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食客이 찾은 맛집 ④ 오두산 막국수 이승하, 이시하 형제

덩치 형제가 만들어 내는 정직한 맛

메밀가루를 익반죽해 뽑아낸 메밀 생면에 얼음이 와삭와삭 씹히는 시원한 육수를 곁들이는 물막국수. 오도독거리는 오이에 국수를 싸 먹으면 속까지 뻥 뚫리는 것 같다. 물막국수와 녹두전 맛있기로 소문난 경기도 파주의 오두산 막국수. 벽에는 《식객》의 허영만 작가가 쓴 글이 붙어 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한밤중에 길을 헤매다 먼 데 있는 불빛을 발견한 기분입니다.”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오두산 막국수 통일동산점을 찾았다. 고즈넉한 이곳까지 일부러 찾아올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주말엔 대기표를 들고 기다려야 한다.

식당 앞에까지 나와 기자 일행을 맞는 이승하 사장은 만화 속 이미지 그대로다. 유도선수 출신다운 거구에 발그레한 볼이 인상적이다. “생각보다 인상이 부드러우시네요”라며 인사를 건네자 “운동할 땐 부리부리했는데, 식당을 하면서 많이 부드러워졌다”며 빙긋 웃는다. 개그맨 이혁재를 꼭 닮은 웃음이다.

이 집의 주 메뉴는 물막국수와 비빔막국수. 녹두전과 메밀묵, 편육도 인기다. 만화 《식객》에 등장하는 녹두전을 먼저 주문했다. 뜨거운 돌판 위에 얹어 나온 녹두전은 여덟 조각으로 칼집을 낸 모양이 꼭 피자 같다. 한 입 베어 물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웠다. 첫맛은 고소했고, 고사리와 숙주나물, 돼지고기 맛이 어우러진 뒷맛은 풍부했다. 생강 향이 혀끝을 맴돌았다.

그다음엔 막국수. 오두산 막국수에서는 메밀 함량 60~70%의 생면만 쓴다고 한다. 주방에 따라 들어가 막국수 만드는 과정을 지켜봤다. 먼저 메밀 반죽을 주먹만 한 크기로 뚝 뜯어 국수틀에 넣고 생면을 뽑아냈다. 팔팔 끓는 물에 면을 익히고 찬물에 슬렁슬렁 헹궈 건져 사리 지어 그릇에 담고 재빨리 육수와 양념 등을 곁들여 낸다. 생면이라 금세 불어버리기 때문에 후다닥 만들어야 한단다. 육수 얼음이 동동 뜬 물막국수 면을 후루룩~. 담백한 육수를 머금은 면은 적당히 쫄깃했고, 육수는 맑고 개운했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차가운 무짠지와 함께 먹으니 더 시원하다. 정통 춘천막국수 스타일이 아니라 냉면 스타일이다. 육수와 양념은 물냉면이나 비빔냉면과 비슷한데 면은 메밀국수. 막국수의 진화라고 할까? 양양 영농조합에서 계약 재배한 고추를 쓰고, 육수를 내는 쇠뼈는 한우만 쓴다. 녹두전은 돼지의 등뼈 기름만 잘 걸러 사용하는 게 바삭바삭 고소하게 부치는 비결.

| 아버지 이건표 씨와 손녀들. 막내 손녀는 “할아버지. 메밀묵!” 하며 손에 묵을 쥐어 들었다.(왼쪽)
왼쪽이 동생 시하 씨, 오른쪽이 형 승하 씨.(오른쪽)
오두산 막국수는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식당이다. 형 승하 씨(39세)는 사장, 동생 시하 씨(37세)는 본점 점장을 맡고 있다. 어머니 박점순 씨는 본점 주방, 아버지 이건표 씨는 본점 카운터를 접수했다. 형제는 둘 다 용인대 유도학과를 나왔고, 어머니는 배구선수, 아버지는 권투선수 출신이다. 만화에는 형제가 툭하면 싸움질을 하는 깡패로 등장한다. 승하 씨는 만화 속 자신의 이미지가 자못 억울한가 보다.

“연재 도중에 작가 분한테 전화해서 그랬어요. ‘내가 나왔다고 해서 봤더니 순 깡패로 나와 좀 그렇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온 것만으로도 영광이지요.”

주변에 있는 산 이름을 따서 지은 ‘오두산 막국수’가 파주에 둥지를 튼 건 1992년. 형제가 대학생 때에는 어머니가 서울 화양동에서 ‘오두막’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호프집을 운영했다고 한다.

“거기가 건국대와 세종대 사이였거든요. 돈 안 내고 도망가는 대학생들이 있으면 혼 좀 내줬죠. 제가 고지식해서 중.고등학생들이 담배 피우는 걸 잘 못 보거든요. 그래서 또 혼 좀 내주고. 엄마한테 반말하는 학생들 손 좀 봐주고. 허허.”(승하 씨)

옆에 있는 시하 씨에게 “동생 분은 어떠셨어요?” 묻자 “비슷하죠. 형제가 다르겠어요?”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목구비는 꼭 닮았지만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다변가인 형은 터프하고 화통한데, 말수 적은 동생은 깔끔한 경호원 이미지다. 동생 시하 씨는 대학 졸업 후 오랫동안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의 비서 겸 경호원을 하다 2003년 식당에 합류했다. 형 승하 씨는 어려서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라면 한 봉지로 10여 가지 요리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명절 때 도맡아 전을 부치고, 김장 때면 어김없이 어머니를 도와 팔을 걷어붙였다.

아버지 이건표 씨는 1세대 구두 장인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 선수단의 구두를 만들어 줄 정도로 이름이 났지만 수제구두를 찾는 사람이 줄면서 사업이 기울었다. 적자에 허덕이던 구두공장을 처분하고 호프집을 시작했지만 빚은 늘어갔다. 내 가족에게 먹일 음식처럼 만들다 보니 손님은 북적였지만 남는 게 없었다.

“우리 어머니는 통이 크셔서 재료를 사러 가면 무조건 ‘제일 좋은 거!’라고 외치세요. 최고 재료만 고집하고 네 명이 와서 2인분을 시켜도 4인분을 내놓으셨으니 남는 게 있겠어요?”


전국의 막국숫집 다니며 연구 거듭해 찾은 맛

호프집을 처분한 후 ‘마지막’이란 절박함으로 찾은 게 어머니 고향인 파주. 메뉴는 평소에 어머니가 잘 만드시는 막국수로 정했다. 남대문에서 설렁탕 장사를 하시던 외할머니의 육수 내기 비법을 전수받아 물막국수를 제대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러고는 막국숫집 탐방을 나섰다. 강원도 춘천, 양양, 홍천, 화천, 경기도 양평 등 막국수 잘하기로 소문난 집을 죄다 다니며 맛보고, 연구를 거듭했다. 탐방에는 형 승하 씨도 동행했다. 그리고 황량한 벌판에 가건물을 짓고 ‘오두산 막국수’ 간판을 걸었다. 가건물 절반을 식당으로, 절반을 방으로 꾸며 온 가족이 한방에서 지냈다.

처음 6개월간은 적자를 면하기 힘들었다. 아버지는 온 가족을 불러 놓고 “앞으로 딱 3개월만 더 해보고 안 되면 접자”고 선언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식당이 붐비기 시작했다. “그 집 막국수 제대로더라”, “재료가 신선하고 좋더라”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 나날이 손님이 늘어 인근에 2호점, 3호점을 냈고, 승하 씨가 1995년 식당을 물려받았다. 승하 씨는 손님과의 만남을 무엇보다 중히 여긴다.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저번에는 이걸 드셨는데, 이번에도 드릴까요?’ 여쭈어 보면 굉장히 좋아하세요. 동생이 저보다 더 잘해요. 시하가 눈썰미가 좋거든요.”(승하 씨)

“형님한테 배웠죠. 처음에는 잘 안 됐는데, 관심을 가지고 보면 연상이 돼요.”(시하 씨)

인터뷰 도중 한 손님이 “여기요!” 하자 승하 씨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빨랐다. 늘 손님의 요구에 촉수를 곤두세우는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속도였다. 승하 씨는 아이디어 뱅크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맛있는 음식을,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한다. 그 와중에 탄생한 발명품이 꽤 있다. 깍두기 써는 기계, 육수 식히는 호스와 팬, 녹두전 부치는 틀, 계산대 앞 핸드백 선반 등이 다 그가 발명한 것들이라고. 손님이 음식을 남기면 ‘맛이 없나?’하며 주방에서 남은 음식을 먹어 본다는 승하 씨. 그가 사장을 맡으면서 오두산 막국수는 체계화돼 가고 있다.

“요리책을 보면 ‘중간 불에 은근히’, ‘살짝 데친다’, ‘소금 약간’같이 감에 의한 표현이 많아요. 어머니도 마찬가지세요. ‘큰 가마에서 육수가 요만큼 졸면 불 꺼’, ‘바로 요 맛이야’, ‘이 맛을 기억해. 알았지?’ 하는 식이에요. 어머니의 요리법을 체계화해서 그 누구라도 요리법만 보면 똑같은 맛을 내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지점, 저 지점을 누비며 손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 기울이는 이승하, 시하 형제. 형제는 “내 가족을 위한 음식을 만들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라고 정중히 말했다.
★ 통일동산점 information ☆ 031-941-5237 ☆ 오전 10시~ 오후 10시 연중무휴 ☆ 물막국수 4500원, 비빔막국수 5000원, 김치말이국수 6000원, 녹두전 5000원, 메밀묵 5000원 ☆ 주차 가능 ☆ 위치 : 자유로에서 성동 IC로 진입, 오두산 통일전망대 앞
  • 200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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