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무용단 초청해 서울세계무용축제 여는 이종호 예술감독

무용이 어렵다고요?

세계적인 안무가 마우로 비곤제티, 이스라엘 현대무용의 차세대 스타 바라크 마샬, 이탈리아 아테르발레토 무용단 등 매년 가을, 유럽과 미국의 수준 높은 작품들을 선보이는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www.sidance.org 이하 ‘시댄스’)가 벌써 12년째로 접어들었다. 올해는 ‘춤 보러 갑시다, 춤 추러 갑시다, 춤과 함께 놀아 봅시다’라는 슬로건으로 전 세계 15개국에서 초청된 33편(해외 11편, 국내 17편, 합작 5편)의 작품을 10월 5일부터 24일까지 예술의전당, 아람누리, 서강대 메리홀 등에서 만날 수 있다.
매년 무용팬을 설레게 하는 시댄스가 12년 전 한 무용평론가의 열정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 주인공은 한국 무용계 최초로 올해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문화예술공로 슈발리에장(Chevalier dans l’Ordre National des Arts et Lettres)을 수상한 이종호 예술감독이다.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공헌한 이들에게 돌아가는 상으로, 수상자에게는 기사 작위를 수여한다. 그는 특별한 의미는 아니라고 겸손해하지만, 그가 무용에 있어서 동서 교류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80년대 초부터 무용평론가로 활동한 그는 1996년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 창설을 주도한 인물로, 현재 시댄스예술감독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공동회장, 한국춤평론가협회장, 연합뉴스 문화부 부국장 대우 전문기자로 활동했다.

“‘춤 보러 갑시다’라는 의미가 곧 시댄스의 취향이랄까 지향점을 말해 줍니다. 다른 무용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전문가와 일반인을 고루 아우른다는 데 있어요. 근본적으로 시댄스는 보는 사람 입장에서 출발했기 때문이에요.”

무용은 어렵다는 편견에 가로막힐 때마다 그에게는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 난을 피해 잠시 시골 농가에 머문 적이 있는 두보가 그곳 할머니에게 시를 한 수 지어 주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할머니를 위해 시를 낭송했는데, 듣고 있던 할머니가 눈물을 흘렸대요. 저는 이 실화가 상징적이라 생각해요. 무용을 어렵다고 하지만, 정말 좋은 작품을 보면 그냥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무용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고전 발레에서 현대 무용으로 영역을 넓혀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는 관객의 입장을 배려하면서도 춤추는 사람들, 특히 신진, 중진 작가의 외국 진출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 왔다. 단순한 초청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과 외국의 합작공연을 새롭게 시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합작은 전략적인 측면이 있어요. 우리 무용계의 해외 진출과 교류를 촉진하기 위한 거지요.”

올해는 한국과 벨기에가 공동작품으로 <잼-무용. 힙합. 재즈>(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를 선보인다. 벨기에 안무가 파투 트라우네와 베이스 주자 악셀 질랭, 한국 안무가 이광석, 임미정 재즈밴드가 호흡을 맞춘다. 관객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무대 밖 자유무대도 도시 곳곳에서 열린다. 시댄스는 세계에 한국 무용가를 알린다는 의미도 크다.

“세계 중심 무대에서 떨어져 있는 무용가는 대부분 소외감을 느낄 것입니다. 세계 무용계에서 발레가 중심이 되다 보니 서양 문화의 원류라 할 수 있는 그리스조차 자신들을 ‘제3세계’라고 생각해요. 나라끼리 합작하면 예술가뿐 아니라 스태프도 많이 배우게 됩니다. 이것은 시댄스의 굉장한 자산입니다.”



유럽 도시들의 축제 보며 무용 축제 구상

그가 이 축제를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연합뉴스 기자 시절, 벨기에 브뤼셀 특파원으로 있을 때였다. 유럽 도시들에서 크고 작게 열리는 예술축제를 보고 ‘우리도 이런 축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을 키웠고, 귀국한 후에는 사재를 털어 시댄스를 출범했다. 무용평론가로 살아오다 보니 왠지 빚(?)을 진 느낌도 있고, 지금 무용계에 필요한 것은 국내-국제 무대를 아우르는 현장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해마다 좋은 안무가와 무용가를 국내에 소개하는 일에는 고통과 희생이 따랐다. 수잔네 링케, 마렝 무용단, 모리스 베자르 무용단, 앙줄렝 프렐조카주 발레단, 램덤 무용단, 다니엘 라리 무용단, 무용계의 거장 피나 바우쉬, 현대무용가 테로 사리넨, 쿠바 무용단 등 현대무용의 별들이 시댄스를 빛내 주었다. 1998년 첫 무대부터 세계 무용의 정상들을 불러올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열정은 12년 전 처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고 한다.

“하하… 이제 더 이상 털 사재도 없고요. 제 주변에 있다는 이유로 고생한 사람들도 많아요.”

지금 시댄스는 개인이나 단체의 것이 아니라 서울, 나아가 한국의 ‘공동자산’이라는 인식이 요구되는 때이기도 하다. 그는 시댄스와는 좀 다른 형태의 춤 축제를 3~4개 더 만들고 싶다고 한다. 시댄스에서 올해 국외 진출 작품으로 야심차게 준비한 작품은 진옥섭 씨 연출의 <왕의 춤>이다. 처용무의 달인이었던 조선 연산군을 소재로 살풀이춤, 채상소고춤 등 한국 전통무용을 볼 수 있다.

“리버댄스, 아이리시 댄스, 스피릿 댄스는 아일랜드식 탭댄스에 중세설화를 스토리로 춤과 음악만 보여주는 거예요. 솔로도 군무도 했다 하면서요. 1990년에 유럽 송 콘테스트 방송의 PD가 아이디어를 내서 만든 것인데, 전 세계 순회공연을 다녀요. 전 이 작품을 보고 정말 가슴을 쳤어요. 한국음악과 무용이 가진 가능성은 훨씬 무궁무진한데 싶었죠. 아일랜드에 비할 바가 아니에요. 우리는 왜 못 하겠습니까?”


그에게는 개인적인 소박한 꿈이 있다. 직접 쓰고 기획해 어릴 때부터의 꿈인 오페라를 만드는 일이다. 시와 음악, 그림과 오페라, 연극을 좋아하던 감수성 짙은 소년은 지금도 여전히 노래와 같은 시, 음악이 담긴 연극, 오페라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담고 있다. 어렵사리 축제를 만들고 함께 춤을 보러 가자고 권유하는 이 감독의 감수성은 어쩌면 소년, 청년, 그리고 지금까지 변함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 : 김진구
촬영협조 : 환기미술관



▣ 이종호 예술감독 추천작품

하버드 대학에서 사회이론과 철학을 전공한 안무가 바락 마샬(이스라엘)의 <몽거(Monger)>. 바락 마샬은 1998년 파리 비뇰레 안무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바체바 무용단의 상임안무가로 초청받았으며 최근 세계적인 안무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외에 △슬로베니아 국립 마리보르 발레단의 <라디오와 줄리엣> △이탈리아 아르테미스 무용단의 <이상한 사람들-페데리코 펠리니를 위하여> △이탈리아 국립 아테르발레토 무용단 <로미오와 줄리엣> △우리나라 전통 춤꾼들이 총출동하는 <왕의 춤> 등을 ‘꼭 보면 좋을 작품’으로 추천했다.
  • 200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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