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숙 서울디자인올림픽 총감독

‘미래도시’ 서울의 디자인을 세계에 알려야지요

서울시가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WCD)에 선정된 것을 기념해 10월 10일부터 30일까지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고 있는 <서울디자인올림픽 2008>. 건축디자인, 산업디자인, 패션디자인, 그래픽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와 신진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내보이고, 일반 시민도 ‘작가’가 되어 창작활동에 참여하는 종합 디자인 축제다. 2010년까지 매해 열면서 세계에 서울을 ‘디자인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할 이 올림픽의 첫해 총감독은 권은숙 휴스턴대 교수다.

“2010년에는 세계 디자인계가 서울을 주목하게 됩니다. 서울에서 1년 내내 디자인 관련 문화행사가 열리는데, 그중 하이라이트가 ‘디자인 올림픽’이지요. 올해 올림픽은 세계 디자인계에 서울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수많은 디자인 관련 행사들이 디자이너들을 위한 디자인계의 행사로 끝나곤 하는데, 이번 행사는 시민이 참여해 함께 즐기는 축제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올림픽’에 수많은 종목이 있잖아요? 디자인 올림픽에도 플라워 디자인, 그래피티, 서예 등 다양한 영역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각자의 관심이나 취향에 따라 선택해서 보고 즐길 수 있습니다.”

이번 디자인 올림픽의 주제는 ‘디자인은 공기(Design is Air)’이다. 보통 사람이 ‘디자인’하면 떠올리는 것은 어떤 물건의 형태나 장식. 디자인의 본래 의미는 그런 제한된 영역을 넘어선다고 그는 말한다. 디자인은 항상 우리 주변에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인간과 자연의 생명에 깊이 관여하는 공기와 같다는 것. 건축디자인에서 건축물의 형태나 장식이 아닌, 그 건축물이 만들어 낸 공간이 디자인의 핵심인 것과 같은 의미다.

권은숙 총감독은 서울대와 대학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후 1990년부터 2003년까지 KAIST(한국과학기술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를 지냈다. 그동안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대학원에서 예술교육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휴스턴대 건축대학의 산업디자인학과 교수가 됐다. 세계 최고의 암 전문 병원인 MD앤더슨 암센터에 근무하게 된 남편을 따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갔다 휴스턴대 교수가 된 것.


자그마한 몸에 조용조용한 말투. 그의 말은 조금도 막힘없이 논리 정연했다. 보통 디자이너라면 언어보다는 시각적인 표현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했겠다고 하자 “잘했어요”라고 답한다. 미대에 가게 된 것은 자신을 예뻐했던 교장 선생님이 고3 때 “디자인은 앞으로 많이 발전할 분야인데, 여자가 활동하기 좋을 것 같다”고 추천해서였다. 흑백 텔레비전과 교복 세대여서 디자인이라면 ‘전화기 만드는 것 아닐까?’라는 정도밖에 모를 때였다. 원래 영문학과를 갈까 했는데, 6개월 정도 입시미술을 배워 미대에 진학했다. 실기시험에 필요한 데생이나 색채 구성을 배우니 너무 재미있어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자신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던 재능을 선생님이 찾아준 셈이다. 그리고 만 스물아홉에 대학교수가 되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다음에도 교수가 되었으니 그의 삶은 지나치게 럭키한 것이 아닐까? 타고난 재능에 운까지 따라 주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KAIST 시절에는 젊은 여자 교수에 대한 편견을 이겨내기 위해, 휴스턴대에서는 동양 여자에 대한 텃세를 극복하기 위해 남보다 몇 배 노력했다면서. 차분한 외모와 달리 그는 “새로운 도전이 오면 감사한 마음으로 즐겼다”며 뚝심을 내보인다.


미국 휴스턴대에 산업디자인과 새로 만들어

KAIST에서 그는 디자인뿐 아니라 기계공학, 전기전자공학, 산업공학, 물리학, 문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교수들이 모여 학제 간 연구를 도모하는 ‘테크노컬처’ 모임을 만들었다. 디자인은 새로운 기술을 통해 탄생하는 것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입는 컴퓨터(wearable computer),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미래를 여는 기술을 바탕으로 왜 그런 물건들이 나와야 하는지 사회적 맥락과 트렌드, 실제 삶 속에서 활용되기 위한 디자인을 함께 고민했다. 그리고 국가의 디자인 정책, 기업들의 디자인 전략에도 참여했다. 사회 구석구석에 디자인의 옷을 입히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펼쳤던 것이다. 그는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며 “남들보다 세 배 더 노력했더니 점차 인정해 주더라”고 말한다.

“외국에서 열리는 세미나, 학회, 컨퍼런스에 부지런히 참석하면서 발표를 많이 했어요. 차츰 세계 각국의 친구들이 생기고, 그들로부터 ‘열심히 연구하는 진지한 사람’이라고 인정도 받게 됐지요.”


휴스턴대 교수가 된 것도 그렇게 세계 디자인계에 자신을 알려 놓은 덕분이었다. 휴스턴대 건축대학이 산업디자인 과정을 개설하면서 그를 초빙한 것. 산업디자인과가 생기기도 전이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조그만 여자 교수를 데려와서 뭘 하겠느냐?’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았다. 작은 키나 동양인의 얼굴, 딸리는 영어 모두 완벽한 마이너리티였다고. 그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육과정을 처음 만들었던 그는 이 대학에 정식으로 산업디자인과가 생기도록 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너와 나는 우리 학과를 만들어 가는 파트너’라는 것을 강조했지요.”

텍사스가 디자인과 별로 관련 없는 곳이라 더욱 할 일이 많다고 한다.

“휴스턴은 세계에서 항공우주산업과 의료산업의 중심지입니다. 이제까지 디자인과 접목되지 않은 분야이지요. 그래서 시도할 게 정말 많아요. 우주공간에 들어설 시설에서 쓸 물건은 디자인이 달라야 하잖아요? 무중력이나 저중력 상태에서 먹고 자고 일할 때 쓰는 물건이니까. 의료산업 관련 디자인도 무궁무진할 것 같아요. 비어 있던 곳이니까요.”

디자인을 위해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게 그에게 재미와 활기를 주는 것 같다. 권 교수와 남편은 고등학교와 대학 동기동창. 서울 의대를 나온 남편은 대학병원에서 일하다 “암 연구에 있어서는 최상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MD 앤더슨에서 일하고 싶다”며 한국에서의 모든 지위를 버리고 미국으로 향했다. 남편을 따라나선 그도 낯선 환경에서 처음부터 새로 도전했다.

“남편과는 소울메이트(soulmate)라고 생각해요. 이 나이에 나란히 앉아 형광펜 들고 같이 공부할 수 있는 부부가 얼마나 되겠어요? 의학을 공부한 남편이 저보다 더 분석적ㆍ이성적인 반면, 저는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다는 점이 다르지요.”


그는 시각만 아니라 후각ㆍ촉각까지도 디자인이 될 수 있다며 화장품 회사와 손잡고 ‘서울의 향’도 만들었다며 꺼내서 보여준다. 상쾌한 향이 인상적인 ‘남산 위의 저 소나무’. 개발시대를 지나며 무분별하게 건물이 들어선 서울이 과연 세계인들을 디자인으로 매혹할 수 있겠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요즘 지하철을 많이 타고 다니는데, 승객들이 모두 디지털 기기를 붙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그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미래도시인 ‘디지털시티’의 모습으로 비칠 거예요. 과거와 현재가 다소 거칠게 공존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고요. 홍대 앞, 강남, 도심 등 구역마다 삶의 유형이 다 다르잖아요? 이런 서울이 갖고 있는 잠재력, 역동성, 미래 지향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 김선아





▣ 컨퍼런스

국내외 디자이너와 교육자, 기업인이 디자인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하는 장. 다니엘 리베스킨트, 로스 러브그로브, 입스 베허, 패트릭 슈마허 등 세계의 디자인 거장과 석학들 참여.


▣ 전시회

세계 디자인계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국내외 디자인 작품 전시.

Design is Air
국내외 신진 작가와 초청 작가들이 공기처럼 경계 없이 움직이며 융합하는 최신 디자인 트렌드 보여준다.

서울디자인나우
전근대와 현대, 탈현대가 중첩되어 있는 서울의 환경과 사람들의 일상을 해석한다.

세계디자인도시전
밀라노, 토리노, 프라하, 뉴욕, 파리, 홍콩, 로테르담, 베이징 등 세계 도시의 건축, 의상, 제품, 그래픽 디자인을 전시.

서울디자인비전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된 서울의 비전을 보여준다. 디자인정책으로 변화하는 서울의 모습을 다양한 영상과 설치물을 통해 경험.

자하 하디드와 패트릭 슈마허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와 그녀의 파트너 패트릭 슈마허의 디자인 세계를 볼 수 있는 아시아 최초의 전시.

기업-단체전
일반 기업과 디자인 회사, 디자인 단체들이 참여, 우리 디자인 경쟁력을 보여준다.

2008 월드디자인마켓서울
우리나라 신진 디자이너들의 창의적 디자인을 만날 수 있다.

디자인탐구전
디자인, 애니메이션, 컴퓨터그래픽, 건축을 공부하는 세계 각국 대학생들의 실험적인 작품 전시.

888
8명의 국내외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이 를 해석.


▣ 페스티벌

서울 시민이 직접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져 보는 등 오감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참여하는 디자인 축제.

디자인 월(Design Wall)
디자인 전문가가 제작한 기본 안에 시민들이 참여해 완성하는 프로젝트.

세계 디자인 놀이공간
누구나 디자인을 체험할 수 있는 놀이기구와 공간.

디자인투어
디자인이 돋보이는 서울 시내 곳곳을 탐방.

거리미술제
문화예술 콘텐츠를 담은 컨테이너를 제작해 전시하는 모바일 큐브, 각자의 꿈을 분필로 그리는 분필아트페스티벌 등 시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

유용한 생활 디자인의 세계
핸드페인팅, 초코아트, 종이공예 등 일반인이 참여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 상시 운영.

푸드 디자인의 세계
매주 토-일요일에 열리는 다양한 푸드 디자인 체험 행사와 전시.

행복한 이야기 디자인
매일 아침과 저녁 두 차례씩 디자인을 소재로 한 희극, 콩트, 뮤지컬 공연.

살아 있는 미술관
IT 기술을 활용, 서양미술사 속 작품의 인물과 공간을 재현해 작품을 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테마 전시관.
  • 200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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