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촐라체〉를 연극 무대에 올리는 박범신 씨 아들 박병수 씨

아버지 소설이 제가 연출한 첫 연극이 됐어요

작가 박범신의 소설 《촐라체》가 연극으로 만들어진다. 직접 연출을 맡은 이가 바로 그의 아들 박병수 씨(35)라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할 당시 100만 명이 읽었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던 《촐라체》는 책으로 출간된 후에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 관심이 이제 연극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촐라체(cholatse)’는 6440m 높이로 우뚝 선, 히말라야 산맥의 봉우리 중 하나다. 높이는 에베레스트보다 2000m쯤 낮지만 2000m가 넘는 높이에 수직으로서 있는 북쪽 빙벽은 클라이머들 사이에 ‘죽음의 빙벽’ ‘꿈의 빙벽’으로 불린다. 소설 《촐라체》는 산악인 박정헌, 최강식 씨가 실제로 겪은 경험담을 토대로, 정상을 오른 뒤 하산 중에 실족한 형제가 7일 만에 극적으로 돌아오는 생환기를 다루고 있다.

박병수 씨는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나온 후 현재 젊은 연극집단 ‘지구연극연구소’의 부대표로 있으면서 명지대 뮤지컬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동안 뮤지컬 <불장난 말장난> 연출, <갈매기>와 <서푼짜리 오페라>의 조연출을 맡았다. 영화에도 참여해 <밀양>과 <아이언팜> 조감독을 지냈다. <촐라체>는 그가 처음 내놓는 연극 작품이다. 데뷔작으로 아버지의 소설을 택한 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소설가 박범신의 아들’로 먼저 조명받는 게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확률이 높다”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그가 아버지 작품을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아버지나 저나 굉장히 독립적인 성격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작품을 아들이 연출한다’는 사실로 주목받는 것에 대해 조금 부담스러워요. 하지만 아버지 작품을 연출하는 게 행복해요. 아버지 작품을 아들이 연출하는 예는 드물잖아요?”


박범신 씨는 《촐라체》에 대해 “자본주의적 욕망과 안락에도 쓸려 가지 않는 야성과 이상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 마음속에 ‘촐라체’가 있었으면 한다. 삶의 본원적인 문제를 다루고자 한 이 작품을 산악소설로 보지 말라”고 말했다. 병수 씨 역시 이 말에 동감한다.

“‘왜 산에 올라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이지요. 《죽음의 지대》를 쓴 등반가이자 작가인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가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위로 올라가는 꿈을 꾸지 않는다. 아래로 내려가 인간을 본다’고. 산을 오르며 저마다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를 떨쳐 내고, 자아를 찾아가는 겁니다. 우리 연극도 죽음의 위기에 맞닿은 인간, 형제간의 소통을 그립니다.”

박범신 씨는 히말라야를 몇 번씩 오를 정도로 산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병수 씨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평창동 뒷산을 오르곤 했다. 평소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촐라체〉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았다고 한다.

“아버지 소설을 읽은 후 산을 올랐을 때 산이 달라 보였어요. 바위나 빙벽을 타려면 고리 하나에 내 몸을 의지해야 하는데, 저 매듭이 언제든 풀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공포가 엄습해 왔습니다. 삶의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거지요.”


아버지를 통해 창작의 고통 알게 됐어요

소설을 연극으로 각색하면서 그의 고민은 컸다. 소설과 연극은 다른 장르. 어떻게 압축의 묘미를 살리면서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험난한 산을 어떻게 무대미술로 표현할까 난제가 이어졌다. 자신이 각색한 것을 아버지께 보여드리려 했지만, 아예 안 보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제 내 손을 떠나 연출자의 몫이 되었다. 무대에서 보겠다”라고 못 박으셨단다.

“아버지의 원래 꿈은 영화감독이셨다고 해요. 어머니는 배우가 꿈이셨고요. 아버지는 어렸을 때 영화 한편을 보기 위해 40리 길을 걸었고, 돌아와서는 밤새 시나리오를 쓰곤 하셨답니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 연극 무대에 서셨고요. 어머니는 잠드시기 전까지 판소리를 틀어 놓으셨고, 아버지 서재에는 늘 책이 가득했으니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한 셈이지요.”

그가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겠다고 하자 반기셨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런 고백도 하셨다. “첫아이라 너한테 실수한 게 많았다. 소설 쓰는 것보다 너를 키우는 게 몇 십 배 힘들었어”라고. 아버지는 당신이 사회적으로 적응하기 어려운 성격이라 아들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활발하게 자라는 게 소망이었다고 했다. 소설가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보며 그는 창작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일찍이 알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생각을 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TV를 볼 때도 채널이 고정된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늘 무서울 정도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았어요. 한번은 밤에 자고 있는데 ‘쿵쿵’ 소리가 나서 가 보니 아버지가 머리를 벽에 부딪치고 있는 거예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연재소설을 쓰실 때였는데, 글이 잘 풀리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다음날 아침이면 마감인데, 피가 말라 그러시지 않았을까요? 허투루 글을 쓸 수도 없고. 어른이 되고 나니 아버지의 갈등이 더 구체적으로 이해되는 것 같아요. 글을 쓰는 것과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의무 사이 깊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박범신 씨는 한 일간지에 소설을 연재하던 1993년, 절필을 선언하고 1996년 중반까지 칩거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며 문학에 대한 열정과 고통을 그저 짐작할 뿐이었다.

“아버지가 너무 강직하셔서 어릴 때 아버지를 이겨 보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있어요. 말로는 아버지를 이길 수 없으니 책을 더 많이 읽자, 그런 정도였지요. 지금은 아버지와 함께 가고 싶어요. 아버지를 보면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아들로서 책임감도 느껴요. 늙어 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세상 모든 아들들의 심정이 다 그렇지 않을까요?”

<촐라체>에는 <시사저널>이 선정한 ‘한국의 미래를 이끌 차세대 영웅 300인’ 중 연극 부문 2위를 차지한 배우 김태훈 씨(정우진 역.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 연출가),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에 출연했던 함제범(박상민 역) 씨, 연극 <유리가면>에 출연했던 김영주 씨 등이 출연한다.

“결핍을 아는 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어 잃어버린 느낌을 절절히 표현해 내는 김태훈 씨, 집요하게 파고드는 기질이 있는 김영주 씨, 젠틀하지만 내면에는 야생의 세계를 품고 있는 함제범 씨가 관객들을 ‘촐라체’의 세계로 데려가지요.”

연극 〈촐라체〉는 2월 13일 서울 성동문화회관 소월아트홀에서 개막 공연을 한다. 배우들은 1주일에 나흘씩 산을 타면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연극 <촐라체>는 관객들에게 “당신의 촐라체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이 질문은 박병수 씨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는 직접 각색하고 시나리오를 쓰면서 연극과 영화, 뮤지컬 등 영역을 넘나들며 계속 작업하고 싶다고 한다. 아마도 그 열정으로 자신의 〈촐라체〉를 오를 것 같다.

사진 : 김선아
촬영협조 : 張(02-742-4788)
  • 200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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