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글래스 아티스트 홍성환

보일듯 말듯한 투명유리는 아련한 과거의 기억을 연상하게 한다

글래스 아트는 ‘모래와 재로 만들어진 보석’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어디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무한한 상상력을 뿜어내는 유리.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글래스 아티스트 홍성환(43) 씨를 남양주 유리스튜디오(www.designoon.com)에서 만났다.

그는 글래스 아트로 유명한 체코(프라하 국립응용미술대학-Glass in Architecture학과)와 핀란드에서 유리조형과 디자인을 공부한 후 아티스트로 활동하다 3년 전 한국에 돌아왔다. 핀란드의 예술대학인 UIAH(University of Art and Deisgn Helsinki)에서 만난 핀란드인 아내 안나리사 씨와 사가, 사라 두 딸과 함께 남양주 끝자락인 수동면에 살고 있다. 글래스 아트는 국내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분야다. 유리공예와 무엇이 다른지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유리를 한다고 하면 유리공예라고 인식해 버려요. 한국어로는 적절하게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없는 것 같아요. 테이블 웨어 작업은 유리공예가 맞고, 조형적인 작업,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은 글래스 아티스트(유리예술가)라고 불러야 합니다. 유리 디자이너는 또 다른 분야고요.”

그는 프라하와 헬싱키의 예술대학인 UIAH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영국과 프랑스, 체코와 핀란드, 미국 등지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해 왔다. 영국에서 전시했던 ‘Bara’ 시리즈는 권위 있는 유리 매거진 <뉴 글래스(New Glass)>에서 주목하기도 했다.

BARA
“Bara 시리즈는 2000년 헬싱키에 있을 때 제가 고안한 블로잉 파이프로 제작한 화병이에요. 2005년 런던 개인전 이후로는 더블버블(DOUBLE BUBBLE)이라는 명칭으로 많이 알려져 있어요.”

Helme
2005년 에스토니아의 합살루 국제 유리 심포지엄에서 보여준 해프닝적 요소와 익살을 담은 작업이었는데, 당시 한여름에 유난히 테이블에 자주 올라오던 수박이 눈에 들어왔고 이를 소재로 작업을 전개하게 되었다.
그는 이 작품으로 같은 해 핀란드 ‘엘코텍 이노베이션 디자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현재 헬싱키 문화관광 안내책자에는 핀란드 작가를 제치고 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여러 나라 갤러리에서 판매되고 있다. 스튜디오에 있는 용해로와 독창적인 블로잉 파이프 등은 모두 그가 수작업으로 만든 것들이다. 특히 블로잉 파이프 헤드 바람구멍의 수는 2개, 3개, 5개, 9개로 만들어져 있다. 각각의 구멍에 서로 다른 색유리를 조합하고 서로 다른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공기 압력장치를 파이프 내부에 설치했다. 이런 형태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형태라고 한다. 체코에서는 주로 설치작업을 많이 했다. 그가 유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프라하 성에서 전시했던 300여 개의 모서리를 다듬지 않은 예리한 투명유리를 통한 설치작업 ‘컬러리즘’에서 잘 드러난다. 작가노트에서 그는 작품의 의도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보일 듯 말 듯한 투명 유리는 아련한 과거의 기억을 연상하게 한다. 그 표면에 반사된 자신의 현재 모습, 공동묘지를 연상케 하는 초록색 잔디는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궁극적인 미래를 보여준다. 투명한 유리 비석들 사이에서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궁전정원에서 말이다. 이 설치작업은 인종 차별주의의 무상함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얼굴, 피부색에 대한 편견의 종착역이 결국 어디인지, 인간이 가진 무모한 선입견의 허망함을 드러내려 했다.”

“체코에 체류하면서 암암리에 받았던 인종 편견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프라하 성은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이 모여드는 곳이라 이런 설치작업에 더없는 장소라고 여겼습니다.”

COLOURISM
2300여 개의 모서리를 다듬지 않은 예리한 투명 유리는 그 규모와 수량에 비해 실제로 한낮에는 보일 듯 말 듯 정원 내부에 감추어진 것 같다. 그러나 정원 주변을 무심코 맴돌다 보면 일정한 각도에서는 스스로의 모습이 허공에 반사되어 거울같이 비치고, 또 무심코 먼거리로 초점을 맞추다 보면 정원 반대편에서도 유사한 발견을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투명한 유리 기둥은 반사된 사람의 얼굴과 피부색에 전혀 물들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조금 휘는 유리 기둥이라 한다. 유리는 딱딱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고, 자신의 얼굴을 보다가 타인의 얼굴을 발견하기를 바랐단다. 실제 체코에서 심하게 인종 차별당한 경험이 그의 작품 안에 녹아들었다. 1997년 헝가리에서 최초로 개최된 국제유리 심포지엄에서 만난 에스토니아의 두 유리작가와 함께 2003년에는 에스토니아 정부 최초로 합살루에서 국제유리 심포지엄을 발족해 코디네이터로 활동했다. 지금도 매해 행사에 참여한다.

chandelier
국제유리 심포지엄 폐회식에서 느닷없이 관객에게 보여줄 글래스 쇼를 요청받았다. 합살루 지역 고물상에서 우연히 구입한 자전거 바퀴를 이용해 용해로에서 용융된 유리를 파이프로 말아 내어 가느다란 바퀴 살 사이로 흘려 넣었다. 이때 어시스트가 실제 바퀴의 회전성을 연상시키기 위해 내열장갑을 손에 낀 채 바퀴를 돌린다. 뜨거운 유리는 자전거 살에 매달린 채 바닥으로 점점 흘러내리다 중간에서 식은 채 굳어 있다.
“심포지엄 때는 즉석에서 행위예술을 해요. 어떤 이들은 파이프로 춤을 추기도 하는데 저는 유리 자체의 성질을 보여주는 게 좋아요. 한번은 ‘샹들리에’라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고물상에서 산 자전거 바퀴에 유리액을 흘리는 겁니다. 전 어느 나라든 새로운 지역에 가면 구멍가게나 고물상, 술집에 꼭 가요(웃음).”

PANNONIA
2000년 프라하에서 개인전을 위해 제작했고 대다수 작품을 포함하여 위의 두 작품은 헝가리 TOKOD 유리공장의 협찬을 얻어 제작했다. ‘Pannonia’라는 제목은 당시 부다페스트의 숙소로 사용된 길 이름이다.

핀란드인 아내, 두 딸과 남양 주 자연 속에서 생활

그는 홍대에서 도예와 공예디자인을 전공했다.

“학부생 때 도자기 굽는 가마에 소주병이나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유리를 넣어 봤어요. 자연스레 유리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체코로 유학을 떠났죠.”

체코와 핀란드에서 그가 배운 것은 문화적 자긍심이다.

“체코인은 문화적 자긍심이 굉장히 높아요. 경제적 여유가 많지 않아도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자세가 참 부럽더군요.”

자신의 작품 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싶었던 그는 다시 핀란드로 떠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핀란드인을 아내로 맞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아내는 ‘도자기로 만든 인형’이라고 불릴 정도로 눈에 띄는 미인. 도예와 유리를 전공하던 아내는 학교에서 그를 본 순간 “아! 내 남자다”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핀란드에 건너간 후에도 갖가지 행사와 전시 때문에 영국・체코・에스토니아・헝가리 등지를 돌아다니며 몇 달씩 있다 훌쩍 돌아오는 그를 볼 때마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그 역시 아내가 읽어 주는 북유럽 동화를 들을 때마다 ‘나는 전생에 북유럽인이 아니었을까?’ 생각될 만큼 매료되었다.

부부는 한국에 온 후 도시가 아닌 자연에 터를 잡았다. 멀리서 보면 큰 트렁크처럼 보이는 집은 남편이 설계하고, 아내가 인테리어를 담당해 함께 만들었다. 두 딸의 옷과 모자는 아내가 바느질하고 뜨개질한 것들이다. 부부는 두 딸을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한다. “세계 각국에서 제 작품이 전시되고 판매됩니다. 작업실을 어디에 두든 상관없지요. 아프리카라도 좋아요. 제 고향인 한국에서 작업하고 있으니 또 다른 느낌의 작품이 나올 것 같습니다.”

한국의 자연에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면서 그가 이번에는 어떤 변모된 작품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사진 : 김진구
  • 200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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