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소리아이>로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백연아 감독

판소리하는 두 아이의 삶, 2년간 영상에 담아

판소리에 재능 있는 두 아이가 어떻게 길러지는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 <소리아이>. 카메라는 2년간 두 아이의 행로를 묵묵히 따라가며 때론 신명나는 판소리를 들려주고, 때론 해맑은 아이의 일상을 보여주기만 할 뿐이지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진지하다.
저마다 재능을 하나씩 타고난다면 나의 재능은 무엇일까. 그 재능은 어떻게 길러지는 것이고, 또 어떻게 길러져야 하는가. 소질 계발을 위해 아이의 자유는 저당잡혀도 되는 것인가. 그 인생은 부모의 것인가, 아이의 것인가.

판소리에 재능 있는 두 아이가 어떻게 길러지는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 <소리아이>. 카메라는 2년간 아이들의 행로를 묵묵히 따라가면서 때론 신명나는 판소리를 들려주고, 때론 해맑은 아이의 일상을 보여줄 뿐이지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진지하다. 판소리는 인생의 쓴맛 단맛을 봐야 제대로 나오는 소리인데 “니들이 인생을 알아?”라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이 영화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열세 살 수범이와 열한 살 성열이의 소리에서는 이들의 고된 인생살이가 묻어난다. 부모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받는 수범이에게선 흔들림 없는 의연함이, 알코올중독자 아버지의 폭력을 견뎌 내며 행사장을 전전하는 성열이에게선 판소리를 한 판의 굿으로 승화하는 신명이 전해 온다.

이 영화는 미국의 대표적인 독립영화제인 시라큐스국제영화제에서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고,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드물게 16개 개봉관에서 상영 중이다. 영화를 만든 백연아 감독을 만났다. 몸 라인을 그대로 살려 주는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의 배가 볼록했다. 임신 6개월이라고 했다. <소리아이>를 만들면서 결혼하고, 임신했으니 에너지가 대단한 것 같다고 하자, “그래서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라며 웃는다. 편안하고 부드러운 미소였다.

그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서울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영국 런던에서 비디오 아트에 심취했다. 그러다 우연히 영국의 다큐멘터리 프로덕션에서 일하게 됐고, 인물 다큐멘터리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비디오아트는 제 내면을 드러내는 작업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타인을 이해시키지 못하고,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는 절름발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 시간 동안 정지돼 있는 화면을 제 의도대로 이해해 줄 관객이 얼마나 있겠어요? 소통에의 갈증을 느꼈고,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이 영화의 이면에는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의 아버지는 고려대 조형학부 백윤수 교수이고, 어머니 역시 서울대 조소과를 나온 ‘미술가족’이다. 뼛속에 각인된 DNA대로 그 역시 미술을 하고 싶었으나 부모의 권유로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자유 의지가 확립되기 이전에 부모의 뜻으로 하게 된 음악은 그의 길이 아니었다. 건반을 누르면서 행복하지 않았다. 결국 중학교 때 피아노를 그만두고 미술을 시작했다. 도화지 위에서야 비로소 행복과 자유를 찾았다는 백연아 감독. 이때부터 그는 ‘인간의 재능은 타고나는 것인가, 길러지는 것인가’라는 화두를 품고 살았다. 그는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걸 몸소 입증했다.

“음악은 연습한 결과가 그대로 보이는 정직한 분야잖아요. 그래서 더 치열하게 연습하고 단련해야 하고요. ‘이 길이 내 길이다’라는 확신이 없으면 과정을 즐길 수 없고, 끝까지 가기 힘들죠. 저는 피아노를 하면서 그렇지 못했거든요. 영화를 만들면서 궁금했어요.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서 음악을 일찌감치 시작한 아이들의 진심이 어떤지. 성열이는 판소리 자체를 즐기면서 하는 게 느껴졌어요. 판소리의 매력을 몸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신기한 경험이었죠.”


판소리하는 아이들이 제게 삶을 가르쳐 주었지요

그가 음악, 그중에서도 판소리를 택한 건 판소리가 가장 삶에 밀착된 ‘인간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머리로’ 접근한 판소리였지만, 알수록 ‘가슴으로’ 그 매력을 진하게 알게 됐다고 한다. 수범이와 성열이 두 캐릭터는 그가 전국 판소리 경연장을 발로 누비면서 찾아냈다. 가급적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물색했고, 40여 명의 아이들 중 삶이 묻어나는 소리를 내는 아이들을 찾아냈다.

“성열이는 <군산전국학생판소리경연대회>에서 만났어요. 참가자 중 가장 작은 아이가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사랑가’를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아이들에게서는 발견하기 힘든 타고난 음감과 박자 감각이 있었죠. 수범이는 <임방울국악제>에서 만났는데, 성인 못지않은 뛰어난 실력에 놀랐어요. 온몸에 혼을 실어 목이 터지도록 심청가를 부르는 모습에 빨려 들었어요.”

성열이는 2006년 SBS TV <스타킹>에 ‘소리신동’으로 출연해 화제가 됐었다. 영화 촬영 도중 생긴 일이다.

열한 살 박성열 군.
2년간 군산으로, 광주로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담아낸 120시간짜리 필름은 100분짜리로 편집됐다. 편집하면서 역점을 둔 건 두 가지라고 한다.

“1부에서는 판소리의 매력과 아이들의 캐릭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2부에서는 아이들의 삶 속에서 판소리가 어떻게 승화되어 나오는지를 보여주고 싶었고요.”

영화는 대상과의 거리를 철저하게 지킨다. 2년간 아이들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개입하고 싶은 때도 많았다고 한다. 특정한 직업도 없고 알코올중독자인 성열이 아버지가 성열이를 심하게 다룰 때면 말리고 싶기도 했고, 성열이가 독지가의 후원을 받아 정식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은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더 냉정해지자, 더 철저한 관찰자가 되자’ 스스로 되뇌었다. 그러면서 깨달은 소중한 경험이 있다. ‘나의 기준으로 상대를 재단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열세 살 박수범 군.
“처음에는 성열이가 안쓰러웠어요. 수범이와 나란히 비교되니까 더 그렇게 보였죠. 하지만 그건 제 감정이잖아요. 어떻게 하면 편견이 배제된 순수한 시각으로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예상보다 오래 걸렸죠. 편견을 버리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성열이는 자신의 삶 속에서 행복해했어요. 그 누구보다 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있었고요.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그건 나의 기준을 버리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라는 걸 진심으로 알게 됐습니다. 행복과 불행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고요. 제가 영화를 찍으면서 느낀 교훈들을 관객들도 느끼면 좋겠어요.”

그는 뒤늦게 자신의 재능을 찾았다. 사람 만나기, 사람 관찰하기, 그리고 생각거리를 던져 주는 극적인 순간 포착하기. 앞으로도 휴먼 다큐를 하고 싶다는 그는 다음 작품은 ‘스토리텔러’를 소재로 삼고 싶다고 했다.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표현이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말로 표현되기 힘든 ‘말의 거짓과 진실’을 그가 어떻게 카메라에 담아낼지 기대된다.

사진 : 장성용
  • 200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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