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베이스 신동 성민제 군과 아버지 성영석 씨, 어머니 최인자 씨, 동생 미경 양

우리는 더블베이스 가족!

더블베이스의 ‘어린 거장’ 성민제 군(18세) 가족을 만나러 가는 중이다. 성군은 지난 12월 7일 러시아에서 열린 세르게이 쿠세비츠키 더블베이스 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2006년 독일에서 열린 슈페르거 더블베이스 콩쿠르에서도 아시아인 최초, 최연소 1위를 수상했다. 세계 3대 더블베이스 콩쿠르 중 두 개를 석권해 더블베이스 거장으로 우뚝 선 것.

그의 가족은 모두 음악인이다. 아버지 성영석 씨는 경희대 음대를 졸업하고 서울시향에서 더블베이스를 24년째 연주하고 있고, 그의 반주자이기도 한 어머니 최인자 씨는 한양대 피아노과를 졸업하고 국립합창단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선화예술중학교 2학년생인 동생 미경 양 역시 더블베이스를 전공하고 있다. 미경 양은 지난 9월 금호영재콘서트 독주회에 성공적으로 데뷔, ‘그 오빠에 그 동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시향에서 막 연습을 끝내고 귀가 중인 성영석 씨와 광화문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가면서 지하철 인터뷰가 시작됐다. 살집 좋은 몸집과 부드러운 말투가 더블베이스와 꼭 닮았다. 성씨에게 먼저 “아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우냐”고 묻자, 그는 너무 일찍 최고가 된 아들에 대한 걱정을 내비쳤다.

“주위에서는 빨리 유학 보내라고 하는데 제가 반대했어요. 인성교육이 더 중요하잖아요. 음악은 잘해도 엄마 아빠도 몰라보면 어떻게 해요.(웃음) 늘 민제한테 ‘아빠는 기술자 같은 연주자보다 기술이 좀 처지더라도 된 사람이 더 좋다’ 이런 말을 해요.”


성씨가 더블베이스를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 대학에 가기 위해 ‘엉겁결에’ 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더블베이스의 매력을 알게 되면서 욕심이 생겼단다.

“더블베이스가 할 수 있는 영역이 100이라면 제가 할 수 있는 건 30 정도에 불과했어요. 나머지 부분에 대한 매력이 대단하더라고요. 하지만 너무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제가 닿을 수 없는 경지였죠. 민제를 통해 제가 못다 이룬 꿈을 이루고 싶었어요.”

민제 군은 아버지 꿈의 공백을 얼마나 채웠을까. 성씨는 “나머지 70의 80%는 채워졌다”며 흡족해했다.

민제 군이 생기자 그는 자신의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시나리오대로 착착 실행해 나갔다고 한다. 태교음악으로 더블베이스를 들려주고, 음감을 익히게 하기 위해 유치원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쳤다. 하지만 길이 180cm, 무게 10kg에 달하는 더블베이스는 어린 민제가 가까이하기엔 너무 거대했다. 하루하루 아이가 성장하기를 기다리다 드디어 민제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더블베이스를 안겨 줬다.

“결혼한 지 2년 됐을 때 잘 아는 악기 제조자를 만나 길이 150cm짜리 미니 더블베이스를 주문 제작해 놓았어요. 언젠가 아이가 크면 안겨 주려고요. 악기 가게에 미리 진열해 두고 자연스럽게 유도했지요. ‘민제야, 여기 너에게 맞는 미니 더블베이스가 있네. 아빠한테 한 번 배워 보지 않으렴?’ 하고요.”

이 악기도 민제에겐 너무 커서 백과사전 두 권에 방석까지 깔고서야 겨우 연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열성과 민제의 천재성이 만나 금방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성씨는 “대학생도 많이 가르쳐 봤지만 민제처럼 잘하는 아이는 처음 봤다”며 “민제는 처음부터 달랐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라고 말했다.

민제 군은 더블베이스를 배운 지 2년 만에 서울 내셔널심포니 주최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았다. 선화예술중학교를 졸업, 천재성을 인정받아 고등학교 과정을 건너뛰고 한국종합예술학교에 입학했다. 2009년 이 학교를 졸업하면 독일 뮌헨대로 유학 갈 예정이다. 독일 쪽에서 먼저 러브 콜이 왔다고 한다.


평소엔 내성적인데 무대에 서면 달라져

광장동 자택에 들어서자 더블베이스를 하나씩 들고 찍은 부자의 사진 액자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민제 군은 아버지 성영석 씨를 꼭 빼닮았고, 동생 미경 양은 어머니 최인자 씨를 닮아 오밀조밀한 생김새다. 민제 군은 무대 위에서는 거칠 것 없이 활을 켜대는 어린 거장이지만 평소 모습은 말수 적고 수줍은 10대 소년이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둘 중 누가 더 뛰어나냐고. 성씨는 “민제가 대학교 2학년이 되자 확 달라졌다”며 “이제 함께 연주하면 나 때문에 민제의 연주 흐름이 끊어질 때가 많다”고 고백한다. 민제 군은 한참 뜸들이더니 “아버지는 오케스트라 노하우를 가지고 계시고, 저는 솔로를 잘해요”라고 답한다.

민제 군의 독주를 들은 사람들은 “이게 정말 더블베이스 맞느냐”는 말을 많이 한다. 묵직한 악기로 저음에서 고음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때문. 화려하고 현란한 그의 연주는 더블베이스가 가진 독주악기로서의 가능성과 매력을 웅변한다. 현악기 중 가장 낮은 음역의 악기, 오케스트라의 협주 악기로만 간주되어 온 더블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그의 소설 <콘트라베이스>에서 꼭 필요하지만 귀퉁이에 밀려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존재의 안타까움과 설움을 콘트라베이스에 투영했다. 하지만 콘트라베이스 독주회를 여러 차례 가졌던 민제 군에게 이 소설의 주제의식은 전혀 와 닿지 않는 듯했다. 그는 더블베이스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더블베이스는 음역의 폭이 굉장히 커요. 아주 높은 음에서 낮은 음까지 낼 수 있거든요. 디테일하고 예민한 악기이기 때문에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요. 예전에는 독주회 전날 ‘드디어 내일이다’ 하며 기다렸는데, 지금은 독주회를 앞두면 긴장되고 부담스러워서 잠도 잘 안 와요.”

너무 어린 나이에 정상에 올라서일까. 그는 인터뷰 도중 ‘부담’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그리고 오만해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스스로 “내가 원하는 10%밖에 안 왔다”고 표현한다. 아버지 성씨가 민제 군에게 “바흐 스위트(모음곡) 한 번 해볼까?” 하면 그는 “나중에요. 제가 건방지게 그걸 어떻게 해요”라고 말했다 한다.

한때 민제 군의 꿈은 농구선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손가락을 다칠까 봐 그 좋아하는 농구도 맘대로 못 한다. 그는 수업시간에 손들고 발표를 해본 적이 없는 내성적인 아이였지만 무대에 서면 확 달라진다.

“무대에 서면 연습 때보다 더 편해요. 여기가 내 자리구나, 싶을 정도로. 독주 때마다 무아지경이 돼요. 어려운 곡일수록 더 연주에 빠져들어요.”

뱃속부터 부모님의 철저한 계획하에 걸어온 길, 민제 군은 부모님에 대해 양 갈래 마음이 있는 듯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를 찾아내 키워 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부모에 대한 구속감. 연주 실력에 있어서 ‘하산해도 되겠다’는 판정을 받은 이후에도 그는 부모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10kg짜리 악기를 운반해 주기 위해 늘 아버지가 기사처럼 따라다녔고, 반주자인 어머니는 연습 때에도, 독주회나 콩쿠르 때에도 늘 함께했다. 그에게 “독립하고 싶은 생각이 있냐”고 묻자 “네, 매우요”라고 답한다. 만 18세 생일이 되면 운전학원부터 등록할 거란다. 서서히 부모의 둥지를 떠날 준비를 하는 민제 군. 그의 부모도 떠나 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가 민제한테 해줄 수 있는 건 동기 유발까지예요. 이제 제가 할 일은 다 끝난 것 같아요. 민제는 늘 제 마음에 있었는데 제 마음 밖에도 민제가 있기 시작했어요.”(성영석 씨)

“이제까지 저는 민제의 동반자 역할을 했는데 더 좋은 반주자가 나타나면 물러나야죠. 이런 말을 민제한테 하면 ‘다른 반주자가 생겨도 엄마랑 할 때가 종종 있을 거야’ 하고 위로를 해줘요. 아들하고 콩쿠르 다니면서 행복했는데, 서운하죠.”(최인자 씨)

쿠세비츠키 콩쿠르 대상 수상 후 기념 연주를 하는 성민제 군.
동생 미경 양은 올해 오빠가 대상을 받았던 독일의 슈페르거 콩쿠르에 출전한다. 아빠와 오빠의 교습법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자 그는 “오빠가 가르쳐 줄 때가 더 좋아요. 더 잘 맞아요” 한다.

똑같은 악기를 연주하지만 세 사람의 연주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민제 군의 말.

“저는 가볍고 화려한 스타일인데, 동생은 무겁고 육중한 소리가 나요. 아버지는 보기와는 다르게 부드럽고 여성스러우시죠.”

이 말에 가족 모두 와르르 웃는다. 부모의 품을 떠나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민제 군을 바라보며 성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민제는 교과서로 배우는 부분에 있어서는 거의 톱 수준이에요. 이제 중요한 건 인생을 배우는 거죠. 음악이라는 건 기교나 테크닉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가슴에서 나오고, 인생에서 나오는 음악이 진정한 감동을 주죠. 민제가 인생을 배워 가면서 나머지 20%를 채워 줬으면 좋겠어요.”

사진 : 장성용
  • 200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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