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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유근택

먹으로 그리는 속도감 있는 풍경

유근택
1965년 충남 아산생.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및 동 대학원 졸업. 2000년 석남미술상 수상, 2003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1991년부터 20여 회의 개인전과 국내외 주요 단체전 참여.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교수.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의 무상함. 머물러 깃들 수 없는 풍경은 저 혼자 달려간다. 화가 유근택은 버스를 타고 바라보는 속도감 속 풍경의 강렬함에 매료되었다. 사라지는 것은 강박적으로 느껴지는 빽빽한 수풀이 아니라 인물이며 물건이다. 정원을 거닐던 어머니의 모습도, 박정희 목을 따겠다고 온 김신조 일행과 대적하다 순직한 경찰의 동상도 유령처럼 흐려진다. 얼핏 스쳐 간 평범한 풍경이 묘한 환각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속도감을 가진 풍경에의 매료라는 말 자체가 정관적인 명상 속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기존의 한국화의 관념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전통적인 재료인 검은 먹으로 그린 한국화이지만, 화가 유근택의 화폭이 전하는 감각은 새롭기만 하다.

“예술이라는 것은 진보입니다. 진보라는 것은 살아가는 것의 깊이에 대한 생각입니다. 살아가면서 던져지는 질문들을 해석해 나가고 답을 찾는 과정들이 통합적으로 작품에서 묻어 나와야 하는 것이겠지요.”

서울 성북동 고옥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 마당 한켠에는 화초와 나무들이 그의 그림 속에서처럼 제멋대로 자라나고 있었다. 화가 유근택에게는 삶이 던지는 질문들을 찾아내는 남다른 눈이 있다. 386세대인 그는 80년대식의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 소소한 일상이라는 소 담론으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가라고 흔히 이야기된다. 일상적인 삶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매일매일 쌍둥이 같은 날들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그 시간은 축적되어 거대한 역사가 되는 것이다. 유근택의 눈은 이 쌍둥이 같은 날들의 반복 속에서 이루어지는 미묘한 시간의 흐름(역사)을 잡아내고 있다.

Two Conversations_ 135x135cm 수묵채색 on paper 2007.
<수평적 이사>는 주엽동에서 홍제동으로 이사하면서 짐을 싸고 푸는 과정을 시리즈로 그린 연작으로, 그의 그림 속에서는 ‘이사’가 사건이 되는 순간을 묘사했다. <자라나는 실내>는 우리가 사는 평범한 아파트에 나무들이 무한히 자라나는 장면을 그렸다. 누구나 살고 있는 아파트는 끝없이 지속되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원처럼 자라고 있다는 느낌이다. 식탁 위에 차려진 만찬을 그린 <어떤 만찬>과 <어떤 국가주의적 풍경>은 6자회담이라는 정치적인 주제를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다.

<두 대화>에는 유원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파라솔 세트에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플라스틱의 초록색과 나무의 초록색이 미묘하게 대조되고, 화면 한 귀퉁이에는 아이가 잃어버리고 간 풍선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무언가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이야기가 튀어나올 것 같은 미묘한 긴장감과 나른함이 함께 느껴진다. 이렇게 고요한 적막 속에서 긴장에 찬 숨소리가 들리는 것이 유근택의 그림이 갖는 매력이다. 작은 제목에 그는 풍경(landscape) 대신 장면(scene)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주어진 자연의 모습에 미학적인 해석을 가하는 풍경이 아니라 연극이나 영화에 사용하는 용어인 장면(scen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Grandmother_ 85x67cm Black-ink on paper 1995.

임종 앞둔 할머니 그리면서 작품 세계 바뀌어

전형적인 386세대인 유근택이 거대 담론을 형상화하는 과정을 거쳐 일상으로 돌아온 직접적인 계기는 임종을 앞둔 할머니의 모습을 그리면서다. 사업 때문에 부모님이 상경한 후 고향인 아산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자신을 돌보아 주던 할머니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보호자였다. 노환으로 누워 계신 할머니의 얼굴을 그리면서 그는 역사를 거대 역사가 아니라 개인의 삶의 역사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모습은 애정과 안타까움으로 그려졌다. 이 작업을 하면서 그는 “가까이 있는 것들의 생생한 호흡을 그려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Some Nationalistic Scene_ 178x190cm 수묵채색 on paper 2006.
그가 대학에서 배운 한국화는 강고한 정신적인 세계의 추구였다. 여백과 먹의 흐름에 큰 의미가 부여되고, 먹은 추상적인 정신을 표현하는 도구로 정제되어 있었다. 정신이라는 것이 삶을 반영하고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유희에 빠져 버렸다고 느꼈다. 한편으로는 민중미술이 반대편에서 예리한 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두 쪽 다 주제만 있고 자기 자신은 없어지는 형국이라고 느꼈지요. 그런 것들은 모두 실체가 없는 넌센스로 여겨졌지요. 당시 제 목적은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의 느낌을 그 자체로 드러내는 것은 동양화의 전통에 그리 맞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Growing Room_ 115x103cm 수묵채색 on paper 2007.
그리고 그가 마침내 찾아낸 것이 ‘모필 소묘’였다. 짧고 가벼운 붓질로 그는 먹물로 스케치를 해나간다. 수정이 불가능한 모필 소묘는 순간의 즉흥적인 감흥을 표현하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현장의 떨림을 그자리에서 기록하는 방식이며 그가 갈망하던 “땅으로 끌어내리는 느낌”을 표현하는 데 적합했다. 한국화를 전공한 많은 사람들이 먹을 버리고 다른 표현 수단을 찾아나가던 순간에도 먹을 버리지 않았던 그가 우리 시대의 감각과 멋지게 조우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검은 먹이 제 회화의 ‘원천 체험’이라고 할 수 있지요.”

A Dinner_ 135x135cm 수묵채색 on paper 2007.
그는 국어 교과서에 실린 송영방 선생의 삽화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소년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초벌구이한 접시에 그림을 그려서 내는 방학 숙제가 있었다. 그때 그는 그가 본 전시회 도록의 뒤표지에 있던 어느 한국화를 그대로 옮겨 접시에 그렸다. 한국화의 먹을 모르던 그가 사용한 것은 수채화의 검은 물감이었다. 이 숙제로 그는 학교의 스타가 되었다. 한국화를 배워 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그 후 지금까지 그는 매일 붓을 들고 있다. 대학 시절 그는 ‘벼루 세 개에 구멍을 낼 정도”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는 전설(?)이 따라다닐 정도로 열심이었다. “어떤 미디어 시대라 해도 먹으로 갈 수 밖에 없지요.”

다음 전시에서 그가 보여줄 작품은 경주 남산에 관한 그림이다. “그곳에 가면 무언가가 퇴적하여 바람에 사라져가고 있는 듯한 느낌, 시간이 소멸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 작품들로 그는 2008년 일본의 ‘21+Yo 갤러리’와 상하이 Cineart Gallery에서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다.

사진 : 이창주
  • 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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