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27) 나희덕, 〈물소리를 듣다〉

등을 돌린 부부에게 들리는 아이 오줌 소리

나희덕 시집, 《야생사과》, 창비, 2009
우리가 싸운 것도 모르고
큰애가 자다 일어나 눈 비비며 화장실 간다
뒤척이던 그가
돌아누운 등을 향해 말한다

당신...... 자? ......
저 소리 좀 들어봐...... 녀석 오줌 누는 소리 좀
들어봐....... 기운차고....... 오래 누고.........
저렇도록 당신이 키웠잖어....... 당신이........

등과 등 사이를 흘러가는 물소리를
이렇게 듣기도 한다

담이 결린 것처럼
왼쪽 어깨가 오른쪽 어깨를 낯설어할 때
어둠이 좀처럼 지나가주지 않을 때
새벽녘 아이 오줌 누는 소리에라도 기대어
보이지 않는 강을 건너야 할 때



〈물소리를 듣다〉는 애틋한 시다. 한밤중에 부부는 무슨 일 때문인지 싸우고 서로 등을 돌린 채 누워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다. 그때 잠에서 깬 큰애가 일어나 오줌을 누는데, 한밤중의 고요 속에서 오줌 누는 소리는 또렷하다. 한쪽이 돌아누운 다른 한쪽의 등에 대고 그 오줌 누는 소리를 들어 보라고 청유한다. “저 소리 좀 들어봐...... 녀석 오줌 누는 소리 좀 / 들어봐....... 기운차고....... 오래 누고......... / 저렇도록 당신이 키웠잖어.......” 이 목소리에는 출산과 육아에 따르는 수고를 고스란히 감당하며 種(종)을 잇는 그 숭고한 본분의 역사에 대한 짙은 연민이 묻어 있다. 이 연민의 한꺼풀 아래에는 아이에게 바친 모든 수고에 대한, 두 사람이 견뎌 낸 피로들에 대한 자긍심이 숨어 있다.

두 사람은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자라고, 사는 데 지친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도로 건조해진다. 두 사람의 관계는 둘이 겪은 실패와 좌절들로 느슨해진다. 사랑이 식은 것은 두 사람의 탓이라기보다는 시간 탓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앗아 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고는 길어지고 피로는 쌓여 간다. 수고는 현재의 고갈이고, 피로는 미래의 고갈이다. 수고가 갉아먹은 존재의 가능성은 눈에 띄게 줄고, 피로로 인해 미래의 불확실성은 확실하게 증가한다. 관계의 건조함이 사막처럼 넓어지고 견딤만이 미덕이 될 때 말없는 견딤 속에서 서로를 향한 무관심과 분노는 무럭무럭 자라난다. 두 사람의 일상에서 관계의 遺棄(유기)와 게으름은 상습화되고 그로 말미암아 삶은 승화되지 않는 원망과 분노들이라는 지뢰가 널린 위험지대가 되어 버린다. 부부가 싸운 그 한밤중은 그 지뢰 중의 하나가 터진 날이다.

그토록 널린 위험 속에서도 두 사람이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아이 때문이다. 아이는 생물학적으로 척추동물문, 포유류, 영장목, 인류에 속한다. 아이는 두 사람의 이타적 수고와 노동으로 빚어 낸 水晶(수정)의 존재다. 임신과 출산, 육아는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고통과 고행이다. 아버지에게 아이는 제 분신, 즉 밖에 있는 또 다른 자아다. 아이에게 젖을 빨리고 안아 주고 재워 주는 어머니는 실은 아이로 변신한 제 연인을 돌본 것이다. “저렇도록 당신이 키웠잖어”라는 말은 등을 돌리고 누운 아내에게 그 자손의 양육자이자 보호자가 바치는 희생과 노고에 대한 찬사다.

〈물소리를 듣다〉는 어느 새벽녘 아이의 오줌 누는 소리에 기대어 제 앞에 놓인 막막한 위기를 견뎌 낸 일을 담담하게 적는다. 불화로 싸우고 돌아누운 부부의 등과 등 사이는 막막하다. 그 막막함의 골짜기 강이 흘러간다. 마음과 마음의 단절과 괴리의 골로 흘러가는 이 강은 보이지 않는다. “왼쪽 어깨가 오른쪽 어깨를 낯설어할 때 / 어둠이 좀처럼 지나가 주지 않을 때”는 서로에 대한 열망이 식어 버린 관계, 기대의 거듭되는 좌절들, 보람이 없는 되풀이, 더 짙어지는 불행의 예감들을 암시한다. 이것들이 우리가 건너야 할 강이다. 문득 듣는 “새벽녘 아이 오줌 누는 소리”는 그 재난의 강을 무사히 건네주는 나룻배다. 우리 앞에는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재난의 강들이 있는 것일까. 새벽녘 아이의 오줌 누는 소리에 기대어 하나의 위기, 하나의 고비를 넘어가는 부부도 있다.


나희덕(1966~) 은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났다. 그이가 태어난 곳은 먼 친척이 운영하던 보육원인데, 어머니가 그 보육원의 총무를 맡고 있었다. 그이의 아버지는 필경사였다. “글을 쓰고 싶어 하셨지만 / 글자만을 한 자 한 자 철필로 새겨 넣던 아버지”(〈누에의 방〉). 함석헌을 흠모하고 따르던 그이의 아버지는 무교회주의와 순수한 신앙공동체를 꿈꾸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런 아버지를 보고 배우며 자란 그이는 만년필로 생명의 “어리석고도 은밀한 기쁨”을 꾹꾹 눌러 쓰는 시인이 되었다. 그이는 연세대 국문과를 나와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광주의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첫인상이 맑고 단정하듯 그이의 시는 단정하다. 그 단정함을 어떤 이는 모범생의 반듯함과 순응의 징표로만 읽는다. 그래서 그이는 아무 걱정 없이 곱게만 자란 사람 같아 보인다. 그 외면의 단정함이 그이가 겪었을 궁핍이나 외로움이나 아픔을 다 가려 주는 바가 없지 않으나, 내면의 격정과 아픔을 보지 못한다면 그이를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이는 무릇 생명을 가진 것들을 오롯하게 품는 모성을 가졌으면서도 아울러 세상의 의롭지 못함에 맞설 때 누구보다도 꿋꿋한 사람이다. 부드러우면서도 꿋꿋한 시인이 바로 나희덕이다.

《야생사과》(창비, 2009)는 나희덕의 시세계에서 하나의 분기점이 될 만한 시집이다. 그이는 낯익은 정주의 집을 떠나 “야생”으로 첫발을 내디딘다. “나는 개미들을 훑어내고 한입 베어 물었다 / 달고 시고 쓰디쓴 야생사과를”(<야생사과>). 그이가 깨물어 먹은, 이 달고 시고 쓰디쓴 야생사과는 무엇일까? “야생”은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저 바깥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도덕이나 윤리의 규제에서 벗어난 우연과 본능들이 소용돌이치는 곳이다. 그 미지의 곳으로 나희덕은 한 발을 들이밀었다. 야생의 저편에는 집이 있는데, 그 집은 자아를 감싸던 거푸집이자, 자아 그 자체다. 그이는 말한다. 이제는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당신에게도 들리나요? / 둑을 넘는 물소리, 핏속을 흐르는 노랫소리, / 나는 이제 어디로든 갈 수 있어요”(〈분홍신을 신고〉). 집을 떠나 야생으로 간다는 것은 나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이는 오랫동안 “아, 나를 벗어날 수 있다면!” 하고 열망했다. 나를 벗어나는 것은 내 속에 갇혀 있는 나를 꺼내는 일이다. “벗어나도 벗어나도 내 속에 갇혀 있는 / 나를 건져내고 싶어!” (〈존 말코비치 되기〉) 둑 안에 갇혀 흐르던 물은 범람하여 둑을 넘고, 핏속을 흐르던 노랫소리는 “나”라는 둑을 넘어 저 먼 곳으로 흘러간다.
글쓴이 장석주님은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같은 해 동아일보에 문학평론이 입선되어 시인과 문학평론가의 길을 함께 걸어온 사람이다. 그동안 《물은 천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붉디 붉은 호랑이》, 《절벽》 등의 시집을 내고, 《20세기 한국문학의 모험》(전 5권) 등 50여 권의 책을 냈다. 지금은 국악방송에서 생방송 <장석주의 문화사랑방>을 진행하고 있다.
  • 200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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