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미술가(Installation Artist) 배수영

중국 시민, 일본 기업이 선정한 한국 작가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설치미술가 배수영 씨(36세)는 지난 7월 열린 중국베이징좌우국제예술제(Art Beijing International Artist Festival)에서 ‘중국 시민이 뽑은 작가’에 선정되었다. 최근 설치미술가, 무대미술가, 전시기획자로 한국겵薩퉩일본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 배수영 씨를 서울에서 만났다.

‘99개의 텐트, 99개의 꿈’이라는 주제로 열린 좌우국제예술제는 3일 동안 같은 공간에서 작업하고 작품을 전시한다는 점에서 여느 예술제와 다르다. 베이징 국제공항에서 15분 정도 거리가 떨어진 곳에 위치한 좌우예술구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따산즈 예술구처럼 초기엔 벽돌공장이나 가죽창고, 자동차 부품을 만들던 공장지대였다. 이번 예술제에서는 중국ㆍ한국ㆍ일본ㆍ미국ㆍ영국 등 100여 명의 예술가들이 회화, 사진, 설치미술, 행위예술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배수영 씨가 선보인 작품, 쓰촨성 지진으로 상처받은 사람들과 대지를 위로하는 <무리, 군중>은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었다. 공연에 참여했던 예술가와 시민들이 함께 완성해 가는 퍼포먼스였다.

“일본에서 생활한 지 12년 정도 되었어요. 고베 지진이 났을 때 전 오사카에 있었죠. 오사카에 있는 친구 집에 갔다가 발이 묶였습니다. 그래서 쓰촨성 지진 소식을 들었을 때도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준비한 작품이라 아무래도 중국시민들의 마음에 와 닿았나 봐요.”

이번 작품을 계기로 그녀는 2008년 송좡예술구에서 열리는 ‘예술축제’ 초대작가로도 선정되었다. 베이징 송좡예술구는 따산즈 지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국의 대표적 예술구다. 작품 속에 쓰인 흰 천은 우리나라 장례식에 쓰는 삼베이고, 검은 색 천은 일본인들이 장례식에 주로 사용하는 기모노 천이다. 천을 타고 오르는 나비는 오사카에서 박제한 나비를 사진으로 찍은 것들이다.

“나비를 통해 쓰촨성 지진으로 숨진 이들의 영혼이 환생해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라는 애도의 뜻을 담았습니다. 꽃은 ‘향’의 의미를 지니는데 한국ㆍ중국ㆍ일본의 고유한 전통입니다.”

하얏트호텔 설치 작업.
그녀는 관람객이 나비 한 마리씩을 오려 자신의 이름을 써서 천에 붙이게 하고, 나머지 한 장은 선물로 주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관람객들이 열정적으로 호응하더라는 것.

“평소 관심 있는 주제가 사람과의 인연, 자연과의 관계예요. 그래서 거미나 끈, 나비, 씨실과 날실이 만나서 만들어지는 천 등에 끌립니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히 전시의 개념을 넘어선다. 그렇다고 순간을 중요시하는 행위예술과도 다르다. 그림을 그리면서 설치를 하고 퍼포먼스까지 하는 예는 흔치 않다. 그래서 스스로 ‘허공에 뜬 왕따’라고 생각하며 자유롭게 작업하고 있다.

정동진 설치 작업.

관객과 만날 것을 생각하면 항상 설레요

그녀는 오사카예술대학 예술계획학과(큐레이터 코스)를 졸업한 후 모교 대학원에서 무대예술(무용연출-퍼포먼스)을 공부했다. 그의 어머니 표현대로라면 그는 어릴 때부터 ‘뛰어가는 병아리도 똑같이 그리는’ 남다른 재주를 지녔다고 한다. 그러나 따로 미술 공부할 형편이 안 돼 꿈을 접었었다. 고등학교 때는 그림 솜씨를 살려 명동에 나가 흰 면 티셔츠에 그림을 그려 팔았다. 선머슴 같던 그녀가 휘경여고를 졸업할 무렵 하고 싶었던 일은 ‘연극’ 뿐이었단다. 노래도 부르고, 대학로 연극판에서 막내로 온갖 일을 하다가 스물다섯 살 뒤늦게 일본 오사카로 유학을 떠났다. 부모님은 방황하는 딸을 보다 못해 ‘학부까지만’ 지원해 주겠다고 하셨단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겸하는 고된 생활에 외로움과 싸워야 했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아무리 힘들어도 행복했다고 한다.

그녀는 지난 봄, 일본 자동차 기업 도요타가 선정한 작가로 화제를 모았다. 도요타가 한국 작가를 선정하기는 처음이었다. 도요타와의 일은 그녀에게 색다른 경험이기도 했단다.

“도요타 렉서스 전시장에서는 1년 내내 예술가들의 전시가 이어집니다. 이제까지 두각을 나타내는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됐죠. 한국 작가를 섭외한 것은 그쪽에서도 처음이었어요. 전시하자고 연락이 왔을 때 제 작품이 자동차와 어떻게 접목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여느 예술제나 전시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으니까요. <우주, 행성>이라는 작품을 전시했는데 예술과 환경, 우주에 대한 내용을 담았어요.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렉서스 관계자가 차는 안 보고 미술작품만 본다고 불만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 이런 전시를 통해 도요타 렉서스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홍대 설치 작업.
올해 6월에는 그룹전 <에코-아시아주의>에 한국대표 작가로 참가했고, 오사카 신사이바시 설치미술전, 토교 신인무용작품전 등에서 전시하고 ‘JAZZ와 퍼포먼스 그리고, 살풀이’ 등의 작품을 기획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실험예술제에 참가, 설치미술과 퍼포먼스를 합한 형태의 작품 ‘녹-복귀’를 선보이기도 했다. 정동진 하슬라 공원에서 진행된 ‘녹-복귀’는 ‘녹이 슬다’에서 따온 말로 환경 리사이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녀는 하얏트 호텔 안에 있는 갤러리의 프리랜서 큐레이터로도 활동하면서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 작가 타무라 토모코 씨,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YUM 씨, 얼음조각가 히루누마 씨, 한국작가로는 사진을 전공한 강미현 씨, 독일과 프랑스에서 무용을 한 임정미 씨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얼음조각가 히루누마 씨는 한국에 꼭 소개하고 싶은 작가입니다. 얼음조각은 결국 녹아 없어지지만, 한정된 시간 안에 있는 작품을 대중과 공유하는 게 의미가 깊어요. 대중이 그 의미와 재미를 함께 느끼게 하고 싶어요.”

한국과 일본, 중국을 넘나들며 작업하다 보니 세 나라 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그중 관람객의 태도가 가장 눈에 띈다고. 2007년 홍대 실험예술제 때였다.

“‘무리’라는 작품이었는데 자연재해로 상한 작품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거리에 세워 두었던 제 작품을 담뱃재로 지져 놓기도 하고 찢어 놓기도 했어요. 원래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에 전시한다는 의미가 컸는데, 결국 작품을 전시장에 들여놓아야 했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오사카 신사이바시 거리 설치미술전을 할 때는 이런 일을 상상도 할 수 없었거든요. 사람들이 예술가를 이해하고 같이 즐기는 법을 알 수 있게끔 성숙해졌으면 좋겠어요. 일본은 수십 년간 한 가지 작업을 해 온 무명작가를 갤러리가 발굴해 선보이기도 하는데, 관람객들이 작가들을 받아들이는 폭이 넓지요. 몇 십 년 손수건으로 작업한 무명작가를 갤러리에서 발굴하기도 하고, 관객들도 작가들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폭이 넓어요.”

그럼에도 설치미술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작품이 특정한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매력 때문이라고 한다. 작품을 선보일 때마다 “이번엔 관람객들과 어떤 만남을 가질까” 매번 설렌다는 그녀. 상처받으면서도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지병이라고 한다.

사진 : 장성용
  • 2008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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