

사진 : 김선아


장인수(1968 ~)는 충청북도 진천 출신이다.

농부의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3년 내내 자전거를 타고 30여 리 길을 통학하며 시골 중학교를 마쳤다.

어린 시절부터 군내 백일장에 나가 곧잘 상을 받아 오곤 하던 소년이었다. 청주의 세광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들어갔는데, 당시 분위기에 휩쓸려 시위대에 끼어 혜화동, 동대문, 종로, 명동, 신촌 일대를 구호를 외치며 돌아다녔다. 이 시위 경력으로 군에 입대한 뒤 기무사의 집요한 뒷조사를 다섯 번이나 받고, 대민봉사활동에도 제외되곤 했다. 대학 다닐 때 강원도로 무전여행을 떠나 6박 7일간 노숙을 하며 걸었던 시인은 제대하고 복학한 뒤에 중앙도서관에 있는 시집들을 몽땅 읽어 치웠다. 그리고 시를 써서 신춘문예 다섯 곳에 투고했는데 모두 떨어졌다. 古文(고문)에 빠져 전통문화연구회에 나가 《논어》 《맹자》 《중용》 《대학》 《고문진보》 등을 열일곱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익혔다. 대학을 마친 뒤 충청남도 당진에 있는 호서고등학교에 발령을 받아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2003년도 시 전문지 《시인세계》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 등단작들이 인상적이어서 내 마음에 시인의 이름을 새겼다. 장인수 시인의 상상력을 추동하는 두 축은 “충북 진천 초령 자갈밭”에 누워 “겹겹 無量(무량)한 암흑을 뚫어져라 바라”(<암흑>)보며 키운 야성과 천진이다.

그의 시에는 꾸밈이 없다. 그의 상상력은 빗방울과 바람과 우주 사이를 매임 없이 경쾌하게 폴짝(!) 뛰고, 건강한 관능과 생식을 향해 천방지축으로 달린다. 그게 그의 시가 가진 매력이다.
글쓴이 장석주님은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같은 해 동아일보에 문학평론이 입선되어 시인과 문학평론가의 길을 함께 걸어온 사람이다. 그동안 《물은 천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붉디 붉은 호랑이》, 《절벽》 등의 시집을 내고, 《20세기 한국문학의 모험》(전 5권) 등 50여 권의 책을 냈다. 지금은 국악방송에서 생방송 <장석주의 문화사랑방>을 진행하고 있다.
  • 200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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