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그 비노그라도프(Oleg Vinogradov)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러시아 말리 발레단 감독, 키로프 발레단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유니버설 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이며, 미국 워싱턴 키로프 발레아카데미 학장 겸 예술감독도 겸하고 있다.">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 나의 발레 아버지에게

올레그 비노그라도프(Oleg Vinogradov)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러시아 말리 발레단 감독, 키로프 발레단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유니버설 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이며, 미국 워싱턴 키로프 발레아카데미 학장 겸 예술감독도 겸하고 있다.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레 실피드> 공연 연습 중 문훈숙 단장(오른쪽)과 올레그 비노그라도프(가운데).
Dear Oleg

저는 참으로 인복을 타고난 사람입니다. 저를 낳아 주신 아버지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 하는 딸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주셔 오늘날의 저를 만들었지요. 그 어떤 아버지보다도 열성적이셨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또 한 분의 아버지가 계시니 바로 올레그 비노그라도프 예술감독님 당신입니다. 제가 미처 꿈꾸지 못했던 제 인생의 항로를 예견하시고 무한한 세계로 이끌며 저를 담금질해 주신 당신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1989년, 키로프 무대에서 <지젤>을 공연할 때였죠. 당신은 워싱턴에 있는 유니버설발레단 부설 키로프 아카데미를 둘러보시던 중 비디오 룸에서 상영되고 있던 유니버설발레단의 <레 실피드> 속 저를 보셨지요. “저 무용수가 누구냐”며 시작된 당신의 관심 덕에 저는 지젤로 무대에 설 수 있었고, 15도나 경사가 진 무대에서 잔뜩 겁을 먹은 저에게 고무판을 깔아 주시며 “당신을 믿는다”라는 신뢰를 보여주셨기에 저는 커튼콜이 끝난 후에도 미소로 화답할 수 있었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절대로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서려 하면, “아니야. 당신은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며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오딜,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오로라 공주, <돈키호테>의 키트리, <라 바야데르>의 니키야까지 차례로 저에게 안겨 주셨죠. 감독님은 제게 그런 분이셨어요. 도저히 제 머리로는 어울리지 않으며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역할들을 어느새 제가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마린스키 극장 앞에서.
1992년 <백조의 호수> 전막 초연을 기억하세요? 그때 그러셨죠. 유니버설발레단에 <백조의 호수>는 아직 무리라고. 그래도 해보겠다며 도전하는 저희의 배우고자 하는 열정, 한국인의 그 정성과 노력에 감동했다며 첫날 공연을 마치고 격려해 주셨지요. 감독님께서 먼저 저에게 도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끔, 감독님의 그 열정적인 모습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나도 육십이 넘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연장에서 조명을 맞추고, 무대를 지켜보고, 리허설을 지도하고 공연을 앞둔 긴장감까지도 섬세하게 배려해 주는 감독님처럼, 나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해답을 저는 당신에게서 배웠습니다. 50여 년 동안 발레만을 위해 살아오시면서 지키신 것들을 고스란히 저희에게 전해 주셨으니 이제 제가 해야 할 것은 그 전통을 잘 이어 가며 현대와 어우러지게 생명력을 더하는 것이라는 것을요. 20여 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함께해 온 우리는 이미 가족이지요. 또 한 분의 아버지인 당신을 위해 가업을 이어 가는 마음으로 21세기 한가운데에서 전통 발레의 명맥을 이어 가겠습니다. 2007년 서울에서 맞는 가을, 아버지를 위해 헌정하는 공연을 정성스레 준비하며 당신의 건강을 누구보다 기원하겠습니다.

From Julia
글쓴이 문훈숙씨는 유니버설 발레단 단장으로 미국 워싱턴에서 태어나 선화예술학교와 영국 로열발레학교,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워싱턴발레단에서 활약했고, 1984년 유니버설발레단 창단 멤버로 입단하여 수석 무용수와 단장으로 명성을 떨쳐 왔다. 1989년에는 러시아 키로프발레단 초청으로 동양인 최초로 키로프 무대에서 <지젤>의 ‘지젤’ 역을 열연, 7차례의 커튼콜을 받았다.
  • 200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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