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현대춤사전》에 오른 안무가 안애순

한국인 특유의 직관력으로 세계적인 춤 만듭니다

고궁 뮤지컬 <대장금>과 <바람의 나라> 안무가로 유명한 안애순 씨를 한국뮤지컬대상 안무상을 수상한 이력 때문에 뮤지컬 안무가로만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녀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안무가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녀는 한국인 중 유일하게 《옥스퍼드무용사전》과 《세계현대춤사전》에 올라 있는 안무가다. 그녀가 이끄는 안애순무용단은 우리나라 전통문화와 현대무용을 접목한 다양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세계 최고 권위의 프랑스 바뇰레 국제안무대회에서 1994년과 1998년 두 차례나 최고무용수상과 그랑프리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프랑스 파리 국제무용콩쿠르 그랑프리(2000), 일본 요코하마 댄스컬렉션 R(2006) 등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이끌어냈다. 그래서 2008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갈라파고스; 가상낙원>이라는 신작을 선보인 안애순 안무가를 만나는 일은 우리 현대무용의 ‘현재와 미래’를 만나는 일에 다름 아니다.


10월 말까지 펼쳐지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현대무용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영국 마이클 클락의 <으으으음 Mmm…>을 비롯해 스페인ㆍ미국ㆍ독일ㆍ칠레ㆍ폴란드ㆍ아르헨티나ㆍ일본 등지의 다양한 작품을 맛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주목을 받아 왔기에 이번 무대에 대한 관객의 기대 역시 높을 수밖에 없다. 갈라파고스는 누구나 꿈꾸는 낙원이다.


“갈라파고스는 가상의 낙원이지만 우리의 일상 속에 있어요. 우리는 매일매일 날마다 다른 날을 살지요. 사람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자신이 지어낸 갈라파고스가 있습니다. 그게 어떤 이에게는 권력이나 종교일 수도 있고요. 가상의 낙원은 나의 일상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3장에서는 행복해지기 위해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적자생존의 상징적인 모습은 옴니버스 형식의 춤으로 드러난다. 반투명 재질로 만든 커다란 벽에 조명과 영상을 투사한 시공간의 이미지에 무용수들은 서로 단절된 채 자신의 춤을 춘다. 변화를 받아들이거나 극복하면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스스로 일깨워 가는 무용수들을 통해 현대인의 처지를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비뇰레 안무대회에서 최고무용수상을 수상한 박소정 씨, 프랑스 파리국제무용콩쿠르 1등상을 수상한 안영준 씨 외에 황수현, 안영준, 한상률 씨 등이 참여했다.


그동안 그녀는 2007년 아트서밋 인도네시아 폐막공연으로 선정되었던 <백색소음>(2008), 댄싱 퀸, 뮤지컬 배우를 무대에 등장시켜 대중에 가까이 갔던 <3tense + 아이고>, 영화감독 김지운과 공동 작업한 신작 , 만석중 놀이와 굿에서 찾을 수 있는 전통 놀이의 즉흥성과 무작위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굿-플레이>외에 <여백>(1994), <11번째 그림자>(1998), (1999)등의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미디어 아트, 설치미술, 현대음악, 연극 등 타 장르와 활발한 교류를 통해 무용이라는 장르에 대한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캐나다 몬트리올 댄스, 프랑스 Jeune Ballet de France와 같은 단체와 공동안무 작업도 활발히 해 왔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그녀에 대해 국내외 평단에서는 ‘한국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안무가 중 한 사람으로 꼽는다. 를 함께 작업한 몬트리올 댄스 예술감독 캐시 케이시(Kathy Casey)는 그녀의 안무 스타일에 대해 ‘직감’과 ‘즉흥성’을 꼽았다. 그러면서 “강렬한 표현, 세련된 리듬, 역동적이면서도 공간을 잘 활용하는 동작 등이 그녀를 세계적인 안무가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 아닌가”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그런 ‘직감’과 ‘즉흥성’은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자질, 문화나 한국의 전통적인 춤에서 기인한다.

“제가 느끼는 한국성은 배워서 아는 게 아니라 경험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이런 말을 하잖아요. ‘제 입에서는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인데…’라고. 동작을 수학적이고 논리적으로 푸는 서양 춤과 달리 ‘즉흥성’을 중시하는 우리 춤 안에는 무궁무진 새로움이 있습니다. 한국인은 직감이나 직관력 같은 특별한 자질을 타고난 것 같아요.”


익사할 뻔한 경험 등 직접 겪은 일 춤으로 옮겨

그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들을 춤으로 많이 옮겼다. 그가 익사 직전의 경험을 담아 만든 춤 를 보며 캐나다의 언론은 “관객을 무한한 우주로, 경이로운 그 공간으로 데려간다”라며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플로리다에 갔을 때 수영하다 익사 직전까지 갔어요. 어느 순간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모든 것을 놓고 편안해졌어요. 그 짧은 순간 내가 만났던 인연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졌어요.”

<해, 숨, 달>은 어머니가 뇌출혈로 입원해 있을 때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부른다고 했다.

“네 살 정도까지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집 앞 싸리문 너머 향나무가 있는 언덕이 기억나요. 할머니는 그 집에서 돌아가셨는데, 그곳은 할머니와 어머니, 제가 기억 속에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그는 이런 경험들을 작품으로 만들면서 뭐든 움켜쥐려고만 하지 않고 놓을 줄 아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새로운 춤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언제나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순수무용을 하면서는 항상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면 뮤지컬 작업을 통해서는 조금 더 쉽게 대중에게 다가가는 법을 배웠지요. 하지만 ‘무조건 쉽게 풀어라’라는 요구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요즘엔 쉬운 코드가 오히려 함정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전통의 뿌리와 현대문명의 충돌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작가로서, 또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늘 붙잡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발레를 하면서 무용과 처음 인연을 맺은 그녀는 자신에 대해 ‘남에 의해 건져진 인생’이라고 표현한다. 금란여중 때 무용 선생님이 무용반에 들어오라고 하셔서 무용을 계속했고, 대학 때 스승이 현대무용을 해 보라고 권유해서 현대무용가가 되었다고 한다. 학교 무용축제 때 안무를 맡으면서 안무가로서의 자질을 발견했다. 동창생들은 학창 시절의 그를 ‘안무가’로 기억하고 있더란다.

그녀는 “감정변화가 그다지 크지 않은 성격이 안무가로서 적합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안무가란 일이 자신이 만든 공연 무대를 아예 보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스트레스 강도가 높다고. 우리 춤의 발전을 위해 실험적이고 패기 넘치는 젊은 안무가를 찾는 일도 그녀가 요즘 힘쓰는 일 중 하나다.

사진 : 문지민
  • 200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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