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수 한강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및 상임지휘자

사람들 마음을 음악으로 채우려 병원 연주회, 마을 음악축제 열어요

“남프랑스 바닷가를 여행할 때였습니다. 아들에게 시간에 따라 풍경에 따라 달라지는 하늘빛을 보라고 했지요. 음악이나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강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자 상임지휘자 조정수(45) 씨. 그는 ‘클래식’을 매순간 달라지는 하늘빛에 비유했다. 유럽에서 음악을 공부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는 우리나라에 온 후 지하철이나 작은 마을에서 거리낌 없이 연주회를 연다. 매순간 달라지는 하늘처럼 클래식도 장소와 청중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벨기에 브뤼셀 왕립음악원, 프랑스 파리 말메종 국립음악원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와 합창지휘 관현악법 작곡을 공부한 후, 프랑스 FLAINE 국제음악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지휘전공 교수로 활동하다가 2005년부터 서울 심포니오케스트라 지휘자, 메트로폴리탄 필하모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및 상임지휘자, 분당소년소녀합창단 단장 겸 지휘자로 활동해 왔다. 2007년에는 ‘Revolution Beethoven’ 시리즈 연주회로 주목받았고,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협주동화(協奏同和)’ 지휘도 맡을 만큼 우리 음악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그가 5년 전부터 소리 소문 없이 해오고 있는 일이 있다. ‘찾아가는 클래식 음악’이다. 평소 클래식 음악을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불우 청소년들, 지역주민, 노인들을 찾아가 작은 클래식 음악회를 여는 것. 그는 “음악적 재산은 나눠야 한다”는 신념으로 그동안 문화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간다.

“지하철에서 ‘합창’을 공연한 적이 있는데, 시민들이 소리에 귀 기울일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클래식 음악, 어렵지 않습니다. 클래식 연주회에는 정장 입고 가야 한다는 벽을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 같아요. 너무 격식 있고 딱딱한 연주회만 경험하니 ‘클래식 연주회에 갔더니 좋더라’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거예요. 저를 포함해 음악하는 사람들이 통렬하게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청계산 지역 주민을 위해 여는 ‘산머루 축제’

유럽에는 어느 산골 마을에 가도 작은 음악축제가 있는게 예사였다. 그래서 2008년 여름에는 청계산 자락에 있는 원터마을에서 서울, 분당, 경기 지역주민을 위한 소박한 클래식 음악축제인 ‘산머루 축제’를 열었다.

“지역주민들이 부담 없이 와서 마음껏 즐기고 가는 축제로 만들었지요. 떡을 해서 동네 어르신과 나눠 먹기도 하고, 밤에는 클래식 공연을 하고, 낮엔 지휘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위한 아카데미를 열었습니다. 잘 키운 지휘자가 좋은 악단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카데미도 빠뜨릴 수 없었죠.”

이 축제에서 처음 클래식 음악을 들어 보았다는 주민들은 “클래식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고 하기도 했다. 50명의 단원이 1년 동안 10회 안팎의 정기연주회를 여는 것은 민간 오케스트라로서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 그는 그 사이사이 이런 작은 연주회 준비까지 기꺼이 임한 연주자들이 너무 고마웠다고 한다.

청계산 자락에서 오랫동안 레스토랑을 경영한 산머루의 이기석 대표 후원으로 열린 작은 마을축제인 ‘산머루 축제’는 2009년에도 열릴 예정이다.

“필라델피아를 특별하게 하는 게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라는 존재입니다. 호주 시드니도 오페라 하우스 때문에 도시 이미지가 바뀌었고요. 음악이 특별한 도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청계산에 갈 때마다 이기석 대표가 운영하는 산머루 레스토랑에 들르곤 했던 그는 그 근처 보육원을 보면서 ‘이 아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게 ‘산머루 축제’로 발전했다. 청소년기에 음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또 집안 형편이 어려워 클래식을 만날 기회가 없는 아이들을 ‘아름다운 가게’와 함께 정기 연주회에 초대하기 시작했다. 한강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용인 효자병원, 분당 차병원, 한양대병원, 중앙대병원에서 환우들을 위한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음악에는 분명 병든 사람을 치유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들에게 평화를 안겨주죠.”

한ㆍ불수교 120주년 연주회 때는‘베를리오즈’의 작품 세계를 조명했는데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공연이었다. 그를 클래식의 세계로 이끈 계기가 바로 ‘베를리오즈’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외교관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런데 베를리오즈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본 후 진로가 바뀌었지요. 베를리오즈의 곡을 연주하고 싶어 플루트를 전공해 음대에 진학했습니다.”

베를리오즈는 플루트 연주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유럽으로 유학한 후 그는 지휘자 예프게니 스베틀라노프(Evgeny Svetlalnov), 세주 오자루, 에프게니스텐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거의 다 만났다. 특히 앙드레 주브(Andre Jouve), 샤를 뒤트와(Charles Dutoit), 롤란드 르메트레(Roland Lemetre)에게 사사하고, 프로코피에프국제지휘 콩쿠르 파이널에 오르며 지휘자로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스승님에게 배운 것은 음악의 맥박입니다. 지휘자의 움직임에는 이유가 없는 게 없습니다. 살아 있는 느낌이랄까요?”

특히 쇼맨십과 녹음 연주를 싫어했고, 작곡가가 작곡한 그대로에 충실하려는 첼리비다케(Celividache)는 그의 음악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진정한 소통은 소리를 통해서 해야 합니다.”


그는 음악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게 지휘자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에서 2009년으로 넘어가는 연말연시, 그는 파리에서 지냈다. 음악가로서 갖가지 구상을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7년 동안 한국에서 그를 뒷바라지했던 아내는 파리에서 작곡 공부를 하고, 아들은 바이올린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가자고 했을 때 아내는 몹시 반대했다고 한다. “왜 유럽 무대를 포기하려고 하느냐”고 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한국에서 한국사람 냄새가 나는 음악활동을 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음악은 하나예요.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서양의 악기라고 생각할 수 있나요?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을 서양인의 옷으로 여기지 않는 것처럼.”

국악기와의 만남을 통해 ‘한국적인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싶은 게 그의 꿈 중 하나다. 아시아에서 제일가는 오케스트라, 나아가 베를린에 가서 연주해도 뒤지지 않을 오케스트라로 만드는 것도 그의 꿈이다. 민간 오케스트라를 꾸려 가는 것만 해도 만만치 않은 일일 텐데 그는 병원을 찾아 음악으로 사람들을 치유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채우는 작은 마을축제까지 꿈을 하나하나 현실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사진 : 김선아
  • 200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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