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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투어 리사이틀 중인 피아니스트 김정원

클래식 음악 대중화를 위해 구석구석 찾아갑니다

“처음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였어요. 후미진 골목에 음악회 포스터가 붙어 있는데, 남루한 옷차림의 할머니가 한참 보시더니 꼬깃꼬깃한 종이를 꺼내 공연 시간을 적으시는 거예요. 계층이나 연령 관계없이 누구나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게 몸에 밴 이곳에서 음악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유학을 결심했죠.”

오스트리아 빈에 살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내한, 10월 28일부터 12월 23일까지 전국 투어 리사이틀에 나섰다. 서울ㆍ광주ㆍ대전ㆍ수원ㆍ창원ㆍ대구ㆍ울산ㆍ원주ㆍ전주ㆍ성남ㆍ고양ㆍ부산 등 전국 12개 지역을 도는 대장정. 전국 투어 리사이틀을 앞두고 만난 김정원 씨는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꼭 하고 싶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연주회를 마치고 사인회를 할 때면 ‘연주를 보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와 막차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며, ‘다음엔 내가 사는 곳에 와서 연주해 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분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셈이죠.”

이번 투어에서 연주할 곡은 드뷔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과 베토벤 〈월광 소나타〉,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클래식 음악 초심자도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선율로 피아노 음악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한다. 그는 10월 24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프리뷰 리사이틀에서 섬세한 감성과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그의 연주 스타일을 마음껏 발휘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소수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것이 항상 안타까웠다”는 그는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음악의 특징을 고루 접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짰다”고 설명한다.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는 ‘소리색채의 미학’이라 할 만큼 아름다운 음색, 베토벤은 깊고 견고한 독일 음악, 무소르그스키는 남성적이고 파워풀한 러시아 음악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것.

그는 지난해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 출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해 더 유명해졌다.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주인공처럼 그 역시 어릴 적부터 음악에 두각을 나타낸 영재였다. 그의 어머니는 유명한 방송작가 이금림 씨. 아버지도 국문학과 교수로 문학적 피가 흐르는 집안이라 그가 음악가가 된 것은 의외였다. 처음 피아노를 만난 것은 다섯 살 때. 보자마자 빠져 들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한 번씩 쳐보게 했는데, 그는 “피아노만 계속 칠 수 없냐?”며 졸랐다. 유치원을 중퇴하고 피아노 학원으로 옮겨간 후 빈 피아노만 보면 쳐댔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기도 전에 혼자 진도를 나갔고, 청소년 콩쿠르를 휩쓸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원학교 재학 중이던 열네 살 때 빈으로 유학을 떠났다.



열네 살 때 혼자 오스트리아로 유학 떠나

빈 국립음대 최연소 수석 입학과 수석 졸업, 엘레나 롬브르 슈테파노프 국제 피아노 콩쿠르, 뵈젠도르퍼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과 각종 콩쿠르 입상. 한국인 최초로 파리고등국립음악원 최고 연주자 과정에 입학해 거장 자크 루비에에게 사사 등 이후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먼 이국 땅, 혼자서 이룬 결실이다. 그런데도 “만약 내 자식을 그 나이에 혼자 유학 보내라면 난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까딱 잘못하면 추락하는 외줄 타기 같은 세월을 보냈다”면서.

“유학 보내 달라고 투쟁하다시피 했더니 어머니가 일단 오스트리아로 한번 데려가셨는데,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에서 공부하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죠. 그다음 혼자 짐을 싸들고 오스트리아에 도착했습니다. 50년 된 아파트의 5층 꼭대기 방에 짐을 풀고, 가지고 온 전기밥솥에 밥을 지어 먹으며 자취를 했어요. 어린 나이에 외로움, 공포와 싸워야 했지요.”

독어를 못 알아들었으니 밖에 나가면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올까 두려웠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오면 “여기, 재미있다”고 말해 놓고 전화를 끊은 후 펑펑 울었다. 그에게 유일한 위안은 피아노. 피아노를 칠 때는 모든 것을 잊고 빠져 들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 살면서 소통할 길 없는 감정을 피아노에 쏟아 부었다. 음악에 몰입하다 보면 이곳이 연주회장인지, 콩쿠르장인지 잊을 때도 있다고 한다. 콩쿠르장에서 리스트 곡을 연주하다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음악을 듣고 처음 눈물을 흘린 게 초등학교 2학년 때였으니 조숙했죠? 미니 콤포넌트로 클래식 음악 카세트 전집 중 피아노 소나타를 들었을 때였어요.”

감동도 울음도 많은 그의 연주는 곡의 느낌을 극적으로 살려내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그는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 부드러운 매너, 연주할 때의 열정적인 모습으로 클래식 음악계에서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는 스타. 실제로 마주하니 솔직하고 소탈하기가 이를 데 없다.

아들 둘 있는 집안에서 그는 딸 노릇하는 차남.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어머니와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수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어머니의 기대치가 너무 높으셔서 조금만 소홀해도 서운해하신다”고. 어머니 영향 때문인지 그도 소설책을 즐겨 읽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한다. 언어예술인 문학이 감성을 자극해 자신의 음악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그의 아내 김지애 씨 역시 피아니스트로, 지난해에는 부부가 함께 듀오 리사이틀을 갖기도 했다.

“제가 다니던 빈 국립음대에 아내가 유학을 왔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아내에게 도움을 주면서 가까워졌습니다. 처음 2년 동안은 친구로 지냈죠. 서로 음악적 성향이나 취향이 비슷해 도움이 많이 됩니다.”


김정원 씨가 무대에 오르기 전 긴장감과 설렘을 즐기는 반면, 김지애 씨는 무대 공포증이 있다. 연주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아내가 수시로 연주 여행을 다니는 자신을 뒷바라지하는 게 아깝고 미안해 그가 “나하고 함께 무대에 오르면 덜 떨리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어느 날부터인가 허전해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연주하자고 한 것인데, 함께 호흡을 맞춰 연습하는 게 쉽지 않던데요? 자꾸 제 스타일을 강요하게 되고.”

지금은 세계 곳곳을 도는 연주 스케줄이 꽉 짜여 있지만, 빈 국립음대를 졸업할 때는 그도 망망대해로 나선 듯 막막했다고 한다. ‘음악만 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의 앞길이 열린 것은 2000년 쇼팽 콩쿠르를 마친 다음이었다. 한국인 최초로 3차 예선까지 올라간 후 결선에서 탈락했는데, 폴란드 음악축제에는 우승자 대신 그가 초청됐다. 콩쿠르를 처음부터 끝까지 참관한 폴란드의 저명한 음악 평론가 얀 포핀스 씨가 “진정한 우승자는 김정원”이라며 고집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 그 후 쇼팽 스케르초 전곡과 환상곡, 뱃노래가 수록된 첫 음반을 내면서 호평받기 시작했고, 오스트리아ㆍ독일ㆍ영국ㆍ프랑스ㆍ체코ㆍ헝가리ㆍ폴란드ㆍ이탈리아ㆍ미국ㆍ캐나다 등 전 세계에서 연주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이 가운데도 일 년에 한두 차례씩은 고국 무대를 찾고 있고, 2006년부터는 ‘김정원과 친구들’이라는 타이틀로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다양한 접근으로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 애호가의 층을 넓히고 있는 것. 그는 요즘 브람스가 좋다고 고백한다.

“슬픔에 빠진 사람이 자신의 상태를 하소연하기보다 의연한 표정으로 ‘괜찮다’고 할 때 가슴이 더 절절하잖아요? 브람스 음악이 그런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최대한 드러내서 표현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다 표현하지 않고 절반쯤은 삼키는 게 왜 아름다운지를 알 것 같아요.”

이번 리사이틀은 더욱 성숙해진 김정원을 만날 기회다.

사진 : 장성용
  • 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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