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이 만난 사람 | 토론 프로그램 단골 패널 변호사 전원책

나의 본모습은 시인

그는 요즘, ‘전거성’으로 통한다. 그가 추석 성묘차 아버님이 묻힌 용인 공원묘지를 찾았을 때 일이다.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누가 등짝을 탁, 후려쳤다. 휘청거릴 정도로 세차게 맞은 그가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더니, 20대 중반의 젊은이가 그를 바라보며 “전거성 맞죠?”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간통제 폐지에 대한 즉석 논쟁이 벌어졌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에 갈 때는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사인을 요구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알다시피 전원책, 그는 변호사다.

하지만 나에게 그는, 변호사이기 전에 시인이다. 그는 나보다 2년 선배지만 75학번으로 같은 대학 같은 학번이다. 나는 학교에 떠돌던 그의 전설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한참 습작을 하던 대학 3학년 때 그는 월간 한국문학사에서 제정한 100만 원 고료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었다. <동해단장>이라는 그 시를 읽으며, 나는 시를 쓰는 법대생이 국문과 다니는 나보다 먼저 등단했다는 사실에 질투심이 일었다.

그는 군법무관 시험에 합격하여 1991년 예비역 중령으로 전역했다. 한동안 문단에서 보이지 않던 그가 다시 나타난 것은 199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나무를 꿈꾸며>라는 시가 당선되면서였다. 그해 그는 《슬픔에 관한 견해》라는 시집을 발표했다.

1991년 말 변호사 사무실을 연 후에도, 그는 한국일보 김성우 선생이나 소년한국일보 김수남 선생이 주최하는 시낭송회에 자주 나타났다. 그러나 방송에서 그를 다시 만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난 후 그는 경인방송 <박찬숙의 터놓고 말합시다>나 MBC <100분 토론>, KBS <심야토론>, <열린토론>, SBS <시시비비> 등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언변 좋고 논리 정연한 그를 방송은 선호했다. 나도 그 무렵 여러 토론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했지만 그와 부딪친 적은 없다. 나는 주로 대중문화 관련 아이템이 선정될 때 나갔고 그는 정치 사회적 현안이 대두될 때 패널로 초대되었기 때문이다. 법을 공부한 것 말고는, 움직이는 반경이 선배와 나는 매우 비슷한 편이다. 나는 <톱클래스> 인터뷰를 위해 전화를 했다.

“하형, 인터뷰는 무슨. 술이나 한잔하지.”

이렇게 해서 나는 퇴근 무렵 그가 근무하는 서초동 법조타운 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후배 변호사와 함께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톱클래스>의 사진을 맡고 있는 이창주 씨는 나보다 먼저 도착해 사진을 찍기로 약속되어 있었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 그는 사진 가방도 열지 않은 채 즐겁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변호사님 말씀이 너무 재미있어 듣고 있었다”고 했다. 확실히 그의 말에는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

그의 방에는 2개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모두 전원책 변호사를 모델로 그린 유화다. 하지만 느낌은 매우 다르다. 두 그림 모두 김구림 선생이 그려 준 것이다. 하나는 진짜 전원책 변호사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사실적이다. 그의 강렬한 눈매를 부각시키며 얼굴 특징을 잡아 그린 유화였고, 다른 하나는 그가 실제보다 훨씬 더 멋진 모습으로 그린, 이른바 하모니즘 계열의 작품이었다. 그의 인물화와 추상적 이미지가 어울리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는 사무실을 함께 쓰는 후배 변호사에게 나를 인사시켰다. 우리 세 사람은 근처 중국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배합한 흑고량주와 참이슬을 마셨다. 흑고량주는 투명했고 참이슬은 고량주의 독기를 누그러뜨렸다. 안주로 쇠고기를 연이어 시키면서, 우리는 대학 시절 그의 연애담부터 지금의 ‘전거성’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니다, 나는 주로 듣기만 했다.

KBS <낭독의 발견>에 출연했을 때.

직설적ㆍ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 펴는 토론자

술을 마시는 도중 정치권에 있는 그의 군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고, 네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논쟁은 불이 붙었다. 그 군 선배는 모병제를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전거성과 그의 후배 변호사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징병제를 주장했다. 내가 놀란 것은, 전거성은 술자리에서도 매우 정확한 통계자료를 대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전거성의 토론이 밀어붙이기식 일방적 주장이라고 하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우회적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을 해서 감정적이라는 느낌을 주어서 그렇지, 단단한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TV 토론이 너무 우회적이라는 데 불만을 가지고 있다. 토론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근거에 의해 정확하게 자신의 뜻을 표현해야 한다.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의 토론은 토론이 아니다. 전원책이 거성의 칭호를 받은 것은, 군 가산점 문제에 대한 KBS <심야토론>에서 군 가산점을 지지하는 적극적 발언으로 남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발언의 전달방식에도 이유가 있다. 그는 시원하게 직선적으로 쭉쭉 자신의 논리를 뻗어 나간다. 그것이 각종 규제와 억제로 억눌려 있던 대중들에게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알파 걸, 남성을 넘어서는 여성인가’라는 주제로 교육방송 <토론카페>에서 토론 도중 문제가 되어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아이’ 문제는, 사실 그때 토론의 핵심이 아니었다. 지난 2003년 뒤늦게 결혼한 그는 아이가 없다. 그의 개인적인 약점을 파고 든 가수 이안의 비인격적 공격에 그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는 당시의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아버지가 암에 걸려 입원해 있을 때 지금의 부인을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1년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부친상을 당한 그는 3년 동안 음주가무를 거의 하지 않았다. 방송 출연도 사양했다.

“아이를 가져 보려고 해.”

그는 내 귀에 속삭였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을 이루고 싶다는 그의 욕망은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나는 반질반질 윤이 나는 벗겨진 그의 머리를 슬프게 바라보았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출판한 문학수첩의 김종철 사장을 만난 이야기를 그는 해주었다. 1960년대 말 시인으로 등단한 김종철 사장은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낸 김종해 시인과 함께 형제 시인으로 유명하다. 김종해 시인의 두 자제인 김요일과 김요안도 각각 시와 평론으로 문학 활동을 하는, 대표적인 문인 가족이다. 김종철 시인의 배가 불룩 나온 것을 보고 전원책은 “형은 이제 시인이 아냐”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전거성는 배가 나오지 않았다. 흔히 중년의 나잇살이라고 부르는 뱃살도 없고 날씬했다.

정치의 계절이고, 대중들에게 분명한 자신의 논리로 강한 인상을 심어 준 전원책 변호사에게도 여러 캠프에서 프러포즈가 있는 것 같았다. 모병제 문제로 젊은 변호사와 군 선배가 격렬하게 토론하고 있는 사이, 그는 다시 내 귓가에 속삭였다.

“하형, 우리 글을 씁시다. 이제 50대니까 그래도 앞으로 20년은 더 쓸 수 있겠지? 인생에서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시는 남잖아. 난 좋은 시를 쓰고 싶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나려고 했다. 시, 너무나 멀리 떨어진 단어처럼 느껴졌다. 한때는 그렇게 사랑했던 연인이었는데. 남성 네티즌 사이에서는 변호사 전거성으로 통하지만, 그의 본질은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좋은 시를 보고 싶다.

사진 : 이창주
  • 200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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