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최고의 CG 슈퍼바이저 장성호

천만 영화 〈해운대〉의 또 다른 산파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주택가, 마당 있는 2층집이 영화 〈해운대〉가 태어난 또 다른 ‘인큐베이터’다. VFX(Visual Effect, 시각효과) 회사 모팩이 자리잡고 있는 곳. 서버와 워크스테이션을 비롯해 오퍼레이팅(조작)을 담당하는 컴퓨터만 60~70대가 있고, 인근 건물에 있는 지사의 것까지 합하면 작업에 가동할 수 있는 컴퓨터는 총 200대로 모두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장비 값만 해도 3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곳에서 50여 명의 모팩 직원들이 지난해 9월부터 영화 개봉 직전인 7월까지 〈해운대〉에 매달렸다. 배용준이 출연했던 대작 드라마 〈태왕사신기〉도 이곳을 거쳐 갔고, 현재는 드라마 〈탐나는도다〉가 이곳에서 ‘성형’을 받고 있다. 국내 최대, 최고의 VFX 회사 모팩을 이끄는 장성호 대표(39)는 영화를 영화답게 ‘출산’시키는 산파다.

“〈해운대〉의 총책임을 맡을 때 주위에서 반대도 많았죠. 왜 네가 총대를 메냐, 밑져야 본전 아니냐면서 말이죠.”

〈해운대〉의 컴퓨터 그래픽 작업은 애초 할리우드 VFX 전문 스태프인 한스 울릭이 총책임을 맡았었다. 그는 재난영화 〈투모로우〉의 VFX를 맡았던 유명 스태프다. 하지만 중간에 지휘봉을 다시 잡은 이는 장성호 대표였다. 미국과 한국의 제작 시스템이 다른 상태에서 한스 울릭에게 후반작업까지 맡기기 어렵다는 게 영화사의 판단이었다. 장성호 대표는 화상회의를 통해 한스 울릭에게 일부 쓰나미 장면을 넘겨받았고, 모팩을 비롯한 국내 3개 업체의 작업을 총괄했다. 열 달 동안 200명이 붙어서 밤을 새워 가며 매달려야 하는 대규모 작업이었다. 〈해운대〉는 총 3365컷으로 구성됐는데, 이 중 560컷이 CG로 재창조됐다. 미국에서 넘겨받은 컷은 82컷에 불과했고, 그나마 원본 그대로 쓴 것은 두세 컷뿐이다. 해운대를 덮는 거대한 쓰나미를 비롯해 CG컷 대부분이 장 대표의 손길로 마무리됐다.

“설경구 씨와 하지원 씨가 시장통을 휩쓸고 들어오는 물속에서 전봇대를 잡고 있는 장면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잘못하면 CG로 작업한 티가 많이 날 뻔했죠. 지금 보면 나쁘지 않은 수준으로 완성됐어요.”

사실 〈해운대〉 개봉 전 영화계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한마디로 CG가 엉망으로 나왔다는 것이었다. 미국에 맡긴 CG가 기대처럼 만족스럽지 못했고, 결국 국내 회사에서 다시 다 만져야 했다는 얘기가 흘러 다녔다. 장 대표의 귀에까지 안 들어갈 리 없었다. “심하게 부담스러웠다”며 “작품을 망치는 장본인이 될까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본 결과는 소문을 무색케 했다. CG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자연스러웠다. 장 대표가 받는 가장 흔한 질문이자, 한국 영화팬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 한국영화의 CG 기술력은 얼마나 될까. 과연 〈트랜스포머〉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불가능합니다. 물론 우리 기술력도 할리우드의 80~90% 수준엔 이르렀다고 봅니다. 한국영화의 짧은 경험과 역사에도 그 정도 성취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죠. 사실 할리우드에서도 초특급 기술의 CG가 사용된 작품이나 그것을 구현하는 회사들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나머지 영화들은 대부분 우리 기술 수준으로도 충분히 구현 가능하죠. 우리가 할리우드 평균 수준은 된다는 겁니다.”


우리 VFX 기술력이 정상급은 아니지만 수준급은 된다는 말이다. 장 대표는 “이제는 〈해운대〉같은 영화를 순수 우리 기술로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해운대〉의 VFX를 미국의 기술력에 의존해야 했던 것은 인프라와 경험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물(쓰나미)을 구현하는 데는 엄청난 데이터량이 필요하고 이를 감당할 수 있는 하드 메모리와 서버가 국내에는 없었다. 또 대규모 물난리를 구현하는 영상을 우리 기술로는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경험 풍부한 해외 기술진에게 1차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기술제휴를 통해 선진 노하우와 인프라를 배워 오고, 그 다음에 독자 개발에 성공하는 제조업 분야의 발전 모델이 VFX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궁극적으로는 상상력과 창의력의 문제입니다. 기술력이 아니라 얼마나 예술적인 시각을 갖추느냐가 결정적이지요.”


어릴 적부터 거장 영화에 심취했던 영화광

장 대표는 VFX 슈퍼바이저 이전에 ‘영화광’이었다. 지금은 수백 대의 컴퓨터와 수백 명의 인력을 총괄하지만, 시작할 때는 ‘컴맹’이었다. 확실했던 것은 영화를 좋아하고 무조건 영화 일을 하고 싶은 영화광이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었다. 장 대표의 아버지는 국립영화제작소에 소속된 국방영화 촬영감독으로, 아버지 서재에는 늘 영화 초대권이 쌓여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페데리코 펠리니(〈길〉)나 샘 페킨파(〈황야의 무법자〉), 히치콕(〈사이코〉) 등 거장 감독들의 영화에 심취했다. 무조건 영화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영화 포스터라도 만들고 싶어 문을 두드린 곳이 홍대 시각디자인학과였다. 군 제대 후 복학해서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고자 했다. 그러다가 뉴욕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온 선배가 “CG를 해보라”고 권했다. 장 대표는 “붓과 연필로 그리던 그림을 컴퓨터로 그린다”고 생각하고 CF의 CG부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 포철이나 대전 엑스포 CF 작업 등에 참여했던 장 대표는 1993년 드디어 〈귀천도〉로 영화와 첫 인연을 맺는다.

“한국영화의 VFX 역사에서 저는 1.5세대쯤 될 겁니다. 제 선배들이 CG의 이론이나 개념을 국내에 소개한 세대라면, 우리 때부턴 본격적인 ‘오퍼레이팅’을 시작했죠. 원서 보면서 공부했고 배운 이론들을 CF에 적용했어요. 88올림픽을 전후해서 CG를 사용한 기업 PR광고들이 유행했고 1990년대 초반엔 그 기술이 영화에도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영화에도 〈구미호〉나 〈은행나무 침대〉 같은 VFX 기술을 본격 사용한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장대표는 〈귀천도〉와 〈박봉곤 가출사건〉 〈퇴마록〉 〈이재수의 난〉 등에 참여하면서 경력을 쌓아갔다. 그가 몸담은 회사가 망해 사무실에 있던 컴퓨터 2대를 방안에 들여놓고 독립 아닌 독립을 시작했고, 참여했던 작품이 흥행에 실패해 돈 한 푼 못 건진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 모팩을 설립했다. 〈공동경비구역JSA〉 〈해피엔드〉부터 〈로스트 메모리스〉 〈화산고〉 〈YMCA야구단〉 〈지구를 지켜라〉 〈M〉 〈크로싱〉 〈전사의 길〉까지 2000년 이후 최근까지 50여 편의 영화가 그의 손끝에서 완성됐다.

“결국 크리에이티브에서 승부가 납니다. 최고의 기술 스태프가 되려면 감독 이상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실제로 할리우드에선 A급 기술 스태프는 감독보다 영향력이 큽니다. 스필버그의 〈조스〉 이야기를 해볼까요? 사실 상어가 나오는 장면은 극히 일부이지만 영화 내내 모든 곳에서 상어의 존재감이 굉장합니다.”


VFX는 CG뿐 아니라 로봇이나 미니어처, 특수분장, 폭발 등 SFX(Special Effect, 특수효과)를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그러나 최근엔 특수효과가 대부분 CG를 통해 구현 가능해져 VFX=CG라는 등식이 일반화된 것. 하지만 CG는 마술이 아니다. 장 대표는 “감독 이상의 상상력을 갖춘 CG스태프와 CG스태프 이상의 기술적 이해를 갖춘 감독이 만나야 기술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장 대표의 아버지는 국립영화제작소의 국방영화 촬영감독이었지만 평생 한국영화의 주류인 충무로에 들어오고 싶어 하셨다. 그 꿈은 아들이 대신 이뤘다.

“제가 고3 때 돌아가셨어요. 제가 이렇게 한국영화의 주류에서 활동하고 있는 걸 아시면 정말 좋아하셨을 텐데….”

모팩은 이제 충무로를 벗어나 할리우드에서도 작업할 계획이다. 〈스파이더맨〉으로 유명한 샘 레이미 감독이 제작하는 미국 TV드라마 〈스팔타커스〉의 CG를 맡았다.

사진 : 김선아
  • 200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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