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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정욱

상처를 담고 있는 소녀의 얼굴

김정욱 화가
1970년 서울 생. 덕성여대 동양화과 졸업. 1998년부터 3회의 개인전. 토탈미술관, 금호미술관 등에서 국내 주요 단체전에 참여. 현재 덕성여대 강사. 김포의 작업실에서 작업 중.
작품은 작가 자신이다. 동글납작한 얼굴에 묘한 눈을 가진 인물을 그리는 작가 김정욱. 그녀를 만나자마자 내 얼굴에 동그란 웃음이 번졌다. 큰 건물이 없는 김포 중심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작업실에서 만난 김정욱은 동그란 얼굴에 검은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이는 사람이었다. 역시나 생각했던 대로 작가는 그녀의 그림을 닮았다.

묘하다. 커다란 화면에 거의 다른 색깔 없이 흑백의 수묵으로 그린 인물화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포스를 내뿜고 있다. 인물들이 격렬하거나 분명한 감정을 내뿜고 있는 것도 아닌데, 볼수록 빠져드는 마력이 있다. 웃는 것일까? 울고 있는 것일까? 입술 끝이 살짝 들린 이 소녀의 표정은 무엇일까? 동글납작한 얼굴에 단정한 갈래 머리 소녀는 눈에 띄는 미녀도 아닌데 자꾸 돌아보게 만든다. 전체적인 느낌은 소녀라 할 만하지만, 그 표정은 소녀의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경험한 것 같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것과 화해한 달관의 경지에 완벽하게 도달한 것 같지도 않다. 답답함에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커튼처럼 드리워진 짙은 눈썹은 너절한 하소연도 거부한다. 담담히 드러낸 생얼에는 작은 생채기들이 보인다. 여드름 자국 같기도 한 그 피부의 표면은 그녀 내면의 상처처럼 느껴진다. 누굴까? 그녀는.

김정욱의 작품에는 특별한 모델이 있는 게 아니다. 그림 속 인물은 대부분 여자아이들이지만, 특별히 여자를 의식한 것도 아니다. 그냥 사람을 그린다고 생각하면서 그려 나간다. 그러니 그의 그림은 한 사람을 개별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초상이 합성된 것이다. 눈이 커지고 등 부분의 변화들은 있지만, 만나는 사람들의 인상이 거기에 들어가기도 한다. 더 나가서 사람뿐 아니라 인상 깊었던 풍경, 사건 등도 함께 표현된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에 관심이 많았어요.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러는 거 좋아해요. 인생의 희로애락,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가장 기쁘면서도 가장 힘든 게 그 관계라는 것이겠지요.”

한지에 먹채색 64×94cm, 2004.
이전 작품들에서는 한 명 혹은 두어 명의 인물들이 기묘한 상황 속에서 등장하곤 했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먹먹한 감정이 화면 전체에 퍼져 나갔다.

“좀 더 젊었을 때는 사람들이 마음속에 원형처럼 가지고 있는 슬픔, 보다 본질적인 외로움 같은 것을 표현했어요. 피카소도 젊었을 때 블루 시대를 거쳤던 것처럼, 젊은 시절에는 그런 것이 있을 수 있잖아요?”

동의를 구하는 그녀의 입도 동글, 눈도 동그래진다. 그 작품들이 엮어 나갈 이야기가 있던 단편소설이라면 최근작은 아주 짧은 단시 같다. 그녀는 두 줄로 사태를 압축하면서도 우주와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본 전통시 ‘하이쿠’에 대해서 말한다. “단 한 줄로 무한히 파장되어 나가는 것들을 사랑해요. 제가 그리는 그림은 모든 사람들의 역사이면서 개인들의 역사를 동시에 보여주죠.”

한지에 먹채색 94×64cm, 1997.
그림 속 얼굴에 드러난 표정들은 특정한 주제에 따른 상황설정이라기보다 전체적인 삶에 관한 것이다. 작품의 제목도 없고, 제목을 별도로 표시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얼굴에 난 미세한 생채기들이 여드름일 수도 있고, 상처일 수도 있죠. 여자들은 특히 자기의 상황이 얼굴에 곧잘 표현되잖아요? 하나의 여드름도 과거와 현재 삶의 표현이죠. 누구나 상처는 있죠. 그게 역사죠.”

그렇다. 상처가 난 곳, 상처가 난 이유는 각기 다를 것이다. 사람들은 그녀의 그림을 보면서 각자의 회한에 빠질 것이다. 작품 하나하나에 설명을 할 수도 있지만, 관람객이 스스로 느끼고 말해 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림과 관객의 대화도 직접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즐거워한다. 뱅 스타일 앞머리로 눈을 가린 그림을 본 한 관람객은 본인이 한동안 힘들었을 때, 모자를 이렇게 내려쓰고 다녔다는 체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힘듦의 이유는 낱낱이 알 수 없지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김포에 있는 작업실.

인간의 감정과 삶을 직시하며 그린다

그녀가 그리는 얼굴들은 반색할 정도로 미인이 아니다. 인물화의 핵심은 ‘아이 컨택’ 즉, 눈을 통한 대화다. 그가 그린 인물화의 눈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비추어 주는 듯한 눈이거나,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고 텅 빈 눈을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작 있어야 할 눈썹이 없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그 텅 빈 눈들과 입 모양이 내면을 알 수 없는 동물 같기도 하다. 더러 그녀의 그림을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무섭다. 그로테스크하다는 반응도 꽤 있어요. 그래도 재미있어요. 무언가 전달되지 않으면 무섭지도 않을 거예요. 깨어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작가는 반문한다.

그림이 전달하는 내용이나 느낌이 전통적인 한국화 느낌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녀는 수묵채색이라는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녀는 대학 때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실에서 조선시대의 초상화를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등진 사람이지만, 초상화실에 들어갔을 때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뿜어내는 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한지에 먹채색 84.5×62cm, 1998.
김정욱은 우리나라 초상화의 기법과 의식에 매료되었다. 우리 초상화는 그 그림을 보고 당시 앓았던 피부병까지 분석할 수 있을 정도로 직설적으로 그려져 있다. 명암법에 기초하며, 적절히 미화된 서양의 초상화 전통과는 다른 냉정한 직시가 있다. 그녀는 인간의 감정, 인간이 살아온 삶 전체를 그렇게 직시하고자 한다. 인간이 화두인 그녀에게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냥 멍하니 있어요. 화가는 작업실에서만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세상의 비밀이나 이치에 대해서 생각하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은 멋있는 일이예요.”

중요한 비밀을 고백하듯 예의 그 느린 말씨로 말한다. 그녀의 말은 그림을 그리듯 천천히 더디게 지나간다.

한지에 먹 74.5×101cm, 2006.
“세계 각지 2층집에서 자기만의 무엇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뿌듯해요. 평생을 차와 빵만 먹으면서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에 관해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세상이 그 사람 하나 덕분에 얼마나 풍요로울까, 하는 생각을 해보아요.” 소녀 같은 착한 미소가 얼굴에 번진다.

“이제는 세상이 너무 소중하고 귀한 것과 무의미하고 하찮은 것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어떤 때는 화가 나고 사람들이 미울 때가 있어요. 나이가 들면 안 그럴 줄 알았어요.”

이 천진한 고백이 어쩌면 김정욱 그림에 담긴 매혹의 핵심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이해했다. 이런 인간적인 진실성이 그를 독보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만들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세 차례 개인전을 가졌으며, 비상업적인 대안 공간에서 주목을 받던 이 젊은 작가는 그의 독특한 화풍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는 올가을 스케이프 갤러리에서 있을 개인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

사진 : 이창주
  • 200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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