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食客이 찾은 맛집 ⑨ 나성윤 사리원불고기 대표

당뇨병 할아버지를 위해 할머니가 개발한 불고기

달짝지근한 간장과 갖은 양념, 쇠고기의 삼박자가 어우러지는 불고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다. 한국 음식은 양념이 강해 와인과 잘 맞지 않는다는 편견이 있는데, 만화 《식객》의 ‘불고기와 와인’에는 이 둘이 만나 조화를 이루는 접점을 찾아낸다. 여기에 소개된 식당은 ‘사리원불고기’. 할머니와 어머니에 이어 나성윤 사장이 3대째 황해도 사리원식 불고기를 재현해 내고 있는 곳이다.
사리원불고기 서초점 ‘서초사리원’을 찾았다. 최근 ‘사리원불고기’는 보통명사처럼 자리 잡았는데, 원조 사리원불고기는 서초점과 도곡점뿐이다. 서초사리원은 그간 ‘식객이 찾은 맛집’들과 여러모로 달랐다. 나성윤 사장은 인터뷰를 썩 달가워하지 않았고, 특히 본인의 사진이 실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원거리에서 옆모습을 찍는 조건으로 그를 만났다.

강남역 부근 삼성타운 뒤에 자리한 이곳은 고깃집 같지 않았다. 실내에 고기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고, 널찍한 테이블과 깔끔한 인테리어는 레스토랑 분위기를 풍겼다. 주방 앞에는 갖가지 와인들이 즐비했다. 다른 식당들이 《식객》에 나오는 그 식당 관련 만화 컷을 액자에 넣어 걸어 둔 것과는 달리, 여기에는 없었다. 유명 인사의 사인 한 장 안 보였다. 한국계 혼혈 미식축구선수 하인스 워드가 방문한 식당으로 유명한데, 이에 대한 홍보도 없다. 약속 시간에 정확하게 나타난 나성윤 사장은 훤칠한 키에 세련된 젠틀맨 이미지였다. 그에게 식당의 첫인상을 전하자 겸손한 말투로 이렇게 답한다.

“누가 다녀간 집, 어디에 소개된 집. 이런 식으로 홍보하는 건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들었어요.”

이곳의 대표 메뉴는 ‘사리원불고기’. 황해도 사리원이 고향인 구분임 할머니가 불판에 구워 소스에 찍어 먹는 사리원식 불고기를 재현한 메뉴로, 고기를 양념에 재웠다가 구워 먹는 일반 불고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구 할머니가 개발한 사리원불고기 소스에는 설탕과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는다. 당뇨병으로 고생하던 남편을 위해 설탕 대신 12가지 과일과 야채로 단맛을 내는 소스를 개발했다고 한다.

사리원불고기를 주문했다. 상에 내온 한우 등심의 마블링을 본 순간, 불고기로 먹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즙과 다진 마늘로 양념한 등심을 불판에 구워 불판 옆에 있는 간장 육수에 살짝 담갔다가 소스에 찍어 먹었다. 육수에 익힌 쪽파와 양송이버섯을 곁들여 먹는 게 포인트. 이날은 사리원 특제 소스 대신 여름용 매실 소스가 나왔다. 향긋한 매실 향과 육즙이 살아 있는 등심, 파와 양송이버섯 재료 각각의 맛과 향이 살아 있되, 씹을수록 네 가지 재료가 조화를 이루며 하나가 됐다. 고기에 간이 되어 있지 않아 구수한 등심 맛이 그대로 났다.

밑반찬으로 나온 절인 깻잎에 싸서 먹으니 별미다. 입 안이 개운하게 씻기는 느낌이었다. 식사로 주문한 물냉면도 기대 이상이었다. 메밀 함량 60% 이상으로 된 면발은 쫄깃하지 않지만 담백했고, 육수는 슴슴하고 깔끔했다. 지하에 있는 국수 기계에서 그날그날 메밀 생면을 뽑아 냉면을 만든다고 했다. 모든 음식에 조미료를 넣지 않은 이곳 음식은 전체적으로 자극적이지 않고 정갈하다. 첫 맛에 입에 착 감기지 않아 일반 식당 음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밍밍하다’고 평할 법도 하다. 매일 새로 담근다는 김치 겉절이 역시 맵거나 짜거나 달지 않다.



애틀랜타 공무원으로 일하다 어머니 부름 받고 귀국

나성윤 사장은 해외 유학파 출신이다. 해외에 파견 근무를 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일찌감치 넓은 세계를 접했고,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토목을 전공했다. 애틀랜타 시청의 공무원으로 토목 관련 일을 하다가 1997년에 귀국했다. 그의 어머니가 의사인 형이나 전업주부 누나 대신 그를 3대째 주인으로 낙점한 것. 귀국 후 토목 일을 겸하면서 식당 일을 익힌 그는 2000년 서초동에 2호점 ‘서초사리원’을 오픈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업을 이어받았다.

그는 탁월한 사업 감각을 지녔다. 퓨전 비어 레스토랑 ‘기린 비어 페스타’를 들여와 국내 호프집 시장에 새바람을 일으킨 주역이 바로 그다. 기린 비어 페스타는 330㎡(100평) 이상 규모의 직영점만 운영하다가 2000년에 다국적기업에 매각했다. 한식당에서 와인을 최초로 판 것도, 고기 냄새와 연기를 빨아들이는 첨단 무연 로스터를 일본에서 수입해 고깃집에 최초로 적용한 사람도 그다.

“미국에 있을 때 룸메이트가 조지아에 와이너리를 가진 친구였어요. 덕분에 와인에 일찍 눈을 떴죠. 1997년에 사리원불고기에서 와인을 팔겠다고 했더니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와인 붐이 일기 전이었잖아요. 처음엔 하루에 많아야 두세 병 팔리는 게 고작이었죠. 무연 로스터를 들여올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손님들은 옷에 고기 냄새 배는 것에 별 불만과 문제를 못 느끼는데 굳이 비싼 돈을 들일 필요 있냐는 반응이었죠.”

나성윤 사장은 와인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다. 덕분에 품질 좋은 와인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 손님들은 웬만한 와인 소매점 수준 가격으로 와인을 마실 수 있다고 한다. 그에게 불고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시라 품종으로 만든 프랑스 론 와인이 가장 잘 어울리고, 말벡 종으로 만든 와인도 괜찮다”고 답한다.

1등급 이상의 한우(때에 따라 1+등급이나 1++등급), 파, 샐러드 야채, 버섯 등 신선한 재료를 쓰는 게 사리원불고기의 경쟁력이라고 한다. 간장과 된장은 나성윤 사장의 어머니가 직접 담근 것이라 손맛이 느껴지고, 소금은 전북 부안의 곰소염전 것만 사용한다고. 하지만 서비스가 음식맛을 받쳐 주지 못해 아쉬웠다. 종업원이 불고기 먹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았고, 뒤집는 타이밍을 놓쳐 태우는 바람에 육즙이 빠져 고기가 퍽퍽해지기도 했다. 나 사장에게 이런 느낌을 솔직하게 전하자 그는 “큰 그림을 그리다 세심한 부분을 놓친 것 같다”면서 “대를 잇는 맛집의 명성을 지켜 나가기 위해 고객의 소리를 귀담아 들으려 노력한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사진 : 김선아
  • 200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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