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꽁초와 캔디를 그리는 작가 안성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그려요

안성하
1976년생. 홍익대학교 및 대학원 회화과 졸업. 2001년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2002년 동아미술제 ‘특선’,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2005년 서울미술협회 창작지원대상 선정. 2004년부터 현재까지 4회의 개인전, 2000년부터 국내외 주요 단체전 참가.
《담배는 숭고하다》라는 리처드 클라인의 매력적인 책에서 한 대목을 인용해 본다.

“담배는 가장 오만하고, 가장 매력 있는, 그리고 가장 자극적이고 가장 사랑스러우면서 세련된 정부이며, 자기 외에는 어떤 존재도 용납하지 않으며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다.”

아마 애인 없이는 살아도 담배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애연가라면 고개를 끄덕일 그런 대목이다. 웰빙 열풍 속에서 흡연이 거의 범죄시되는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담배의 매력을 구구절절이 미학적 철학적 근거를 대며 논하고 있는 이 책은 아마 애연가들을 위한 숨겨진 베스트셀러일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에 읽어서 가물가물해진 책을 다시 떠올린 이유는 작가 안성하 때문이다. 작품 이야기를 하다가 리처드 클라인의 이 책을 두고 서로 박장대소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 작품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는데 이거다 싶더라고요. 제가 담배에 대해 생각하는 모든 것이 그 책에 다 담겨 있었어요.”

투명한 유리 용기에 담긴 담배꽁초나 색색의 캔디를 그린 그림으로 안성하는 최근 한국 미술시장의 폭풍 같은 열기 속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 중 한 명이다. 사려야 작품이 없어서 살 수 없는 작가, 해외 시장에서 주목받으면서 작품 값이 급등한 젊은 작가, 한국 미술계의 차세대 기대주 등 포털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어김없이 따라다니는 문구들이다. 화제의 주인공이면서도 언론에 잘 노출되지 않았던 그다.

담배 _ Oil on Canvas, 162x130.3cm, 2002.
나른한 토요일 오후에 잡힌 인터뷰.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는 작가가 연거푸 상태가 좋지 못하다고 사과한다. 10월 말 예정된 개인전을 앞두고 작품에 몰입하고 있는 중인데, 지난 사흘 동안 하루 서너 시간씩밖에 자지 못하면서 작업했다고 한다. 젊음은 피곤의 흔적을 그의 얼굴에 남기지 않았다. 그가 그린 그림처럼 투명하고 잘 정돈된 사람이었다. 최근 그에 관한 세간의 뜨거운 관심에 대해 물었다.

“한국 시장은 좀 의심스러웠어요. 정말 내 그림을 좋아해서 좋아하는 것인지, 좋다고 하니까 좋아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너무 분위기를 타는 것 같아서요.”

담배 _ Oil on Canvas, 162x130.3cm, 2004.
딱 떨어진 냉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홍콩과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 등에서 늘 좋은 결과로 낙찰이 되고 그것이 다시 한국의 컬렉터들에게 어필해서 미술 투자를 논하면 반드시 거론되는 작가가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이런 문제에 대해 냉정했다. 금연 운동 때문인지 담배 그림보다 캔디 그림을 더 선호하는 편향된 시장의 취향도 탐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작품이 인정받는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올해 초 스페인에서 있었던 개인전 때였다. 크지 않은 화랑이었지만, 굵직한 컬렉터들이 다녀간 그 전시에서 출품작 전부가 솔드 아웃되었다. 자신의 프로필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며칠씩 그림을 보고 또 보며 수긍이 갈 때 작품을 구입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진지한 태도가 감동적이었다. 작품을 돈으로만 보는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작업실 한쪽에 놓여 있는 던힐 담배 한 보루. 책상 밑 바구니에 가득 담겨 있는 갖가지 사탕들. 그리고 40여 개 다양한 형태의 투명한 유리 용기들. 담배와 캔디라는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사물이 자연스럽게 그의 작업실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안성하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고, 자신의 일부라고 느끼는 것들이다. 담배와 캔디- 하찮고 일회적이고 소비되어 덧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들. 안성하에게 담배는 위안과 고통이라는 현대인이 갖는 욕망의 이율배반적인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존재다. 이 ‘부정적인 쾌락’을 주는 담배꽁초는 역설적이게도 투명하고 깨끗한 유리그릇에 담겨 있다. 유리 자체는 투명하고 깨끗하지만, 유리그릇을 통해 바라보는 대상들은 형태가 왜곡되기도 한다. 이런 양면성을 가진 유리그릇은 현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불안정한 심리의 투영처럼 느껴졌다.

담배 _ Oil on Canvas, 88x194cm, 2004.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것을 피우게 된 각각 다른 이유들도 그것과 더불어 쌓이게 된다’고 했던가. 투명한 유리그릇 속에 일그러진 채 담긴 담배꽁초도, 색색의 사탕도 작가의 분신처럼 여겨진다. 작업실에 그렇게 쌓여 있는 꽁초들을 바라보며 대학 4학년 때부터 그린 그림들이다. 학부 3학년까지 시키는 대로 하다가 4학년이 되어 자유 작업을 하면서 학생들은 대부분 혼란에 빠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기본적인 것을 잘하면, 추상적인 작업도 잘하게 되리라고 생각했어요.”

무제 _ Oil on Canvas, 116.7x97cm, 2005.

세상의 평은 신경 안 써

그림의 소재적인 측면에서나 그림을 그리는 방법적인 측면에서나 시작은 단순하고 솔직했다. 요즘 한국 미술계에는 사실주의 그림들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한편에서는 젊은 작가들이 너무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안성하를 포함, 최근 주목받고 있는 사실주의 작가들은 대부분 10년에서 15년 넘게 꾸준히 자기 길을 걸어온 것이고, 이제 미술계에 인정받기 시작한 것일 뿐이다.

“글쎄요. 사실적으로 그리는 사람들은 한 학번에 한두 명 정도밖에 안 되죠. 그때는 이런 그림이 오히려 시대에 맞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이 추상화며 첨단 미디어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왜 미련하게 이런 짓을 하고 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렇지만 그것이 나았다고 느껴요.”

무제 _ Oil on Canvas, 72.7x116.7cm, 2005.
젊지만 어리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안성하에게 어떤 심지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칼국숫집에서건 어디서건 6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미술학원에 등록해 그림을 배우고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원도 융자를 받아서 다녔다. 세상사에 일찍 눈을 뜬 편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것들을 힘들게 여기지 않았다. ‘다 나를 성숙하게 하는 일이구나’ 하고 기꺼이 받아들였다. 크고 위대한 것이 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늘 생각했다.

씁쓸한 담배꽁초 옆에 달디단 캔디가 있다. 이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단단히 잡고 있는 것은 안성하의 자아다. 누구와의 비교도 허락하지 않고, 누구의 하마평에도 관심이 없고, 누가 뜨든 지든 다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안성하는 오로지 단순하고 솔직하게 자기를 바라본다. 작가란 자기에게 충실할 때,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 하지 않을 때 가장 아름답고 가장 좋은 작품을 할 수 있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게 될지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의 나를 충분히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무제 _ Oil on Canvas, 72.7x91cm, 2006.
수없이 많은 담배꽁초와 캔디를 그려 왔는데 지겹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니요. 조형적으로도 다르고 사탕마다 담배마다 다르죠. 매번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그릴 수 있는 것이죠. 아마 애정이 사라지면 더 이상 그리지 않을 것 같아요. 내가 수많은 모습들을 가진 것처럼, 담배가 가진 표정을 다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 한참 미흡하다고 느껴요.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별 상관이 없습니다. 완벽한 그림, 마음에 쏙 드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그릴 거예요.”

언제나 딱 떨어지는 명쾌한 대답이다. 지금 그는 개인전을 위해 평창동의 가나아틀리에의 넓은 작업실에서 마음껏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작은 것을 크게 확대해서 보면 다른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작은 지점을 통과해 큰 세계로 날아가고 있나 보다. 한참 작업 중인 200호 크기의 그림. 크게 확대된 유리 재떨이에는 세상의 모든 빛이 어려 있었다.

사진 : 김선아
  • 200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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