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 피겨 스타 김연아가 어머니 박미희 씨에게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 2008년 새해가 밝았어요!

매일 아침 일어나 운동하러 가면서 보는 태양이지만 오늘 유난히 크고 밝게 느껴지는 건 새해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크기 때문인가 봐요.

10년 전 엄마 손을 잡고 처음 스케이트를 탔을 때의 느낌은 마치 세상과는 전혀 다른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기대와 두려움 그 자체였어요.

그러나 그 기대는 때로는 고통으로, 때로는 실망으로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내며 포기 직전의 상황에까지 다다르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몸이 힘들고, 스케이트가 잘 타지지 않을 때도 엄마는 항상 곁에 있어 주셨고, 나태할 때는 쓴 소리와 잘했을 땐 아낌없는 격려로 제가 지금까지 오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셨답니다.

지금도 가끔 이런저런 일로 엄마랑 싸우기도 하지만, 엄마가 안 계셨더라면 지금의 저는 있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고마워하면서 결국 엄마를 따르게 되는, 아직은 철없는 딸이라고 예쁘게 생각해 주세요.

러시아의 차디찬 바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토리노의 낯선 길, 동양인 여자 둘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유럽과 캐나다 도시들… 엄마와 나 둘이서 그 많은 스케이트 장비와 의상도구를 챙겨서 나설 때마다 내가 매번 느낀 것은 엄마에 대한 미안함, 고마움과 할 수 있다는 용기, 그리고 성공에 대한 다짐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정말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그래도 기억에 많이 남아 있는 건 좋은 추억과 영광스러운 장면이에요. 특히 지난 2007년엔 너무나도 좋은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오히려 2008년이 걱정스럽기도 해요. 늘 잘한다는 건 힘든 일이니까요.


하지만 난 걱정하지 않아요. 아무리 작은 열매라도 고통 없이 수확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이젠 더 이상 외롭거나 힘겹지 않을 만큼 도와주시는 좋은 분들이 많으니까요. 게다가 우리에겐 전 세계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강한 대한민국의 팬들이 있잖아요.

엄마, 사랑해요! 그리고 언젠가 약속 드린 것처럼 ‘정원이 넓은 그림 같은 집’ 꼭 사드릴게요.

2008년 1월 1일 아침에
사랑하는 엄마의 딸 연아가
글쓴이 김연아는 1990년 경기도 군포에서 태어나 7세 때부터 피겨스케이팅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이후 각종 피겨스케이팅 대회에서 우승, 준우승을 휩쓸며 세계적인 피겨 스타로 성장했다. 2006~2007 국제빙상연맹 시니어그룹 그랑프리파이널 1위에 이어 2007~2008 대회에서도 우승하며 대회 2연패를 달성하는 기록도 세웠다.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며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는 그는 2008년 3월에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목표로 캐나다에서 전지훈련 중이다.
  • 200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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