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선 교수의醫窓 - 없던 병도 만드는 ‘불안’

건강검진을 받았더니 신장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며, 큰 병원에 가서 재검을 받아 보라고 해 병원을 방문했다는 60세 여자 환자가 있었다.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곧 숨이 넘어갈 것 같다면서 왼쪽 옆구리에서 등 쪽으로 뻗치는 이상한 감각이 있어 죽을 것 같다며 살려 달라고 했다. 왼쪽 옆구리 쪽에 이상 증상이 있으면, 신장암을 의심해 봐야 한다는 TV 프로그램을 본 뒤 가슴이 두근거려 아무 일도 못 하고 매일 잠도 설친 채 병원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단다. 증상은 건강검진 결과를 들은 날부터 시작되었는데, ‘죽을병이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목까지 숨이 차오고 숨을 내쉬기가 힘들더니, 급기야 이렇게 힘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갑갑하고 숨이 죄어 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실제로 죽어 가는 사람보다 더 죽을 것 같은 증상을 나타나게 하는 원인 중 흔한 게 바로 불안이다. 불안이란 예측할 수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 상황이 닥칠 것같이 느낄 때 나타나는 심리상태다. 불안감에 사로잡히면 우리 몸 전체의 혈관, 신경, 조직들이 조여 오면서 없던 증상도 생긴다. 주변에 암 정밀검진을 하고도 질환을 놓쳐 고생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점점 더 확실히 죽을병이 있다는 확신이 드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오묘해서 마음이 병들면 몸에도 증상이 나타나고, 몸이 아프면 마음도 병들게 되어 있다. 머릿속에서 나오는 신경이 우리 온몸의 오장육부와 연결되어 서로서로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니 두렵고 불안하기 시작하고, 온몸의 신경과 혈관이 조여 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신장이 있다고 생각하는 부위에도 아픈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검사를 해보니 신장에 물혹이 있었는데, 크기는 하지만 단순한 물혹이었다. 절대 암으로 진행하지 않는, 얼굴에 있는 점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더니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시면서, 죽을 것같이 숨찬 증상이나 옆구리 증상들은 모두 씻은 듯이 사라졌다며 웃으며 돌아가셨다.

우리 몸이 긴장해 수축하면 원활히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여러 가지 증상을 나타내기도 하고, 면역세포도 제 기능을 못해 결국 병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로 머리가 아파서 혹은 소화가 안 된다며 병원을 찾는 환자의 상당수가 이렇게 불안 때문에 스스로 만들어 낸 증상으로 아파하는 경우다. 의사는 단지 환자가 말하는 증상에 따라 그 원인을 찾아서 알려줄 뿐, 결국 병을 만드는 것도 치료하는 것도 환자 자신인 것이다.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교실 박민선 교수가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담아 ‘醫窓’을 새로 연재합니다. 짧은 진료시간으로 의사와 환자가 충분히 소통하지 못하는 게 우리나라 병원 진료의 현실. 이 란은 잘못된 의학 상식에 휘둘리는 환자들에게 길 안내가 될 것입니다. 박민선 교수는 서울대 의대에서 가정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현재 서울대학병원 가정의학과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 200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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