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다이어트의 여왕》의 작가 백영옥

우리 시대 여성의 욕망을 들춰내다

체 게바라의 혁명 정신도 스타벅스의 카페 라테처럼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시대에 혁명이란 몸 사이즈가 66에서 44로 줄어들거나, 키가 160에서 170으로 늘어나는 일뿐이다.
젓가락 같은 스키니진을 입고, 미끈한 다리를 자랑하며 ‘마놀로 블라닉’ 같은 구두를 멋지게 소화하는 것 말이다.
《스타일》 중에서

사람들은 쉽게 성형외과로 달려가는 여자를 비난한다.
그러나 100킬로그램의 거구 여자에겐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4000cc의 지방을 빼 주겠다는 의사의 말이 영혼을 울린다.
혁신적인 구호를 쏟아내는 페미니스트들보다 더 큰 위안을 준다.
그리고 이 미친 시대에, 도대체 그것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다이어트의 여왕》 중에서
“홍대 앞 A카페 O시 괜찮으세요?”

“부득이하게 그날은 안 되겠네요. 죄송하지만 O일 O시 이태원 B카페 가능하세요?”

드라마 <스타일>의 원작자인 백영옥 작가는 본인의 스타일에 맞는 인터뷰 장소와 시간을 콕콕 집었다.

둘 다 일대에서 소위 ‘핫 플레이스’로 부상되는 카페들이었다. 패션지 에디터 출신 작가, 조선일보에 3년간 ‘트렌드 샷’을 연재한 작가다웠다.

SBS 드라마 <스타일>이 화제다. 첫 회 시청률 17.6%를 기록, 4회 만에 20%를 넘었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다. ‘에지 있게’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마니아층을 이끌고 있는 이 드라마의 원작이자 제4회 세계일보 문학상 수상작인 《스타일》은 출간된 지 1년 4개월 만에 14만 부가 팔렸다. 그가 최근 출간한 장편소설 《다이어트의 여왕》도 인기다. 《스타일》이 여성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면, 《다이어트의 여왕》은 한층 더 깊이 들어가 욕망의 원천을 파헤치면서 시대의 담론을 이끌어 낸다. 백 작가 특유의 통통 튀는 발랄한 문체는 캐릭터의 생동감을 더했고, 구성이 한층 안정적이다. 이 작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다이어트의 여왕》을 읽고 나서다. 인터뷰는 드라마 <스타일>로 시작했다.

“1회 보고 안 봤어요. 제 원작과는 전혀 상관없더라고요. 캐릭터조차 같지 않아요. 이름만 비슷하고. 원작이 가진 틀도 무너뜨렸죠. 드라마 <스타일>의 극본을 써 달라는 제안을 받았는데,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못 했어요. 두 가지 문제가 있었죠. 하나는 편성 일자가 잡히면 밤새우며 숨 가쁘게 돌아가는 시스템 문제, 둘째는 원작자가 자기 소설을 드라마화할 때의 고민이에요. 소설에서는 완벽하게 작동하는 캐릭터를 드라마에서는 다 죽여야 하거든요.”

드라마 <스타일>과 소설 《스타일》은 주인공의 역할부터 다르다. 주인공 이서정은 드라마에서는 패션팀 신입 에디터로 등장하지만, 소설에서는 피처팀 8년차 에디터다. 백 작가 본인이 패션지 〈하퍼스 바자〉에서 피처팀 에디터로 일한 경험을 살려 쓴 것. 피처팀은 패션과 뷰티 분야를 제외하고 영화, 공연, 건강, 음식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기 때문에 스토리 라인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의 고군분투기를 거세하고 화려한 패션으로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하는 데 집중했다. 그에게 드라마 제작에 어느 정도 간여했는지 물었다.

“전혀 간여하지 않았어요. 판권이 세계일보에 있거든요. 사람들은 제가 돈을 많이 벌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상금 1억 원은 선인세 개념이에요. 최근엔 작가가 2차 판권을 가지는 것으로 바뀌었대요. 조금 속상해요(웃음).”

소설 《스타일》은 한국형 칙릿의 대표작으로 거론된다.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사랑과 일을 다루면서 결국 해피엔딩에 이르는, 칙릿의 형태를 충실히 따르면서 술술 읽힌다. 칙릿이라는 장르 자체가 깊이와 완성도 면에서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어렵지만, 《스타일》은 트렌드를 예리하게 짚어 내면서 칙릿으로서의 완성도를 갖췄다는 평을 받는다. 한국 문단에서 제대로 된 칙릿이 등장한 건 《스타일》이 최초라는 평도 있다. 그러나 비난 역시 무수히 받았다.

“관심과 함께 증오와 비난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이 소설이 얼마나 싫었으면 이렇게까지 했을까, 싶을 정도의 비판도 많았죠. 한 독자는 A4 20매 분량으로 비난의 글을 보내왔어요.”


13년간 신춘문예 낙방 끝에 쓴 소설이 《스타일》

《스타일》 당선은 13년 동안 신춘문예 낙방 끝에 얻은 결과다.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주관하는 문학상의 성격을 줄줄 꿸 정도로 끊임없이 도전했고, 이 길이 아닌가 싶어 드라마를 배우기 위해 작가 교육원도 다녔다.

“세계일보 문학상은 기본적으로 스토리텔러를 뽑는 문학상이라고 봤어요. 1~4회 수상작이 모두 드라마, 영화 판권으로 팔렸다는 것이 그걸 보여주는 증거죠. 《스타일》은 전형적인 칙릿 문법에 의거해서 쓴 거예요. 늘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을 순 없잖아요. 때로는 커피나 콜라도 마시고 싶잖아요. 그게 몸에 좋으냐 안 좋으냐를 떠나서.”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어릴 때는 엄마한테 그럴듯하게 지어낸 이야기를 하다 혼난 적도 많았다 한다. 일어난 일을 ‘재미있고 그럴싸하게’ 만들려다 보니 거짓말이 가미됐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하이틴 로맨스, 추리소설, SF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책을 탐독했고,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없다는 걸 깨닫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한다.

“중학교 때가 작가로서의 전성기 같아요. 공책에 소설을 쓰면 반 아이들이 돌려서 읽었는데, 얼마나 읽었는지 나중엔 나달나달해져서 테이프로 붙여야 했어요.”

소설가가 되겠다는 그의 열망은 깊고도 오래됐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작가를 꿈꿨다 한다. 작가가 되기 전 그는 인터넷 서점 북 에디터, 패션지 피처 에디터,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등 다양한 경험을 거쳤고, 그 경험들이 창작의 소재와 소스가 됐다. 다양한 체험을 위해 자주 옮겨 다닌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었다.

“변덕스러운 거죠. 설마 소설 쓰는 데 필요한 다양한 체험을 하기 위해 직업을 바꿨겠어요? 그건 아니고, 결핍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글을 쓰고 싶다는 근원적인 욕망을 품었는데, 카피라이터는 광고주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이고, 북 에디터는 독자에게 유익한 정보를 주기 위해 글을 쓰잖아요. 결국 내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좇아서 온 것 같아요.”

그는 재기 발랄하고 친화력이 좋다. 《다이어트의 여왕》의 생동감 있는 전개는 그의 친화력을 내세운 꼼꼼한 취재를 거쳐 탄생했다. 케이블 채널 ‘스토리 온’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 <다이어트 워> 출연자와 작가, 거식증 환자와 그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식이장애 치료사 등을 만나 인터뷰했다. 특히 그 스스로 74kg에서 42kg까지 감량한 경험이 소설을 써 나가는 데 지축이 됐다.

“74kg의 나와 42kg의 나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통해서 살을 뺀다는 게 얼마나 많은 사회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게 됐죠. 다이어트가 한 여자의 삶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개인적인 차원에서 들여다보고 싶었고, 나아가 사회병리학적인 차원까지 접근하고 싶었어요. 다이어트가 개인의 욕망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거예요. 기자님은 지금 아메리카노 커피를 시럽 없이 마시잖아요. 저는 녹차를 마시고. 이런 게 사회화된, 강요된 취향일 수 있다는 거죠. 처음부터 씁쓸한 커피와 녹차의 비릿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다이어트에는 패션계・의학계 등 자본의 논리가 정교하게 개입돼 있어요.”

《다이어트의 여왕》은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7개월간 연재된 소설이다. 연재 당시 그는 모든 독자의 댓글에 답글을 달았다. 한 회에 많게는 200개 넘는 답글을 달았고, 그 회 소설보다 긴 답글을 단 적도 있다. 이 소통을 통해 그는 “내 글이 가지는 치유의 힘을 나보다 더 믿어 주는 사람에게 책임감이 생겼고, 연재 내내 행복했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그를 기다리던 열혈 팬 네 명이 찾아왔다. 《다이어트의 여왕》을 연재하면서 알게 된 팬들은 백 작가를 “마음 치료사”라고 표현했다. 사이버 공간을 넘어 좀 더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그는 작가와 독자가 만들어 가는 새로운 글쓰기의 전형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사진 : 김진구
  • 200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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