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이 만난 사람 |〈명장〉들고 한국 찾은〈첨밀밀〉의 감독 진가신

그 시대 사람들의 본 모습을 느끼고 싶었다

“특별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통해 그 시대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타임터널을 통과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그 시대의 실존이라는 것이 뭔지 느끼고 싶었다. ”
등려군의 노래와 이루어지지 않은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기억되는 〈첨밀밀〉의 진가신 감독이 대작 〈명장〉을 들고 한국을 방문했다. 19세기 말 청나라에 반기를 들면서 농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던 태평천국의 난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개봉해 역대 최고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거둔 화제작이다. 나는 〈명장〉을 보고 감동을 받아 진가신 감독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톱클래스> 인터뷰를 위해 웨스턴 조선호텔에서 그를 만났는데, 나의 인터뷰가 그의 방한일정 중 마지막 스케줄이었다.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열심히 내 질문에 답변을 했다.

<명장>은 태평천국의 난 때 농민군과 싸우던 청의 장수 방청운(이연걸 분)이 시체 더미에서 혼자 일어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명장>은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쟁영화라고는 볼 수 없다.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방청운은 도적떼를 이끄는 조이호(유덕화 분)와 그의 충직한 부하 강오양(금성무 분)을 만나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처럼 의형제를 맺는데, 이 영화는 이 세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현실주의자이자 실용주의자인 방청운과 고전적 낭만주의자인 조이호의 대결이 핵심이다. 방청운은 현대적인 사고방식, 조이호는 중국의 전통적 가치관을 대변하고, 영화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 강오양의 시각으로 전개된다.

세 사람 중 누구에게 가장 공감이 가는가?

“방청운의 생각과 행동에 동감한다. 내가 현대적인 실용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역사 속의 인물들이 너무 예쁘게 윤색되곤 하는데, 그런 인물이 그 시대에 존재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의 사람도 현대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욕망과 고뇌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진가신 감독은 조이호의 캐릭터를 빈 라덴에서 차용해 왔다고 말했었다. <명장> 속 피폐한 중국의 모습이 아프가니스탄의 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서구열강에 시달리는 19세기 중국의 모습이 현재의 아프가니스탄과 흡사한가?

“이 영화는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전한다기보다 인간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수염을 기른 조이호의 외형적 모습이 아랍 사람에서 차용한 것은 맞다. 인간 종말을 보여주는 대재앙과 같은 장면은 중국이나 아랍뿐 아니라 역사를 통해 반복된다. 그런 가운데 나타나는 인간 본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나는 현실주의자 방청운과 비슷해

진가신 감독은 민감할 수 있는 정치적 발언을 더 하고 싶어 했다. 통역을 사이에 두고 영어로 진행한 인터뷰였지만 그의 영어는 알아듣기 어렵지 않았다. <명장>에서 방청운은 의형제들과 힘을 합쳐 태평천국의 난을 평정해 나간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소주성 전투에서 상대의 항복을 받아 낸 조이호와 달리 방청운은 항복한 4000명의 병사들을 몰살시키는 현실적 선택을 한다. 방청운과 조이호가 노골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그때부터다.

“나는 정치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사회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항상 촉수를 세워 두고 있다. 영화를 만들 때는 역사 속에서 캐릭터를 찾아낸다. 가령 중국 역사 속의 인물이 체 게바라 같은 캐릭터일 수도 있다. 19세기 말은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가 변화의 바람에 휘말려 있던 시기다. 프랑스 혁명 후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이 일어났고, 중국은 태평천국의 난이 실패한 후 손문의 혁명이 있었다. 태평천국의 난이 성공했다면 손문의 혁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명장> 속에서 소주성 전투는 매우 처참하게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 태평천국의 난이 있었던 14년 동안 중국에서는 70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은 2차 대전 때 전 세계에서 희생된 사람의 수와 비슷하다. <명장>은 역사를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지만 역사 속에 등장한 실제 인물들이 주요 캐릭터에 압축되어 있다.

소주성주는 짧게 등장하지만 신비한 매력이 있다. 태평천국을 일으킨 홍수전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가?

“소주성주는 실제 인물과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허구에 가까운 인물이다. 방청운이 되고 싶어 했던 인물이 소주성주 같은 캐릭터다. 조이호가 혼자 성 안으로 들어가 소주성주를 만났을 때, 그때까지 방청운이 말했던 모든 이상형의 모습을 소주성주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조이호와 소주성주의 만남은 혁명적이다. 그래서 소주성주를 만난 뒤 조이호가 다시 방청운을 만날 때는 큰 변화가 있다.”

조이호 역의 유덕화는 소주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지루하게 대치하고 있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혼자 성 안으로 잠입한다. 소주성주는 조이호의 신분을 알아채고 그와 결투를 한 뒤 조이호의 칼에 스스로 찔려 죽는다. 죽으면서 자신의 백성들과 남은 군사들을 보호해 달라고 부탁한다. 조이호는 그들을 지켜 주겠다고 약속한다.

“소주성주는 현실적으로 부르주아다. 백성들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즉 있는 집안 자식이다. 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소주성주의 거처는 서가로 둘러싸이게 했다. 그리고 그를 예수 같은 성자처럼 만들었다. 목소리도 의도적으로 따뜻하게 만들어 더빙했다. 그는 꿈꾸는 혁명아, 이상적인 인물이다. 혁명의 와중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이상적인 인물이다.”

나는 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가 이연걸이 맡은 방청운 같은 인물이라고 말하는 데 공감했다. 그는 현실주의자다. 현재 중화권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영화는 거대한 스케일의 대작영화다. <첨밀밀〉의 섬세한 심리묘사나 멜로물을 버리고 중국 역사에서 소재를 가져와 액션영화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하지만 유교적 가치관의 지배를 받는 중국의 고전적인 무협 액션과는 다른 무엇을 만들려고 했다.

“유교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유교는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에게는 굉장한 수양의 기회를 제공한다. 종교에 의해 사회질서가 지탱되는 서구에 비해 중국은 종교가 강하지 않다. 유교는 신에 의해 억눌리지 않는 대신 스스로의 관습에 의해 억눌리는데 이게 나쁘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선한 존재라며 그 틀에 맞춰 스스로를 억누르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현실주의자 진가신 감독은 왜 태평천국의 난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을까?

“특별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통해 그 시대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타임터널을 통과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그 시대의 실존이라는 것이 뭔지 느끼고 싶었다.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그런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실재는 무엇이었는지, 현대를 사는 우리의 시각으로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제대로 느끼고 싶었다.”

사진 : 이창주
  • 200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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